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10권, 숙종 6년 윤8월 24일 경술 2번째기사
1680년 청 강희(康熙) 19년
박광옥·김덕령의 임진 왜란 때 의병 창의에 따른 포장을 논의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동경연(同經筵) 이민서(李敏敍)가 말하기를,
"광주(光州) 사람 박광옥(朴光玉)은 바로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사류(士流)인데, 문과(文科) 출신으로 대관(臺官)과 시종(侍從)을 지냈습니다. 임진란(壬辰亂)을 맞이하여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노병(老病)이 있어서 종군하지는 못하고 집에서 응접(應接)하며 규획(規劃)한 바가 많았습니다. 김덕령(金德齡)도 또한 이 주(州)의 사람인데, 해를 꿰뚫을 충성과 하늘에 닿을 원통함을 온 세상이 악비(惡飛)에 견줍니다. 주(州)의 사람들이 사당(祠堂)을 세워서 모두 제향(祭享)하니, 조정에서도 또한 마땅히 포장(褒奬)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이민서가 일찍이 목사(牧師)를 지내어 그 일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해조(該曹)에 명하여 대신들과 의논하여 사액(賜額)하게 하였다. 대신 김수항(金壽恒)·김수흥(金壽興)·정지화(鄭知和)·민정중(閔鼎重) 등이 모두 허락해야 한다고 말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481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