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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5권, 숙종 2년 5월 25일 병오 1번째기사 1676년 청 강희(康熙) 15년

허적 등이 지패의 시행, 각 군문의 아병·군관을 줄일 것 등을 청하다

영의정(領議政) 허적(許積)과 좌의정(左議政) 권대운(權大運)이 조정에 나아가니, 임금이 인견(引見)하였다. 허적 등이 이후평(李后平)의 벌(罰)을 풀어주기를 청하니, 임금이 힘써 그대로 따랐다. 허적이 각 군문(軍門)의 아병(牙兵)·군관(軍官)을 줄이기를 청하니 임금이 힘써 따랐는데, 그 뒤에 허적이 마침내 이를 거행하지 못하여 일이 결국 실상이 없었으니, 그의 국사(國事)를 도모함의 성실하지 못함이 대개 이와 같았다. 허적이 또 통천 군수(通川郡守) 이태서(李台瑞)가 글이 능하기 때문에 변무사 제술관(辨誣使製述官)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정사(正使)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의 뜻이었다. 권대운이 이를 막고 민희(閔熙)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자, 임금이 보내지 말라고 명하였다. 허적이 만금(萬金)을 사행(使行)에 보내어 뇌물을 주는 자금으로 삼을 것을 청하니, 임금이 좋다고 하였다. 허적이 또 우상(右相) 허목(許穆)을 힘써 나오도록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허적이 말하기를,

"지패(紙牌)는 다음 식년(式年)을 기다려서 모두 마땅히 나무로써 종이에 대신하게 할 것이며, 조관(朝官)은 지금부터 마땅히 먼저 아각패(牙角牌)를 차게 하고 출신(出身)과 잡직인(雜職人)은 그 자원(自願)하는 데 따라 차기를 허락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관직이 있는 자는 이에 의거하여 하며, 출신과 잡직은 그 자원 여부에 따를 필요없이 모두 차게 할 것이다."

하였다. 인해서 내장(內藏)한 호패 사목(號牌事目)을 내렸는데, 바로 인조조(仁祖朝) 병인년147) 에 호패를 시행하기를 의논할 때에 강정(講定)한 것으로서, 인출(印出)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2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 / 외교-야(野) / 호구-호적(戶籍) / 군사(軍事)

○丙午/領議政許積、左議政權大運造朝, 上引見。 等請解李后平罰, 上勉從之。 請汰減各軍門牙兵軍官, 上從其言。 其後, 卒不能擧而行之, 事竟無實, 其謀國之不誠, 類如此。 又以通川郡守李台瑞能文, 欲以爲辨誣使製述官, 蓋正使福善君 之意也。 大運塞之, 閔熙亦以爲不必遣, 上命勿遣。 請送萬金於使行, 以爲行賂之資, 上可之。 又請勉出右相許穆。 上從之。 曰: "紙牌待後式年, 竝當以木代紙, 而朝官則自今宜先佩牙角牌, 出身及雜職人, 從其自願許佩。" 上曰: "有職者依此爲之, 出身雜職不必從其願否, 竝令佩之。" 仍下內藏號牌事目, 卽仁祖朝丙寅議行號牌時講定, 而印出成卷者也。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2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물(人物) / 외교-야(野) / 호구-호적(戶籍)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