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조정의 분열과 붕당을 없애도록 당부하다
대신(大臣)과 비변사(備邊司) 당상관을 인견(引見)하였다. 영의정(領議政) 허적(許積)과 좌의정(左議政) 민희(閔熙)가 격물 치지(格物致知)·성의 정심(誠意正心)의 공부와 청심 과욕(淸心寡欲) 등의 말로 진계(進戒)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들이 진계하는 말에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들도 또한 나의 뜻을 본받아서 사(私)라는 것을 없애버리고 공도(公道)를 널리 베푸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호조 판서(戶曹判書) 오정위(吳挺緯)가 서울의 백성을 구호하는 물자로 통영(統營)에 있는 벼 6천 석(石)을 병선(兵船)을 사용해서 운반하여 오기를 청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병선은 사변에 대비(待備)하는 것이므로 백성을 구호하는 것에 비하면 도리어 가벼우니, 마땅히 통제사(統制使)에게 명해서 병선을 내어 곡식을 실어서 운반하게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임금이 말하기를,
"새해가 된 뒤에 비로소 여러 신하들을 접견하였으므로 나는 마땅히 여러 신하를 위하여 경계하여 타이르니, 여러 신하들은 그것을 깊이 생각하라. 작년의 일을 보면 조정이 궤열(潰裂)되고 화기가 손상되었으니, 대소 신하들은 나의 말을 정신차려 들어서 붕당(朋黨)이라는 두 글자를 제거하고 이조(吏曹)에서도 또한 이 뜻을 알아서 사람쓰기를 공평하게 하라. 또 백성이 편안하고 근심하는 것은 수령(守令)에 달려 있고, 수령의 파면과 승진은 감사(監司)에 달려 있으니, 감사는 마땅히 선택해서 보내야 한다. 어사(御史)는 간사한 백성의 헐뜯는 말을 잘못 들으면 허실(虛實)이 서로 가리어지는 폐단이 없지 않으니, 도목 정사(都目政事)005) 때 수령을 마땅히 아주 잘 선택해서 보내라. 근래에 벼슬길이 청백(淸白)하지 못한 것은 처음의 입사(入仕)에 연유하는 것이니, 처음의 벼슬도 또한 마땅히 아주 잘 선택해야 한다."
하였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김석주(金錫胄)가 아뢰기를,
"강화도(江華島) 굴우포(屈于浦)의 신언(新堰)은 세(稅)를 거두어 들이는 것이 너무 중하므로, 백성이 경작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여 황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영청(御營廳)에 속한 군인으로서 기호(畿湖) 지방으로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자가 거의 수백 명에 이르니, 신은 농사 도구와 농사지을 양식과 농사지을 소를 별도로 준비하고, 사람을 보내어 이 무리를 감독 통솔해서 그 땅을 갈게 하고, 그 곡식을 세로 받아 군량으로 저장하고, 그 사람들을 10명 또는 5명씩 연하여 초대(哨隊)를 편성하려고 하는데, 올봄에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굶주린 백성도 처치하고, 황폐한 토지도 개간하고, 또 군병을 보루(保壘)가 될만한 땅에 첨가하게 되니, 일이 모두 편리하고 좋다. 그대로 하라."
하였다. 부호군(副護軍) 정유악(鄭維岳)이 감사와 수령이 병사(兵使)를 업신여긴다고 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령(守令)이 병사(兵使)를 가볍게 보아 대부분 호령을 받들어 행하지 않고, 감사도 또한 병사를 억제함이 너무 지나쳐서 군정의 평가도 또한 서로 의논하지 않으니, 자못 지방의 군무(軍務)를 분담하는 뜻이 아니다. 이 뒤로는 일이 군정에 관계되는 것은 감사와 병사가 반드시 서로 의논하고, 수령으로서 병사의 호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병사는 곧 아뢰어서 파면시키게 하고, 감사는 죄과를 조사하여 죄를 논하라. 이로써 비변사는 여러 도(道)에 단단히 타일러 알려 주어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영의정(領議政)이 나이가 70이 넘어 대궐 뜰을 출입하는 데 걷기가 매우 어려워서 곁에서 부축을 한 뒤에야 다니게 되니, 특별히 예우(禮遇)하는 방법이 없을 수 없다."
하고, 해조(該曹)에 분부해서 안석과 지팡이[几杖]를 하사하였다. 예조(禮曹)에서 내외(內外)에 잔치를 내려주고 기로연(耆老宴)도 겸해서 행하고 1등의 음악을 내려주는 일을 품지(稟旨)하니, 임금이 허가하였다. 허적이 차자를 올려 사직하니, 임금이 권면하고 타일러서 허가하지 않았다. 또 기로연을 사양하니, 임금이 허가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3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구휼(救恤)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정(軍政) / 농업-수리(水利) / 재정-잡세(雜稅)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
- [註 005]도목 정사(都目政事) : 관원의 근무 성적을 고과(考課)하여 출척(黜陟:축출과 등용)과 이동(移動)을 행하던 일.
○引見大臣、備局堂上。 領議政許積、左議政閔熙以格致誠正之工, 淸心寡欲等語進戒, 上曰: "卿等進戒之語, 可不惕念? 卿等亦體予意, 克去私字, 恢張公道可也。" 戶曺判書吳挺緯爲畿民賑資, 請統營正租六千石, 用兵船運來, 積曰: "兵船待變, 比救民反輕, 宜令統制使, 發兵船載穀運致。" 上從之。 上曰: "歲新之後, 始接諸臣, 予當爲諸臣戒飭, 諸臣其體念焉。 以前年之事見之, 朝廷潰裂, 和氣損傷。 大小臣僚, 警聽予言, 絶去朋黨二字。 吏曹亦知此意, 用人以公。 且生民休戚係守令, 守令黜陟在道臣, 監司所當擇送, 而御史誤聽奸民毁言, 不無虛實相蒙之弊。 都目政, 守令宜極擇以送。 近來仕路不淸, 由於初入仕, 初仕亦宜極擇。" 兵曹判書金錫冑曰: "江華 屈于浦新堰, 以收稅太重, 民不願耕, 至於荒廢。 御營軍之自畿湖流離上京者, 幾至數百。 臣欲另備田器、農糧、農牛, 差人董率此輩, 入耕於其地, 稅其禾穀, 以儲軍餉, 聯其什伍, 以成哨隊, 趁今春擧行何如?" 上曰: "處置飢民, 開墾荒土, 又添軍兵於保障之地, 事俱便好。 依爲之。" 副護軍鄭維岳, 以監司、守令之凌侮兵使陳達, 上曰: "守令輕視兵使, 多不奉行號令。 監司亦或抑兵使大過, 戎政殿最, 亦不相議, 殊非分掌藩閫之意。 今後事係戎政者, 監司、兵使必須相議。 守令之不遵兵使號令者, 兵使隨卽啓罷, 監司糾察論罪。 以此備局申飭知委諸道。" 上曰: "領相年過七十, 出入闕庭, 步履甚艱, 扶掖而後行。 不可無優禮之道, 分付該曹, 賜几杖。" 禮曹以內外賜宴, 兼行耆老宴, 一等賜樂事稟旨, 上許之。 積上箚辭, 奬諭不許。 又辭耆老宴, 上許之。
-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3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구휼(救恤)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정(軍政) / 농업-수리(水利) / 재정-잡세(雜稅)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