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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8권, 숙종 5년 6월 13일 병자 2번째기사 1679년 청 강희(康熙) 18년

판부사 허목이 영의정 허적의 죄를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판부사(判府事) 허목(許穆)이 차자를 올리기를,

"영의정 허적은 선왕께서 부탁한 신하요, 주상께서 친신(親信)하는 신하로, 마치 제환공(齊桓公)의 관중(管仲)과 같은 신하로서 임무가 크고 책임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위엄과 권세가 드세지자 척리(戚里)128) 와 결탁하여 형세를 만들고 환관과 귀근(貴近)을 밀객(密客)으로 삼아서 임금의 동정을 엿보아 영합을 하고 있습니다. 상문(相門)에 내관(內官)이 있다는 비난이 있은 이후 깊은 산 험준한 곳에 수많은 성루를 쌓도록 권장하여, 백성은 괴로와하는데도 일에 부지런하다는 것으로 주상의 뜻을 현혹시켜 권력을 독차지하는가 하면, 그의 서자(庶子) 허견(許堅)은 하는 짓이 무례하지만 법을 맡은 자도 그것을 막지 못합니다. 남구만(南九萬)의 상소로 일이 비로소 발로되기는 하였으나, 비호하고 덮어버려서 남구만은 귀양가고 허견은 끝내 무사하니, 인심이 더욱 불쾌해 하고 있습니다. 의리를 버리고 세리(勢利)를 좇는 무리가 안팎으로 늘어서서 문정(門庭)이 저자와 같고 뇌물이 줄을 이으며, 귀척·환관과 깊이 관계 맺고 아첨하고 아양떠는 자와 친히 지내니, 주상께서 이 사람과 더불어 국사를 꾀한다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송시열 때 정승에 올랐고 서로 사이가 좋아서 의논을 같이 하더니, 송시열이 패하자 공론에 부합하여 마치 처음부터 영합한 것이 없는 듯이 하였고, 일을 고하여 논의가 일어남에 미쳐서는 ‘이 예(禮)가 만약 시행된다면 마침내 난처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하며 저지하여 시행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대의의 중함이 종묘에 있습니까, 송시열에게 있습니까? 일이 난처하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일이겠습니까? 강도(江都)의 적서(賊書)129) 가 나오고 나서 인심이 불안하여 사변을 헤아리기 어려운데도 또 즉시 상달하지 않은 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지금 상하(上下)가 기강이 없어서 인심이 산란하고 국세가 위태로와지고 있으나, 그가 임금의 신임을 오로지 얻고 국정을 맡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조정이 크게 문란하고 천리가 없어져 가니, 염치를 버리고 탐욕에 빠져 기만이 풍속을 이루는 것은 다만 그 잗다란 일일 뿐입니다. 신은 누가 이 잘못을 져야 할지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해란 뭇 양기의 장(長)이고 군주의 표징이므로, 군주가 도를 닦지 않으면 해가 그 도수(度數)를 어기어 흐려지고 빛이 없습니다. 그 현상이 해돋이에 나타나면 법이 여알(女謁)에 끌려서이고, 해가 뜬 뒤에 나타나면 근신이 정치를 어지럽혀서이고, 해가 중천일 때 나타나면 대신이 기망하여서입니다. 대신이 권력을 잡으면 보좌하는 사람이 몰래 붙고 시비가 현혹하게 되니, 그 재앙은 해와 달이 빛이 없는 것입니다. 눈이나 서리가 여름에 내리고 별자리가 궤도(軌道)를 어기는 것도 모두 대신의 허물입니다. 대신의 직책이란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모든 정사를 다스리는 것이니, 어찌 제 몸을 귀하게 하고 제 집을 부유하게 하고 제 세도를 키워서 제 의욕만 만족시킬 따름이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피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卿)의 차자 내용을 보니 나도 몰래 마음이 오싹하고 뼈가 선뜩해진다. 아! 영의정이란 원로 시귀(蓍龜)130) 로서 삼조(三朝)131) 를 보좌하는 만큼 마음을 다하여 충성을 다해야 신명(神明)에게 질정(質正)할 수 있다. 경도 산림(山林)의 기덕(耆德)으로서 모자라는 나를 보필하고 있는데, 나의 기대가 어찌 얕겠는가? 그런데 지금 와서 함께 공경하며 같이 다스리는 의를 생각지 않고 준절히 시기하는 무리의 모함하는 말에 동요되어, 신하로서 차마 듣지 못할 막가는 죄를 수상(首相)에게 씌워서 장차 조정을 괴열시키고 국사를 파괴하려 하니, 이 무슨 꼴이며, 이 무슨 짓인가? 내가 실로 마음이 아프고 한숨이 나온다. 차자 가운데 ‘척리(戚里)와 결탁하여 형세를 만들고 환관·귀근(貴近)과 결탁하여 밀객(密客)을 삼아 주상의 동정을 엿보아 영접한다.’ 한 것은 더욱 놀랍다. 이는 반드시 들은 곳이 있을 터이니, 스스로 자수(自首)하도록 하여 처치의 대책을 마련케 하라. 그리고 그날 흉서(凶書)를 즉시 올리지 않았던 것은 먼저 몰래 체포하는 전례가 있으니, 이는 누설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써 하나의 죄안을 만드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안팎을 결탁하여 기만하고 영합한다는 등의 말을 수상에게 억지로 씌운다면 군부(君父)를 어떤 처지에 갖다 두겠다는 말인가? 이는 실로 나의 부덕함에 말미암은 것이다. 그저 스스로 통탄스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1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

  • [註 128]
    척리(戚里) : 임금의 외척(外戚).
  • [註 129]
    강도(江都)의 적서(賊書) : 숙종 5년(1679) 3월 강화도에 돈대(墩臺)를 쌓는 현장에 던져진 이유정(李有湞)의 투서.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손자인 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을 옹립하자는 내용임.
  • [註 130]
    시귀(蓍龜) : 복서(卜筮)를 하는 시초(蓍草)와 거북. 모두가 사물의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신물(神物)이니, 국가의 중대한 일을 미리 판단할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을 시귀에 비유한다.
  • [註 131]
    삼조(三朝) : 효종조·현종조·숙종조.

○判府事許穆箚曰:

領議政許積, 先王所顧托, 上所親信, 如齊桓之於管仲。 任大責重, 威權旣盛, 締交戚里, 以爲形勢; 宦寺貴近, 結爲密客, 伺上動靜, 以爲迎合, 有相門內官之譏。 勸興作深山險阻, 城壘萬杵, 百姓苦之。 而以勤事, 惑上意, 以專權力。 其庶子所爲無狀, 掌邦禁者莫之禁, 因南九萬疏事始發, 而掩匿覆蓋, 九萬竄, 卒無事, 人心益不快。 舍利趨勢之徒, 布列內外, 門庭如市, 賂遺相屬。 其所深者貴戚宦寺, 所親者讒侫面諛。 上得此人, 欲與之謀國望治難矣。 彼入相於時烈時, 與之相善, 論議無一違貳。 及時烈敗, 附合公議, 若初無苟同者。 及告事議起, 乃曰此禮若行, 終有難處事, 沮抑不行。 大義所重, 在宗廟乎? 在時烈乎? 事之難處, 果何事也? 江都賊書, 旣出人心危疑, 事變叵測, 而又不卽上聞, 何也? 方今上下無紀, 人心散亂, 國勢危疑。 彼得君不爲不專, 行國政不爲不久, 而朝廷大潰, 天理晦塞。 捐廉棄恥, 貪慾無厭, 欺誣成風, 特其細故, 臣不敢知誰任其咎。 日者, 衆陽之長, 人君之表。 君不修道, 日失其度, 晻昧無光。 日初出, 其法牽於女謁; 日出後, 近臣亂政; 日中, 大臣欺誣。 大臣秉權, 羽翼陰附, 是非熒惑, 厥咎日月無光, 雪霜夏隕, 列星失行, 皆大臣之咎。 大臣之職, 摠百官, 平庶政。 豈但貴其身, 富其家, 大其勢, 以足其意欲而已也? 惟殿下察之。

答曰: "觀卿箚辭, 不覺心寒而骨冷。 噫! 領相以元老蓍龜, 輔相三朝, 竭心盡忠, 可質神明。 卿亦以山林耆德, 匡輔不逮, 予之倚毗, 豈曰淺淺? 而今乃不念寅協共濟之義, 動撓於峻激媢嫉輩陷害之言, 以人臣不忍聞之極罪, 加之首揆, 將使朝廷潰裂, 國事大壞, 此何等景象, 此何等擧措也? 予實痛惋太息也。 箚中所謂: ‘締交戚里, 以爲形勢, 宦寺貴近, 結爲密客, 伺上動靜, 以爲迎合。’ 云者, 尤不勝驚駭。 此必有所聞處, 使之自首, 以爲處置之地。 且伊日凶書之不卽上聞, 先自密捕, 已有舊例, 亦恐有漏泄之患故也。 以此爲一罪案, 抑何故也? 內外締結, 欺誣迎合等語, 勒加首相, 則置君父於何地乎? 此實由於予之涼德, 只自痛歎慙赧而已。"


  •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1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