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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 26권, 현종 14년 1월 3일 갑술 1번째기사 1673년 청 강희(康熙) 12년

좌상 김수항이 상의 책려하고 신칙하는 방법에 소홀함이 있음을 아뢰다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좌상 김수항(金壽恒)이 아뢰기를,

"지금 이렇게 신년 초에 신하들을 인접하셨는데, 옛사람들은 신년이 되면 으레 경계시켜 바로잡는 말씀을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과 같은 자는 본래 학식이 없으니 깨우쳐드릴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국가가 불행하여 전에 없던 큰 흉년을 잇따라 만난 탓으로 마치 큰 병란을 겪은 것처럼 광경이 참혹하니, 지금까지 지탱해 온 것만도 당초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다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사람의 정리상 잊기 쉬운 것이고 군신 상하가 그저 땜질하기만을 일삼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렇게 하는 일 역시 날이 갈수록 시들해지고 말 것입니다.

‘1년에는 1년 동안 할 공부가 있는 법이다.’는 선유(先儒)의 말이 있는데, 이는 학문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국사(國事)를 가지고 말할 때에도 역시 매년 더욱 면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형세를 보면 마치 물이 더욱 쏟아져 내려오는 것과 같은데, 이는 모두가 신하들이 형편없어 제대로 성휴(聖休)를 떠받들지 못한 탓이긴 합니다만, 상께서 책려하고 신칙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어쩌면 조금 소홀한 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자(朱子)송 효종(宋孝宗)에게 고하기를 ‘세월이 빠르게 흐르는데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야말로 감개 무량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절실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동안 상께서 오래도록 건강이 좋지 못하셨으므로 아랫사람들의 구구한 근심이 정말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요즈음 다행히도 정상을 점차 회복하시게 되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유신(儒臣)을 인접하시고 때때로 경연을 여신다면, 성덕이 날로 새로워지는 아름다움이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도 장차 흥기(興起)하는 효과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하고, 우상 이경억(李慶億)이 아뢰기를,

"전하의 안색을 우러러 살펴보니 거의 완전히 정상을 회복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은 경연을 열 수 없다 하더라도 자주 소대를 내리시면 뭇 신하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런 뜻이 없는 것은 아니다마는 병 때문에 뜻대로 잘 안 된다."

하였다. 상이 하문하기를,

"지금 품정할 일이 있는가?."

하니, 병판 김만기(金萬基)가 인하여 정초청(精抄廳)을 설치한 뒤에 잇따라 흉년을 만난 탓으로 본조가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을 진달하고, 또 아뢰기를,

"당초 설립할 때 정태화이완이 모두 온당치 못하다고 말하였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과연 허다한 폐단이 발생하고 있으니, 실로 선처할 길이 없습니다."

하니, 김수항이 아뢰기를,

"이 일이 흡사 그릇을 다 만들었다가 깨뜨리는 것과 같이 되었으니 정말 애석합니다."

하였다. 교리 이규령(李奎齡)이 아뢰기를,

"안동(安東) 사람인 고(故) 교리 이종준(李宗準)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무오 사화(戊午史禍) 때 죽었는데, 뒤에 신리(伸理)되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추증(追贈)되지 않았으니, 참으로 흠전(欠典)이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증직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13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인사-관리(管理)

○甲戌/上御養心閤, 引見大臣及備局諸臣。 左相金壽恒曰: "今此新年初, 引接群臣。 古人有新歲箴規, 而如臣素蔑學識, 有何告猷之言? 國家不幸, 連値無前大侵, 景象之愁慘, 如經大兵, 到今支撑, 亦非當初所望。 第旣往之事, 人情易忘, 君臣上下, 徒事牽補過時, 則亦將日就委靡而已。 先儒有言: ‘一年有一年工夫。’ 非但學問爲然, 以國事言之, 亦當歲加勉勵。 而觀今日之勢, 如水益下, 此皆由於群臣無狀, 未能奉承聖休, 而自上策勵警勅之道, 亦豈容少忽? 朱子之告 孝宗曰: ‘歲月逾邁, 一往而不復返。’ 此實感慨激切之言。 曩者, 玉候長在未寧中, 群下區區之憂, 如何可言? 近幸漸就平復, 待日氣和暖, 引接儒臣, 時時開筵, 則不但聖德有日新之美, 群下亦將有興起之效矣。" 右相李慶億曰: "仰瞻玉色, 幾盡平復。 今雖未能開筵, 若數賜召對, 則可以慰悅群情矣。" 上曰: "非無此意, 而有疾未能如意矣。" 上問: "今有稟定事乎?" 兵判金萬基仍陳精抄設廳之後, 連値凶歉, 本曹難支之狀, 且曰: "當初設立時, 鄭太和李浣皆言其不便。 至於今日, 果有許多弊端, 實無善處之道矣。" 壽恒曰: "此事有如成器罷之, 誠可惜矣。" 校理李奎齡曰: "安東人故校理李宗準, 與金馹孫等, 死於戊午史禍。 後雖伸理, 迄未追贈, 誠欠典也。" 上命贈職。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13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