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에서 전세 등의 기준과 군포 폐정의 혁파를 청했으나 비변사에서 반대하다
헌부(憲府)에서 전세(田稅)·공물(貢物) 및 노비 신공(奴婢身貢)002) 의 면포(綿布)는 모두 한결같이 조종조(祖宗朝)의 법(法)에 의하여 5승(升) 35척(尺)으로 기준을 삼고, 군포(軍布)도 또한 그 승수(升數)를 감하여 폐정(弊政)을 혁파하기를 청하니, 비국(備局)에서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명하였는데, 비국에서 방계(防啓)003) 하였다. 또 아뢰기를,
"호전(戶典)의 수세조(收稅條)에 ‘모든 진전(陳田)은 면세(免稅)한다.’고 하였으니, 대개 조종(祖宗)이 법을 제정한 뜻은 먹지 못하는 진전으로써 우리 백성에게 해독(害毒)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함이었습니다. 요즈음 듣건대 제도(諸道)에서는 단지 신해년(辛亥年)004) 의 진전만을 면세하고, 그 전후(前後)에 황폐(荒廢)하여 이미 풀밭을 이룬 것에다가 모조리 징세(徵稅)하는 것은 조종이 백성을 생각하던 정사가 아니니, 청컨대 한결같이 법전(法典)에 의하여 면세하여서 백성의 곤란함을 펴게 하소서."
하니, 해조(該曹)에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명하였는데, 해조(該曹)에서 방계(防啓)하였다. 또 아뢰기를,
"제도(諸道)의 감영(監營)·병영(兵營)에서, 장인(匠人)을 칭탁하기도 하고, 모속(募屬)을 일컫기도 하고, 여무(餘武)를 칭탁하기도 하고, 둔군(屯軍)을 일컫기도 하며 교묘히 명목(名目)을 만들어 열읍(列邑)에 바둑돌처럼 포열(布列)하여 한 읍(邑)에 많은 것은 60, 70이나 되고, 적은 것도 또한 40, 30을 내리지 않는데, 일단 영안(營案)에 소속시켰으면 열읍에서 감히 누가 어찌하지 못합니다. 또 수납하는 포(布)는 군포(軍布)보다 약간 가벼운 까닭에 군역(軍役)을 피한 백성들이 서로 데리고 와서 귀속하니, 영속(營屬)은 날로 증가하고 양민(良民)은 날로 축소되어 각읍(各邑)에서 한정(閑丁)을 얻지 못하고, 백골(白骨)과 아약(兒弱)들이 침독(侵督)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이것 때문이니, 청컨대, 일체 조사해 내어 군역(軍役)에 충정(充定)하소서."
하니, 비국(備局)에서 의논하도록 명하매, 비국에서 방계(防啓)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37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註 002]노비 신공(奴婢身貢) : 독립 가정을 가진 외거 노비(外居奴婢)가 신역(身役) 대신 바치는 공물. 외거 노비(外居奴婢)는 선상(選上)이나 기타의 이유 외에는 16세에서 60세까지 공물을 내야 하는데, 노(奴)는 면포 1필, 저화(楮貨) 20장을, 비(婢)는 면포 1필, 저화 10장을 매년 사섬시(司贍寺)에 바침.
- [註 003]
방계(防啓) : 타사(他司)나 타인(他人)이 임금에게 아뢰어 청한 일이나, 임금이 하문(下問)하거나 시킨 일에 대하여 그렇게 시행하지 말도록 아뢰는 것.- [註 004]
신해년(辛亥年) : 1671년 현종 12년.○戊子/憲府請: "田稅貢物及奴婢身貢綿布, 竝一依祖宗朝法, 以五升三十五尺爲準, 軍布亦減其升數, 以革弊政。" 命備局議處, 備局防啓。 又啓曰: "《戶典》收稅條, 全陳田免稅。 蓋祖宗制法之意以爲, 不可以不食之陳田, 毒我生民也。 近聞, 諸道只免辛亥陳田, 而其前後荒廢, 已成莽蒼者, 竝徵稅, 非祖宗念民之政也。 請一依法典免稅, 以紓民困。" 命該曹議處, 該曹防啓。 又啓曰: "諸道監、兵營, 或稱匠人、或稱募屬、或稱餘武、或稱屯軍, 巧作名目, 碁布列邑, 一邑多者六七十, 少者亦不下四三十, 一屬營案, 列邑莫敢誰何。 且其所收之布, 較軍布稍輕, 故民之避軍役者, 相率而歸之, 營屬日增, 良民日縮。 各邑之不得閑丁, 使白骨、兒弱, 未免侵督者, 職由此也。 請一切査出, 充定軍役。" 命備局議處, 備局防啓。
-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378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註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