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겸 사은사 복창군 이정 등이 북경에서 돌아오다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 등이 북경(北京)에서 돌아왔다.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저들의 일은 물으니, 정이 말하기를,
"동팔참(東八站)186) 부터 강을 따라 2백 리의 땅을 아양(莪陽)이라 부르고 보(堡)를 설치하여 군사를 더 보탰다 하는데, 우리 나라의 창성(昌城) 땅과 멀지 않은 곳입니다."
하자, 허적(許積)이 말하기를,
"이번에 보를 설치한 것은 뒷날 달아나 돌아갈 때에 멈추어 있을 곳으로 삼을 생각이거나, 우리를 의심하여 방수(防守)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 가지 다 염려스럽습니다."
하였다. 정 등이 말하기를,
"부역(賦役)이 매우 간략하여 백성은 오히려 청인(淸人)이 패배할까 염려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싸움에 나아가는 것도 만인(滿人)이 많고 한인(漢人)이 적으므로, 【만인은 곧 청인이다.】 한인은 또한 변란을 일으킬 마음이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가 정금(鄭錦)에게 붙을까 의심하고, 관(關)187) 밖의 진보(鎭堡)에 군사를 보태어 방수합니다. 호황(胡皇)이 친히 교장(敎場)에 가서 조총(鳥銃)을 가장 좋은 병기로 여겨 손수 쏘아 봅니다."
하였다. 정이 또 말하기를,
"사로잡혀 간 손후섬(孫後贍)이라는 자가 방물(方物)을 바칠 때에 주선한 힘이 많았습니다."
하니, 허적도 칭찬하여 그 아우 손후업(孫後業)을 둔전 감관(屯田監官)에 차임(差任)하여 그 마음을 위로하기를 청하고, 허적이 또 말하기를,
"어제 보니, 부사(副使)가 말하려는 것이 있었는데, 장효례(張孝禮)가 그만두기를 권하여 그만두었습니다. 신이 그 말하려던 일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곧 오시수(吳始壽)가 아뢰었던 ‘신하가 강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매우 해괴하나, 반드시 우리 나라 사람이 말한 것인데, 이미 지난날에 있었던 일이니, 족히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49면
- 【분류】외교-야(野)
○癸亥/冬至兼謝恩使福昌君 楨等, 廻自北京。 上引見, 問彼中事, 楨曰: "自東八站, 沿水二百里地, 號莪陽, 設堡添兵云, 與我國昌城地不遠處也。" 許積曰: "今此設堡, 無乃爲他日走歸時居停計耶? 抑疑我而防守耶? 俱可慮也。" 楨等曰: "賦役甚簡, 民猶恐淸人之見敗。 徵兵赴戰, 滿多而漢少, 【滿卽淸人也。】 故漢人亦無思亂之心。 彼疑我貳於鄭錦, 關外鎭堡, 添兵防守。 胡皇親往敎場, 以鳥銃爲兵器之最良者, 手自試放。" 楨又言: "被擄人孫後贍者, 納方物時, 多有周旋之力。" 許積亦稱之, 請以其弟後業差屯田監官, 以慰其心。 積又曰: "昨日見副使, 欲有所言, 因張孝禮勸止而止之。 臣使探其欲言之事, 乃吳始壽所陳臣强之說也。 此言甚是怪愕, 必我國人語, 而事在旣往, 不足憂矣。"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24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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