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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 21권, 현종 10년 9월 19일 기유 3번째기사 1669년 청 강희(康熙) 8년

전 부제학 이단상의 졸기

전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 졸하였다.

단상은 이조 판서 이명한(李明漢)의 아들이고, 좌의정 정귀(廷龜)의 손자이다. 집안이 대대로 문장과 복록(福祿)으로써 온 세상에 성대하게 일컬어졌다.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재주 있다는 칭찬이 점점 성해졌는데, 방랑을 좋아하는 문사의 습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효묘(孝廟) 말년에는 신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고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지역에 물러나 있었다. 비록 간간이 고을에 임명되었지만 역시 오랫동안 있지 않았다. 글을 읽어 뜻을 구하고 담박하게 스스로를 지켰으며 또 사우(師友)의 도움으로 나날이 개발되었는데, 대체로 그의 사람됨이 총명하고 올바랐기 때문에 혼미한 벼슬길에서 스스로 벗어나 인고하면서 뜻을 돈독하게 지녀, 마침내 확립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강론한 견해는 대부분 명확하고 투철하였으므로 한 때의 사류들에게 존중을 받았다. 불행하게 일찍 졸하였으니, 애석하다. 임종할 때 유소로 훌륭하고 덕있는 이를 초치하고 큰 사업에 더욱 힘쓰라고 상에게 권하였으며, 또 장식(張栻)의 말을 인용하여 남을 믿어 맡길 때는 일신의 편견을 막고, 남을 좋아하고 미워할 때에는 천하의 이치에 공변되게 하라 청하였고, 아울러 약을 하사한 은전을 사양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37책 687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사급(賜給)

○前副提學李端相卒。 端相, 吏曹判書明漢之子, 而左議政廷龜之孫也。 家世以文章福祿, 爲一世所艶稱。 早登科第, 才譽寢盛, 而自不免爲文士放浪之習矣。 自孝廟末年, 引疾不仕, 退居郊畿。 雖間補州郡, 亦不久居。 讀書求志, 恬靜自守, 且有師友之資, 日有開發, 蓋其爲人, 聰明善悟, 故能自拔於迷塗, 忍苦篤志, 而竟有所立。 其所講論見解, 多有明透, 一時士類重之。 不幸早卒, 惜哉! 臨終遺疏, 勸上以招延賢德益懋大業, 且引張栻之言, 請信任防一己之偏, 好惡公天下之理, 兼謝賜藥之恩。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37책 687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