인경 왕후의 견전제를 행하다. 인경 왕후에 대한 애책문과 사(詞)
견전(遣奠)138) 을 거행하고, 상궁(尙宮)이 꿇어앉아 함(凾)을 열고 애책문(哀冊文)을 펴서 읽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유세차(維歲次) 경신년139) 10월 26일 신해에 대행 왕비(大行王妃)께서 경덕궁(慶德宮)의 회상전(會祥殿)에서 훙서(薨逝)하여 다음해 2월 20일 갑진에 조전(祖奠)에 천좌(遷座)하였다가, 22일 병오에 익릉(翼陵)에 영구히 천좌하려 하니, 이것이 예(禮)입니다. 궁궐에서 조전(祖奠)140) 을 마친 후 흰 신위(蜃衛)141) 가 오더니, 용순(龍輴)142) 이 엄숙하게 밤중에 실리고 봉삽(鳳翣)143) 이 처량하게 새벽 바람에 나부꼈습니다. 백신(百神)이 경계하여 우러러 따르고, 천관(千官)이 울면서 급히 따라가는데, 우러러 바라보아도 미칠 데가 없으니, 상상(想像)한들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 어진 보좌(補佐)를 갑자기 잃음을 비통해 하시고, 휘음(徽音)144) 이 영원히 떠나가심을 애도(哀悼)하시고, 초도(椒塗)145) 를 돌아보시면 몹시 슬퍼하시고, 해로(薤露)146) 에 감개(感慨)하여 더욱 슬피 우셨습니다. 이에 동관(彤管)에 명하여 공덕(功德)을 기록하게 하고, 보책(寶冊)을 베풀어 그 빛을 드날리게 합니다."
하고, 그 사(詞)에 이르기를,
"왕실[邦家]이 창성(昌盛)함은 진실로 좋은 배필에 의뢰하는 것이다. 이비(二妃)147) 는 우(虞)나라의 본보기가 되었고, 일란(一亂)148) 은 주(周)나라를 흥성(興盛)하게 하였네. 빛나는 성조(盛朝)에 옛 아름다운 배필보다 뛰어나니, 열조(列祖)께서 지복(祉福)을 쌓아 두셨다가 신손(神孫)을 계우(啓佑)하여 초기에 짝을 지어 주셨다.
지극히 아름다운 명문(名門)은 훌륭하고도 법도가 있었으니, 그 의(儀)를 숙신(淑愼)하여 모부(姆婦)149) 를 따라 예(禮)를 행하였고, 사기(史記)를 보고 시(詩)를 지었다. 아침·저녁으로 온순하고도 공손하여 옥도(玉度)150) 가 어긋남이 없으니, 임금의 배필로 뽑혀서 영문(令聞)151) 이 날로 빛났다. 완유(婉愉)하고 승환(承懽)하며 진실로 돈독하게 사랑하고 공경하니, 사성(四聖)께서 기뻐하시고 육궁(六宮)이 노래하였다. 내치(內治)를 이어받아 보좌함이 더욱 성대(盛大)하였고, 검소함을 대련(大練)152) 으로 보이고 은혜는 사경(私逕)153) 을 끊었다. 탈잠(脫簪)154) 하면 규계(規戒)를 아뢰고, 첫닭이 울면 거듭 경계하였다. 방락(房樂)155) 이 화목(和穆)함을 펴고, 곤범(坤範)156) 이 순정(純正)함을 좇았다. 게으르지 아니함이 신기(神祇)가 임한 듯하셨으며, 인자하면서도 엄격하게 임하니, 여러 아랫사람들이 공경하였다. 간위(艱危)가 모인 곳에서도 그 마음을 골고루 단단하게 하여 우레·폭풍 같은 위엄으로 거동하니, 음즐(陰隲)157) 이 나타나고 요얼(妖孽)이 행하여지지 못하였다. 순조롭게 길함을 얻어 정위(正位)에 자리하여 널리 후한 은혜를 베푸니, 우리 왕정(王政)의 기초가 되어 옛날 이남(二南)158) 에 견주어지도다. 강릉(岡陵)이 일제히 덕을 기리고, 축사(祝史)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거의 백세[期頤]를 향수(享壽)할 줄 알았는데, 복록(福祿)이 더디게 이르러 어찌 천명(天命)이 돕지 않는가? 마침내 신리(神理)를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갑자기 관대(觀臺)에서 재앙을 고하자, 문득 궁궐[軒宮]에 흉구(凶咎)가 감돌았다. 월어(月馭)가 재촉하니 당길 수가 없었고, 풍륜(風輪)이 끝내 멀리 떠나가고 말았다.
아! 슬프도다. 구중궁궐에서 온화(溫和)하였고, 뭇 신령(神靈)께서 상서롭지 못한 것을 가지(呵止)하였는데, 절선(節宣)159) 하지 않은 허물인가? 어찌 재앙이 갑자기 이르렀으며, 누가 대태(臺駘)에 제사지낼 수 있겠는가? 처음엔 창황하여 의장(儀仗)을 나누고, 조금 후엔 별안간 영결(永訣)하니, 유한(幽恨)을 봉하여 미칠 곳이 없네. 차마 영구히 이별[離背]하니, 자손(子孫)이 번창하는 경사가 막히고, 일찍이 세자(世子)를 얻지 못하였음을 애통해 하네. 인자(仁者)는 장수(長壽)한다는 말을 징험할 바 없고, 성자(聖者)는 다남(多男)한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아! 슬프도다. 좋은 날은 멈추지 아니하고 깊은 밤은 새벽을 막지 못하네, 견관(繭館)은 이미 썰렁하고, 보렴(寶匳)160) 에는 먼지가 쌓이고, 난궁(蘭宮)의 깊숙한 곳에는 이끼가 끼었네, 혜원(蕙苑)은 고요한데 환패(環珮) 소리만 들리고, 상의(裳衣)는 완연한데 유전(帷殿)만 있네. 패조(旆旐)는 어지러이 나부끼며 들판을 가니, 요지(瑤池)161) 는 멀어서 한낮이 저무네. 선로(仙路)는 아득하여 운변(雲輧)이 빨리도 달리니, 옥란(玉欄)에서 천파(天葩)를 구경하고, 은하[銀漢]에서 기사(機絲)를 찾아 보네. 영항(永巷)에 신정(宸情)을 맺었으니, 층관(層觀)에 생각을 머물러 두었네. 아! 슬프도다. 고읍(高邑)은 익익(翼翼)하고, 가성(佳城)은 울울(鬱鬱)하네. 현귀(玄龜)에 점을 치니, 청오(靑烏)가 비결에 맞았네. 이릉(二陵)을 가린 송백(松栢)은 신향(神享)을 접하였으니 많은 사람의 바람이네. 내는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고, 산골짜기는 처량하네. 현방(玄房)이 닫혀서 깊숙하고, 비수(秘隧)가 깊으니 누가 엿보겠는가? 높은 산의 상설(象設)을 돌아보니, 백세에 전하고도 남는 슬픔이 있네. 아! 슬프도다. 물은 구렁으로 흘러가고, 구름은 하늘 끝으로 떠가는데, 인생(人生)은 이 두 사이에서 빨리도 죽어가니, 길고 짧은 것을 헤아려 본들 얼마나 될 것인가? 마침내 함께 명막(冥漠)한 데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오로지 지극한 덕(德)은 소멸되지 아니하고, 아울러 끝없이 밝게 빛날 것이다. 완염(琬琰)을 의탁하여 슬픔을 술회하노니, 아름다운 방명(芳名)이 천억년 동안 전해지리라. 아! 슬프도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이민서(李敏敍)가 제술(製述)하여 바쳤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1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38]견전(遣奠) : 발인(發靷)할 때 문 앞에서 지내는 제식(祭式). 노전(路奠)·노제(路祭)라고도 함. 견전제(遣奠祭).
- [註 139]
경신년 : 1680 숙종 6년.- [註 140]
조전(祖奠) : 발인(發靷) 전에 영결(永訣)을 고하는 제식(祭式). 일포제(日晡祭).- [註 141]
신위(蜃衛) : 구(柩)를 싣는 수레.- [註 142]
용순(龍輴) : 왕의 구(柩)를 싣는 수레.- [註 143]
봉삽(鳳翣) : 상여의 양 옆에 세우고 가는 제구. 원래는 깃으로 만들었으나, 후세에 네모난 화포(畫布)에 길이 다섯 자의 자루가 있고 깃털을 장식했음.- [註 144]
휘음(徽音) : 왕비의 아름다운 언행(言行).- [註 145]
초도(椒塗) : 초방(椒房)과 같은 뜻으로 후비(后妃)의 궁전을 말함. 원래 산초는 열매가 많이 열리므로 이를 섞어 벽을 발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였음.- [註 146]
해로(薤露) :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노래.- [註 147]
이비(二妃) : 순(舜)임금의 후(后)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말함.- [註 148]
일란(一亂) :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후(后)인 태사(太似).- [註 149]
모부(姆婦) : 부도(婦道)를 가르치는 부인. 혹은 유모(乳母).- [註 150]
옥도(玉度) : 아름다운 풍도(風度).- [註 151]
영문(令聞) : 아름다운 이름.- [註 152]
대련(大練) : 굵고 거친 명주를 말함. 후한(後漢)의 마 황후(馬皇后)가 대련(大練)을 입고서 검소함을 보였다고 함.- [註 153]
사경(私逕) : 사사롭게 청탁하는 길.- [註 154]
탈잠(脫簪) : 비녀를 뺌.- [註 155]
방락(房樂) : 방중(房中)의 즐거움.- [註 156]
곤범(坤範) : 왕비의 법도.- [註 157]
음즐(陰隲) : 하늘이 암암리에 백성을 안정시킴.- [註 158]
이남(二南) : 《시경(詩經)》의 주남(周南)·소남(召南).- [註 159]
절선(節宣) : 철을 따라 몸을 조심함.- [註 160]
보렴(寶匳) : 화장에 쓰는 제구·경대.- [註 161]
요지(瑤池) : 주나라 목왕(穆王)이 서왕모(西王母)와 만났다는 선경(仙境).○行遣奠。 尙宮跪開凾, 展哀冊文讀之, 其文曰:
維歲次, 庚申十月二十六日辛亥, 大行王妃薨于慶德宮之會祥殿, 越明年二月二十日甲辰, 遷座于祖, 二十二日丙午, 永遷于翼陵, 禮也。 丹階輟祖, 素衛陳行。 龍輴儼其宵載, 鳳翣凄其晨颺。 百神戒而景從, 千官號而駿奔。 瞻望靡及, 想像奚存? 惟我主上殿下, 悲良佐之遽失, 悼徽音之永違。 循椒塗而惻怛, 感薤露而增唏。 命彤管而載烈, 宣寶冊而揚輝。 其詞曰: 邦家之昌, 寔資好逑。 二妃刑虞, 一亂興周。 於赫盛朝, 邁古匹休, 列祖儲祉, 啓佑神孫。 作合初載, 鍾美名門。 柔嘉維則, 淑愼其儀。 從姆率禮, 顧史問詩。 溫恭朝夕, 玉度無虧。 明离選配, 令聞日熙。 婉愉承懽, 誠篤愛敬。 四聖悅怡, 六宮歌詠。 比纉內治, 輔助彌盛。 儉昭大練, 恩絶私逕。 脫簪進規, 聞鷄申儆。 房樂宣和, 壼範循正。 怠惰不設, 神祗若臨。 慈莊以莅, 列御是欽。 艱危之會, 貞固其心。 雷風動威, 克彰陰隲。 妖孽莫售, 順信獲吉。 黃裳居體, 博厚施覃。 基我王政, 視昔二南。 岡陵齊頌, 祝史無愧。 庶享期頣, 福祿川至。 奚天命之不佑? 竟神理之難窮。 忽觀臺之告祲, 奄軒宮之纏凶。 月馭催而莫攀, 颷輪逝而長終。 嗚呼, 哀哉! 金門重兮, 穆以淸; 衆靈護兮, 呵不祥。 非節宣之或愆, 豈災沴之遽嬰? 孰可禜於臺駘, 難責技於扁盧。 始蒼黃而分仗, 俄永訣於斯須。 緘幽恨而莫達, 忍萬古而離背。 痛螽斯之嗇慶, 曾燕禖之罔賴。 仁者壽兮, 旣無徵; 聖多男兮, 果安在? 嗚呼, 哀哉! 良辰不留, 厚夜難晨。 繭館已冷, 寶奩生塵。 蘭宮遽兮, 莓苔色; 蕙苑閴兮, 環珮聲。 宛裳衣兮, 帷殿; 紛旆旐兮, 郊坰。 瑤池遠兮, 白日晩; 仙路邈兮, 飄雲輧。 賞天葩於玉欄, 訪機絲於銀漢。 結宸情於永巷, 留睿想於層觀。 嗚呼, 哀哉! 高邑翼翼, 佳城鬱鬱。 玄龜效卜, 靑烏叶訣。 蔭二陵之松栢, 接神京之群望。 川原兮逶迤, 澗谷兮悽愴。 玄房閉兮幽幽, 秘隧深兮誰窺? 眷崇丘之象設, 寄百世之餘悲。 嗚呼, 哀哉! 水流于壑, 雲徂乎方。 人生兩間, 與化俱忙。 計脩短其幾何, 卒同歸於冥漠。 惟至德之未沫, 竝昭明而無極。 託琬琰而述哀, 垂芳懿於千億。 嗚呼, 哀哉! 【大提學李敏叙製進。】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1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