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에서 전 경상 감사 박신규의 장계에 따라 복주하고, 이에 승정원에서 간쟁하다
비국(備局)에서 전 경상 감사(慶尙監司) 박신규(朴信圭)의 장계에 의해서 복주(覆奏)하여 청하기를,
"병영(兵營)·수영(水營)의 재가 군관(在家軍官)과 별사(別士)·무사(武士)·군뢰(軍牢)·별포수(別砲手)·통장(桶匠)·옹장(瓮匠)은 통영(統營) 도청(都廳)에서 모집한 군병 중 한량(閑良)으로 모집된 자를 조사해내어 충정(充定)하고, 세초(歲抄)한 공·사천(公私賤) 중에서도 군역을 겸할 수 있는 자는 속오군(束伍軍)에 편입시키시고, 목장의 가목자(假牧子)·가둔민(假屯民)과 훈국(訓局) 철점(鐵店)의 정수 이외의 장인(匠人)과 모집한 군병은 모두 본읍(本邑)으로 돌려보내시고, 양산군(梁山郡)에 있는 충훈부(忠勳府)의 명안 공주방(明安公主房)·수어청(守禦廳)·명례궁(明禮宮)의 여러 둔군(屯軍)과 유황점(硫黃店)의 소속으로 모집한 군병도 이에 의하여 정역(定役)시키시고, 함안군(咸安郡)의 내노비(內奴婢)의 공목(貢木)과 환지(換紙)의 수를 다시 내사(內司)로 하여금 적절하게 헤아려 정하게 하거나 혹은 본포(本布)로 봉납(捧納)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으나, 다만 명례궁과 명안 공주방에서 모집한 군병을 대오에 편입하는 일과 내사(內司)의 면포(綿布)와 환지(換紙)의 일은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진계(陳啓)하여 간쟁(諫爭)하기를,
"경화(更化)의 초기에 팔도에 선유(宣諭)하여 크고 작은 백성의 고통을 특별히 살피게 한 것은 사실상 백성의 슬픔을 걱정하고 폐단스러운 일을 제거시키려는 성상의 뜻이었으므로 무릇 듣고 보는 이는 흠앙(欽仰)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모두들 크게 진작(振作)되고 크게 경장(更張)되는 일이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무릇 내사에 관계된 일은 일체 시행하지 못하게 하시며 마치 사적으로 보호하시는 듯하옵니다. 대체로 사(私)라는 글자는 임금으로서는 마땅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전후의 연신(筵臣)이 반복하여 탑전(榻前)에서 진달한 것이 한두 번뿐이 아니었는데, 이번에 전하께서 내리신 처분은 크게 신하들의 기대에 어긋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백성의 고통은 생각지 않으시고 내사에 소속된 자만을 치우치게 보호하십니까?"
하였으나, 임금이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79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07면
- 【분류】군사(軍事)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 재정-역(役)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甲寅/備局因慶尙前監司朴信圭狀本, 覆奏請: "兵、水營在家軍官、別武士、軍牢、別砲、手桶匠、甕匠, 統營都廳募軍閑良募入者, 査出充定。 歲抄公私賤, 可以兼役者, 則編入束伍, 牧場假牧子、假屯民, 訓局鐵店數外匠人募軍, 皆刷送本邑。 梁山郡所在忠勳府、明安公主房、守禦廳、明禮宮諸屯及硫黃店所屬募軍, 亦依此定役, 咸安郡內奴婢貢木換紙之數, 更令內司, 量宜折定, 或以本布捧納。" 上從之。 獨明禮宮、明安公主房募軍編伍事及內司綿布換紙事, 不許。 政院陳啓爭之曰: "更化之初, 宣諭八道, 大小民瘼, 特令採訪者, 實出於軫民隱除弊事之聖意。 凡在瞻聆, 莫不欽仰以爲, 大振作、大更張自今日始矣。 近來凡係內司之事, 一切勿施, 有若私護者然, 蓋私之一字, 人主之所當深戒者也。 前後筵臣反覆陳達於榻前, 不翅縷縷, 而今者殿下處分, 大有乖於臣隣之所望, 何殿下獨不念民生之困苦, 而偏護內司之所屬耶?" 上不從。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實錄卷之十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79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07면
- 【분류】군사(軍事) / 신분-천인(賤人) / 농업-전제(田制) / 재정-역(役) / 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