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감사 신정과 충청 감사 맹주서를 파면하다
대사헌(大司憲) 윤휴(尹鑴)와 지평(持平) 유하익(柳夏益)·이항(李沆) 등이 말하기를,
"평안 감사(平安監司) 신정(申晸)은 술로 인하여 혼명(昏冥)해져서 오랫동안 직무(職務)를 폐(廢)하였고, 심지어 주정으로 성이 나면 칼[劒]을 빼서 휘둘러 위의(威儀)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의 관직을 파면하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충청 감사(忠淸監司) 맹주서(孟胄瑞)는 청렴하고 신중하게 임금을 받든다는 일컬음은 없고, 공(公)을 등지고 사(私)를 향한다는 비방이 있어서 정령(政令)이 전도(顚倒)된 양상이 이미 그 지방의 백성인 이수원(李壽源)의 소지(訴志)에 나왔습니다. 심지어 사사로운 감정을 끼고 승도(僧徒)를 운살(殞殺)하였으며 관(官)의 위엄을 휘둘러서 사자(士子)들에게 곤욕(困辱)을 주었습니다. 그의 관직을 파면하여 서용(敍用)하지 말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모두 윤허하였다. 신정(申晸)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매양 취하기만 하면 시사(時事)를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었다. 당시의 무리들이 이를 듣고 미워한 것이며, 맹주서(孟胄瑞)는 청주(淸州) 지씨(池氏)의 집 일을 조사할 적에 사실대로 하였고 또 소(疏)를 올려 유수방(柳壽芳)의 일을 가려낸 바 시의(時議)에 크게 거슬렸는데, 이수원(李壽源)은 이수경(李壽慶)의 친족 사람으로 시세(時勢)를 타고 허무한 일을 날조하여 무고(誣告)하였다. 그러기에 윤휴(尹鑴) 등이 신정(申晸)과 〈맹주서를〉 아울러 논핵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28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