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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0권, 숙종 6년 윤8월 24일 경술 3번째기사 1680년 청 강희(康熙) 19년

전라 감사 임규의 서장에 따라 정개청·곽시·전팽령 등의 사원을 헐도록 하다

임금이 명하여 정개청(鄭介淸)·곽시(郭詩)·전팽령(全澎齡) 등의 사원(祠院)을 헐어버리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전라 감사 임규(任奎)가 서장(書狀)으로 말하기를,

"도내(道內)의 여러 고을에서 무뢰배(無賴輩)들이 다투고 시끄럽게 굴면서 작폐(作弊)하는 변(變)이 전라도의 두 고을에서 먼저 발각되었는데, 풍문에 들으니, 그러한 나쁜 짓을 본받은 자들이 심지어 칼을 빼어들고 잠입해서 귀와 뺨을 찌르거나 자르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놀랍고 참혹한 짓이 실로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풍습이 이와 같이 극악한 지경에 이른 것은 대개 정개청의 서원(書院)을 창설한 데에서 비롯된 것인데, 윤휴(尹鑴)는 그 원장(院長)이 되어서 많은 선비들을 위협하고 제압할 계책을 세웠습니다. 선비라고 이름하여 조금이라도 지식(知識)이 있는 자라면 정개청의 심행(心行)을 익히 듣고 윤휴의 흉패(兇悖)함을 익히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그 서원 보기를 마치 음사(淫祠)처럼 여겨 문(門)만 바라보고도 피하여 하나도 존봉(尊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윤휴가 곧 도내의 붙좇는 무리들을 자기편으로 맞아들여 그 기세를 빌어서 이익으로 유혹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므로, 정개청의 서원은 도리어 죄를 범하고 도망한 자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대개 윤휴 등 역적들이 복주(伏誅)되면서부터 소식을 들은 자들이 서로 축하하면서 비로소 향교(鄕校)·서원(書院)에 일제히 모여 통문(通文) 보낼 것을 발론(發論)하여 방자한 흉도(兇徒) 무리를 적발(摘發)하여 삭벌(削罰)500) 을 시행하니, 패역(悖逆)하고 망령스러운 무리들이 스스로 용납되지 못할 줄을 알고 도리어 그 악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습이 만약 자라난다면 장차 이르지 아니할 바가 없을 것이므로 도내의 공론(公論)을 널리 채용하여 그들 중에서 주모자(主謀者)를 적발해냈으니, 전주(全州)에서는 전 정랑(正郞) 송상주(宋尙周)·진사(進士) 송상로(宋尙魯)·전 현감(縣監) 이유룡(李猶龍)이요, 나주(羅州)에서는 생원(生員) 나위(羅禕)·진사(進士) 김만진(金萬珍) 등인데, 모두 용렬하고 흉악한 사람들로서 도당(徒黨)을 제멋대로 부려서 패란(悖亂)의 풍습을 조성시켰던 것입니다. 지금 만약 우선 죄인들을 정배(定配)시키는 형전(刑典)을 실시하여 몇 년 동안 호우(湖右) 지방에서 그 뿌리를 없애버리도록 하고, 이러서 정개청의 서원을 철거시켜 버린다면, 힘들이지 아니하고서도 무사(無事)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예조에 복주(覆奏)하기를,

"호남(湖南) 여러 고을의 패란(悖亂)한 풍습은 실지로 너무나 큰 변(變)입니다. 그 중에서 주모자인 송상주·이유룡은 본시 조정의 관리였으니, 그 죄상을 유사(攸司)로 하여금 품신(稟申)하여 처리하게 하며, 송상로 등은 이미 도신(道臣)에게 도류(徒流) 이하로 혼자 결단하도록 허락하여 법대로 죄를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밖에 작폐한 자들도 단지 유벌(儒罰)501) 만 시행해서는 안될 것이니, 본도(本道)로 하여금 그 경중(輕重)을 나누어 죄를 주도록 하소서. 정개청의 서원을 철훼(撤毁)하는 일은 해조(該曹)에서 대신들에게 의논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김수항(金壽恒)·정지화(鄭知和)·김수흥(金壽興)은 모두 철훼하기를 청하였는데, 민정중(閔鼎重)은 다시 효종조[孝廟朝]에 경연(經筵)에서 상주(上奏)한 말을 인용하기를,

"정개청·곽시·전팽령 세 사람의 사원(祠院)을 헐어버리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명하여, 선대 양조(兩朝)의 하교(下敎)에 의하여 속히 철훼하여,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다투어 작폐하는 폐단을 막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81면
  • 【분류】
    사법(司法)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500]
    삭벌(削罰) : 유적(儒籍)에서 제명하는 벌을 말함.
  • [註 501]
    유벌(儒罰) : 유자(儒者)끼리 징계를 하던 것으로, 벌줄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름에 누런 종이표를 붙이거나, 유적(儒籍)에서 삭제하는 형벌.

○命毁鄭介淸郭詩全彭齡等祠院。 先是, 全羅監司任奎狀言: "道內列邑無賴輩鬪鬨作挐之變, 首發於全羅二邑, 聞風效尤者, 至於拔劍潛入, 擊割耳頰, 其爲驚慘, 實非細憂。 風習之至於此極者, 蓋由於創設鄭介淸之書院, 而尹鑴爲其院長, 以爲䝱制多士之計。 以士爲名, 而稍有知識者, 莫不慣聞介淸心行, 熟知尹鑴之兇悖, 視其書院, 有若淫祠, 望門而避, 無一尊奉。 故乃延攬道內趨附之輩, 假其氣勢, 利誘嘯聚, 介淸書院, 反爲逋逃之藪矣。 自夫賊之伏法, 聞者相賀, 始乃齊會校院, 發論通文, 摘發肆兇之類。 施以削罰, 則悖妄之徒自知不容, 反肆其惡, 此習若長, 將無所不至。 博採道內公論, 摘得其中謀主, 全州則前正郞宋尙周、進士宋尙魯、前縣監李猶龍, 羅州則生員羅褘、進士金萬珍等, 皆以麤劣兇巧之人, 頣指徒黨, 釀成悖亂之習。 今若姑施投畀之典, 使數年去根於湖右, 仍撤介淸書院, 則不勞而可得無事。" 云。 禮曹覆奏曰: "湖南列邑悖亂之習, 實是莫大之變。 其中主謀者宋尙周李猶龍, 係是朝官, 其罪狀令攸司稟處, 宋尙魯等, 旣許道臣徒流以下自斷, 當依法治罪, 而此外作挐者, 亦不可只施儒罰。 令本道分輕重科罪, 介淸書院撤毁事, 該曹請議大臣。" 金壽恒鄭知和金壽興皆請撤毁。 閔鼎重復引孝廟朝筵奏之說, 請毁介淸郭詩全彭齡三人祠院, 上命依兩朝下敎, 卽速毁撤, 以正士習, 以杜紛挐之弊。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81면
  • 【분류】
    사법(司法)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