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 각사에게 재감한 물종을 복구시킬 것인지의 당부를 묻다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각사(各司)에서 재감(裁減)한 물종(物種)을 복구시킬 것인지의 당부(當否)를 물었는데, 좌상 김수항이 아뢰기를,
"지난해에 큰 흉년이 들어 민력(民力)이 바닥났기 때문에 상공(上供) 물선(物膳)에 대해서도 모두 줄였습니다. 이 일이 비록 성덕(聖德)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나, 언제까지고 그대로 줄인다는 것은 사체상 적절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각사의 공물을 한결같이 전대로 줄이게 되면, 지탱하기 어려운 폐가 있을까 염려되니 변동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금년이 조금 풍작이라고 해서 모든 수량을 복구하게 되면 이 또한 백성을 보살피는 도리가 아닌만큼, 무릇 상공(上供)에 관계된 것은 신 등이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으니 오직 성명께서 재량껏 처리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각사의 물종에 대해서는 신 등이 수량을 참작하여 여쭈어 정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부득이한 것을 제외하고는 잠시 앞으로의 형편을 살펴가면서 복구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그러라고 하였다. 이에 상공 물종 가운데 긴요한 것은 복구하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모두 원수(元數) 중에 절반을 복구하라고 명하였다. 수항이 아뢰기를,
"각사 공물 가운데 비록 재감(裁減)을 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서도 모두 분수(分數)를 줄여 급가(給價)하였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쌀이 천하고 물가가 치솟아 원망하는 말들이 꽤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각사 공물 중에 재감한 것은 모두 절반을 복구하고 나머지 절반은 내년 가을이 되거든 다시 논의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김만기가 제주(濟州)의 월령(月令) 진상 및 각사(各司)의 상납(上納) 물종 중에 견감한 것을 복구할 것인지의 여부를 계품하였는데, 우상 이경억이 아뢰기를,
"제주는 올해에도 흉작을 면치 못했으니, 복구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년까지는 복구하지 말라."
하였다. 수항이 접위관(接慰官) 조사석(趙師錫)이 이제 내려갈 참인데 왜관 이전을 허락할 것인지의 여부를 강정(講定)하자고 청하여, 상이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각자 소견을 아뢰도록 하였는데, 수항이 아뢰기를,
"옮기기로 청하는 데가 만일 우리에게 긴요한 곳이 아닐 경우에는 허락을 해도 무방하겠으나, 만일 긴요한 곳일 경우에는 어떻게 허락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경억이 아뢰기를,
"저들이 수로(水路)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미 포구(浦口)를 팠다고 하는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허락을 해야 되는 형세이나, 허락을 하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약함을 보이는 일에 가까우므로 몹시 난처한 일입니다. 다만 차왜(差倭)가 늘 이 일 때문에 나오고 있으니 공억(供億)이 지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업신여기고 거만하게 구는 일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허락을 할 것인지 허락하지 않을 것인지 간에 속히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예조 판서 정지화가 아뢰기를,
"근래에 이 일로 논의가 일치하지 않아 신이 종일토록 곰곰 생각을 하였으나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요즈음 소요스런 일들이 너무 심하고 인심이 크게 변하였으니, 이로 인해 말썽이 생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점이 염려스럽습니다."
하고, 지중추부사 유혁연이 아뢰기를,
"저들이 말하는 왜관 이전의 지역이 순천(順天)·웅천(熊川)·거제(巨濟) 이 세 군데를 벗어나지 않는데, 순천을 허락하게 되면 호남(湖南)의 조운(漕運)하는 길이 끊어지고, 웅천이나 거제를 허락하게 되면 통영(統營)이 손발을 쓸 수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어떻게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포구를 팠다는 얘기는 본디 믿을 수 없는 것임에야 어련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위관으로 하여금 우선은 그들의 청을 막도록 하라."
하였다. 수항이 아뢰기를,
"왜관에 대한 방금(防禁)이 점점 느슨해져 역관(譯官)이나 장사치들이 사사로이 그들과 서로 왕래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누설하여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변신(邊臣)이 제대로 엄히 금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니, 별도로 신칙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동래 부사가 부산 첨사와 더불어 본디 일체로 주관을 해야 하나, 동래는 조금 먼 곳에 있어서 일에 따라 환히 살피기가 어려운 형편이고, 부산은 왜관과 가까이 있어서 무릇 작간(作奸)·범법(犯法)하는 자가 있으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니, 앞으로는 부산 첨사로 하여금 방금을 전담하여 날짜를 정해 시장을 열고, 제멋대로 왕래하는 자를 일절 통금(痛禁)토록 하되, 범금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 즉시 계문하여 효시하고, 첨사가 제대로 엄히 금하지 못할 경우에는 부사가 그를 규찰하여 논죄하라는 것으로 예식을 정해 행회(行會)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경억이 아뢰기를,
"고(故) 참판 윤문거(尹文擧)가 돌림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처(妻)도 사망하여 온 집안이 슬픔에 휩싸여 있으므로 수 개월 이내에는 장사지내기가 쉽지 않다 하니, 몹시 불쌍한 일입니다. 또 재신(宰臣)에 관계된 일이기도 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본도로 하여금 장례 물품을 제급토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133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재정-진상(進上) / 외교-왜(倭) / 사법-법제(法制) / 인사-관리(管理)
○上御養心閤, 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問以各司裁減物種復舊當否, 左相金壽恒曰: "前歲大無, 民力蕩竭, 故上供物膳, 亦皆蠲減。 雖是聖德事, 而每每仍減, 事體未安。 且各司貢物, 一樣仍減, 則慮有難支之弊, 不可不變通。 然謂今年稍豐, 而盡數復舊, 則亦非恤民之道。 凡係上供, 臣等不敢容議, 惟左聖明裁處, 至於各司物種, 則臣等當酌量稟定, 其中不得已者外, 姑觀前頭, 復舊似宜矣。" 上可之。 仍命上供之物, 其中緊要者復舊, 其餘竝令就元數中, 一半復舊。 壽恒曰: "各司貢物中, 雖不爲裁減者, 皆減分給價。 卽今米賤, 物價騰踴, 頗有怨言矣。" 上曰: "各司貢物裁減者, 竝一半復舊, 其一半則待明秋更議。" 兵曹判書金萬基以濟州月令進上及各司上納物種蠲減者, 復舊與否啓稟, 右相李慶億曰: "濟州今年亦未免失稔, 似難復舊矣。" 上曰: "限明年勿復。" 壽恒以接慰官趙師錫今當下去, 請講定移館許否, 上令諸臣, 各陳所見。 壽恒曰: "所請之地, 如不關緊於我, 則雖許無妨, 而如或關緊, 則何可許也?" 慶億曰: "彼以水路不便, 旣已掘浦云。 若果實狀, 則勢似可許, 而許之, 亦近於示弱, 事極難處。 但差倭每以此出來, 不惟供億難支, 侮僈之事, 愈往愈甚, 許不許間, 不可不速斷矣。" 禮判鄭知和曰: "近以此事, 論議不齊, 臣早夜以思, 未得善策。 而第近日騷屑太甚, 人心大變, 因此生釁, 亦何難乎? 是可慮也。" 知中樞柳赫然曰: "彼所謂移館之地, 不出順天、熊川、巨濟三處, 而許順天則湖南漕運之路絶矣; 許熊川、巨濟則統營不得措手足矣, 如何其許之? 況掘浦之說, 本不可信者乎?" 上曰: "令接慰官, 姑塞其請。" 壽恒曰: "倭館防禁漸弛, 譯官商賈輩, 私相往來, 大小之事, 無不漏通。 此由邊臣不能嚴禁之致, 不可不別樣申飭矣。" 上曰: "東萊府使與釜山僉使, 固當一體主管, 而東萊則稍遠, 勢難隨事詗察。 釜山與倭館接近, 凡有作奸犯法者, 宜無不知之理。 今後則令釜山僉使, 專掌防禁, 定日開市, 私自往來者, 一切痛禁。 如有犯禁者, 隨卽啓聞梟示, 如僉使不能嚴禁, 則府使糾察論罪, 以此定式行會可也。" 慶億曰: "故參判尹文擧遘癘以死, 其妻亦亡。 闔家染痛, 數月之內, 掩土未易, 事甚矜惻。 且係是宰臣, 故敢達。" 上曰: "令本道, 題給喪需可也。"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133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재정-진상(進上) / 외교-왜(倭) / 사법-법제(法制)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