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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6권, 숙종 3년 10월 6일 경술 2번째기사 1677년 청 강희(康熙) 16년

과거시험의 제목 등에 대해 의논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시소(試所)의 초기(草記)177) 를 보니, 글의 제목을 가지고 거자(擧子)들이 소요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하니, 지사(知事) 민희(閔熙)가 말하기를,

"그 해제(解題)를 보니, 바로 장자(長子)를 폐하고 서자(庶子)를 세우는 일로서, 단궁(檀弓)의 단문(袒免)과 자유(子游)의 최복(衰服)에 대한 설(說)과 서로 안팎을 이루었기 때문에 유생(儒生)의 말이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하였다. 참찬관(參贊官) 권해(權瑎)가 말하기를,

"유생은 주장하는 바가 없을 수 없습니다. 시관(試官)이 반드시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선비들을 시험한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제목의 뜻은 내가 이미 상고하여 보았는데, 바로 장무중(藏武仲)이 장자(長子)를 폐하고 소자(少子)를 세운 일이었다.178) 문자(文字)로서 글의 제목에 합당할 만한 것이라면 무슨 한정이 있겠는가마는, 이와 같은 제목을 낸 것은 비록 뜻없이 낸 것이기는 하나 일이 매우 놀랍다. 여러 시관(試官)을 모두 추고(推考)하도록 하라."

하였다. 민희(閔熙)가 말하기를,

"진연(進宴)이 이미 임박하였으니, 의주(儀註)를 미리 검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전(四殿)께서 만약 함께 나가시게 되면 좌차(坐次)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종조(成宗朝)에 삼전(三殿)을 모시고서 진연(進宴)한 일이 있었는데 좌차(坐次)를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조(我朝)의 《실록(實錄)》은 매우 상세하지 못하여 비록 상고해 보도록 하더라도 반드시 나오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신의 견해로는, 대왕 대비(大王大妃)께서는 북벽(北壁) 쪽에서 남쪽을 향하고, 왕대비(王大妃)께서는 동벽(東壁) 쪽에서 서쪽을 향하며, 전하(殿下)께서는 서벽(西壁) 쪽에서 동쪽을 향하는 것이 마땅할 듯한데, 중궁전(中宮殿)의 좌차(坐次)는 적당히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동벽(東壁)의 왕대비(王大妃) 자리에서 조금 뒤로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와 같이 한다면 일의 형세가 마땅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6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註 177]
    초기(草記) : 상주문(上奏文)의 하나. 각 관서에서 정무상(政務上) 중요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사실만을 간단히 적어 상주하는 문서.
  • [註 178]
    장무중(藏武仲)이 장자(長子)를 폐하고 소자(少子)를 세운 일이었다. : 노(魯)나라 양공(襄公) 23년에 계무자(季武子)가 장자(長子)인 공서(公鉏)를 제쳐두고 차자(次子)인 흘(紇)을 후계로 삼으려 하자, 장무중(藏武仲)이 계교를 써서 이를 성사시켰다. 이런 이유로 맹손씨(孟孫氏) 측에서는 장무중을 몹시 싫어하였는데, 뒤에 맹장자(孟莊子)가 죽자 공서가 다시 계교를 써서 차자인 갈(羯)을 후사로 세워 세력을 확장하니, 장무중이 자신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음을 직감하고, "아름다운 병은 나쁜 약만 못하다."하였다. 누가 그 뜻을 묻자 아름다운 병이란 계무자가 자신의 뜻만을 따라서 결국은 자신을 그르치게 한 것이고, 나쁜 약이란 장맹자가 자신을 미워하고 잘못을 바로 보았기에 도리어 자신에게 약이 될 수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이 문맥에서는 계무자가 장자를 폐하고 차자를 세운 일을 빌어서, 인조(仁祖)의 장자 소현 세자(昭顯世子) 대신 효종(孝宗)이 왕통(王統)을 이은 일을 암시한 것으로 쓰였음. 장무중(藏武仲)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 대부 장손흘(藏孫紇).

○御晝講。 上曰: "昨見試所草記, 以書題有擧子紛擾事矣。" 知事閔熙曰: "觀其解題, 乃廢長立庶之事。 與檀弓免、子游衰之說, 相爲表裏, 故儒生之言如此矣。" 參贊官權瑎曰: "儒生不無所執, 試官之必以此題試士者, 未知其意之所在也。" 上曰: "其題意, 予已考覽, 乃臧武仲廢長立少之事也。 文字之可合書題者, 何限也, 乃出如此之題, 雖出無情, 事甚駭然。 諸試官竝推考。" 曰: "進宴已迫, 儀註不可不預講矣。" 四殿若同出, 則坐次不無非便。 成宗朝侍三殿有進宴之事, 坐次未知何以爲之也。 我朝《實錄》甚爲踈漏, 雖使考之, 必無現出處。 以臣臆見, 大王大妃似當北壁南向, 王大妃當東壁西向, 殿下當西壁東向, 而中宮殿坐次, 甚爲難便。 若於東壁王大妃坐, 稍後爲之, 則何如?" 上曰: "如是爲之, 事勢便當矣。"


  •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6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