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왜가 동래로 온 뒤 왜인이 거리낌 없이 오가다
차왜(差倭)가 동래로 온 뒤로는 왜관(倭館)의 왜인이 줄지어 오가며 조금도 꺼리는 것이 없었다. 혹 문을 지키는 병졸이 꾸짖어 금한다고 노하기도 하고 찬거리가 약소하다고 노하기도 하여, 손으로 때리지 않으면 대뜸 칼을 뽑기까지 하였다. 이달 17일에 왜관의 한 왜인이 어가미(漁價米)가 좋지 않은 것에 성을 내어 좌자촌(左自村) 앞까지 창고지기를 쫓아가서 칼을 뽑아 머리를 쳤다. 이에 부산 첨사 이연정(李延禎)이 곧 군관을 보내어 칼을 빼앗고 묶어서 왜관으로 보내고, 부사 정석(鄭晳)이 엄중히 처단하여 징계하라는 뜻으로 왜관의 왜인에게 말을 전하였더니, 답하기를 ‘자기의 일 때문에 칼을 뽑기까지 하였다면 그 죄가 물론 무겁겠으나, 이번에는 잡물(雜物)을 즉시 들여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툰 것이었으니, 창고지기가 죽지 않았으면 실로 엄중히 다스릴 것이 없다.’ 하였는데, 정석이 치계하여 아뢰었다. 비국이 아뢰기를,
"창고지기가 죽지 않았더라도 칼을 뽑아 쳐서 상처를 입힌 죄는 마땅히 다스려야 하는데 다스리려 하지 않으니 정상이 매우 밉고 또한 뒤폐단에 관계됩니다. 차역(差譯)이 갈 때에 도주(島主)에게 말하여 엄중히 처단할 근거를 만드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80면
- 【분류】외교-왜(倭)
○差倭自到東萊, 館倭往來絡繹, 無復顧忌。 或怒門卒之呵禁, 或怒饌物之略少, 若不手搏, 輒至拔劍。 是月十七日, 館倭一人, 發怒於魚價米不精, 追及庫子於左自村前, 拔劍擊其頭。 釜山僉使李延禎, 卽遣軍官, 奪劍結縛, 送于館中。 府使鄭晳以重處懲礪之意, 送言于館倭則答云: "若因自己事, 至於拔劍, 其罪固重。 而今因雜物, 不卽入給, 有所爭詰, 庫子未死之前, 實無重治之事。" 鄭晳馳啓以聞。 備局以爲: "庫子雖不死, 拔劍擊傷之罪, 在所當治, 而不肯治, 情甚可惡, 亦關後弊。 請於差譯之行, 言于島主, 以爲重處之地。"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46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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