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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8권, 숙종 5년 12월 12일 계유 1번째기사 1679년 청 강희(康熙) 18년

북병사 유비연이 청나라의 차사원이 물어온 지도에 대해 치계하다

북병사(北兵使) 유비연(柳斐然)이 처음에 청(淸)나라의 차사원(差使員)이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 두 산의 형세를 물어올 적에 지도(地圖)와 나침판을 내놓은 일을 계문(啓聞)하여 왔었는데, 이때에 와서 또 치계(馳啓)하기를,

"이른바 지도는 차사원에게 다시 물어본즉 부령 부사(富寧府使) 최양필(崔良弼)은 ‘도첩(圖帖)은 곧 우리 나라의 한 폭의 장지(壯紙)로서, 대개 평안도 청천강(淸川江) 북쪽 여러 고을과 북관(北關)의 행영(行營)과 육진(六鎭), 그리고 삼수(三水)·갑산(甲山)에서 영흥부(永興府) 경계 끝까지의 모든 고을과 산천이 완연히 그려져 있고, 저쪽의 오국성(五國城)·여진(女眞)·걸가퇴(加退)·문암(門巖) 등지도 또한 그 속에 그려져 있다.’고 하고, 대통관(大通官) 장효례(張孝禮)에게 물어본즉, ‘외국의 지형을 어떻게 자세히 알겠소.’ 하기에 ‘천하의 지도를 등사해 가져 왔다는 말이 있다.’ 하였습니다. 저들이 우리 나라의 산천과 도로의 원근(遠近)을 알고 싶어서 이 지도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헛말을 지어내서 우리로 하여금 의혹을 갖게 하자는 것인지, 그 진상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오라지(五羅地)에 원수(元帥)를 두어 나무를 베어 길을 열고 백두산에 치제(致祭)를 하였다는 등의 말로 은근히 과장하고, 또 저들과 우리의 국경 지도로써 기관(機關)을 정탐해 보려는 듯이 하며, 더러는 경원(慶源)에 시장을 열 적에 건너편의 선성(善城)·풍성(豊城)·걸가퇴(加退) 등지를 가볼 것인데, 돌아올 때에는 백두산의 터놓은 길로 올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른바 문암이란 종성(鍾城)에서 40리의 거리이고, 여기에서 풍계(豊溪)·걸가퇴를 지나 1백 10여 리에 갈림길이 있는데, 북쪽은 영고탑(寧固塔)으로 가는 길이고 서쪽은 심양(潯陽)으로 가는 길입니다. 저들이 왕래하여 익숙한 길이라면 따로 다시 살필 리 없는데, 이런 말을 발설하는 것이 또한 이상한 듯합니다. 행여 지금 형세가 이미 외롭고 약해져서 덫을 놓아 세력이 강성한 것을 보이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소통사(小通事)가 청나라 사람이 사사로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항시 말하기를, ‘장백산(長白山) 밑에는 왕년에 번호(藩胡)가 철거해 간 옛길이 있다.’ 한다니, 이것을 꼭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효례가 회령 부사(會寧府使) 김흥운(金興運)과 더불어 이야기할 적에 내년에 나오므로 머지않아 다시 만난다고 하기에 재삼 물으니, 비로소 ‘황제가 반드시 나로 하여금 백두산을 살펴보게 할 것인데, 그때는 의주(義州)의 강가에서 길을 떠나 이곳에 올 것이다.’고 하였다 합니다. 장효례는 들뜨고 잡된 사람이어서 그대로 믿을 수는 없으나, 일이 범상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29면
  • 【분류】
    외교-야(野) / 과학-지학(地學) / 정론-정론(政論)

    ○癸酉/北兵使柳斐然初以淸差指問白頭長白兩山時, 設地圖, 泛鐵事啓聞矣。 至是又馳啓曰: "所謂地圖, 更問于差使員, 富寧府使崔良弼則以爲: ‘圖帖卽我國一幅壯紙, 而蓋自平安淸北諸邑, 以及北關行營、六鎭、三甲, 終至永興府地界, 而列邑山川, 宛然畫出。 彼邊五國城, 女眞 加退門巖等地, 亦在其中。’ 問於大通官張孝禮曰: ‘外國地形, 何以詳知耶?’ 答曰: ‘以天下地圖, 謄寫持來。’ 云。 未知彼人欲知我國山川, 道里遠近, 作爲此圖歟, 抑托此虛喝, 欲使人疑惑歟, 其間情僞, 有未可測。 而初以五羅地設置元帥, 伐木開路, 白頭山致祭等語, 隱然誇張。 又以彼我境地圖, 有若揣摩機關者然, 或稱慶源開市時, 往見越邊善城豐城 加退等地, 而回還之日, 當由白頭山所開之路云云。 所謂門巖, 距鍾城四十里, 由此而過豐溪 加退一百十餘里有岐路, 北則寧固塔路, 西則潯陽道也。 渠輩往來之熟路, 別無更審之理, 而發此說者, 亦似異常。 無乃卽今形勢已孤弱, 欲爲設機示强耶? 且聞小通事所傳淸人私語, 恒言: ‘長白山下有往年撤去藩胡之舊路, 切欲知此。’ 且孝禮會寧府使金興運語時稱: ‘明年出來, 更逢不遠。’ 再三申問, 則始言: ‘皇帝必使俺見白頭山, 伊時自義州江邊, 作行來此。’ 云。 孝禮是浮雜之人, 不可取信, 而事係非常云矣。"


    •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29면
    • 【분류】
      외교-야(野) / 과학-지학(地學)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