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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11권, 현종 5년 10월 23일 신사 2번째기사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여러 재신들과 함께 북로의 폐단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희정당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재신을 인견하고, 김수항(金壽恒)이 올린 북로(北路)의 고질적인 폐단을 의정하였다. 영상 정태화이상진(李尙眞)의 소에 진달한 형옥(刑獄)의 일을 아뢰기를,

"우상 허적이 지금 비록 대신의 지위에 있으나 일의 내막을 상세히 아니 그에게 소결(疏決)의 일을 그대로 담당하게 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신이 형조 당상 1명과 함께 상의하여 품처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이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을 추천하라."

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승지 중에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이 있으나 근시(近侍)이기 때문에 감히 청할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누구냐고 물었다. 허적이 아뢰기를,

"승지 김시진(金始振)·김수흥(金壽興) 두 사람이 합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비록 승지라 할지라도 오가며 임무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이상진의 소중에 설국(設局)을 요청하였으나 굳이 설국하지 않아도 비국이나 혹은 궐내의 공해(公廨)라도 좋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태화가 또 상진의 소 중에 각사 노비와 내노비의 신공을 탕척하는 일로 앙품하기를,

"도망갔거나 죽은 자의 기록을 만일 탕척을 허락한다면 노비를 많이 잃을 것이니 이것은 매우 불편합니다."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그 문안을 상고하여 부모 처자가 모두 도망한 자는 실지로 도망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망을 사칭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 이미 모든 도에 조사하여 밝히라고 하였으니 성책(成冊)이 올라온 후 그 중에서 지적하여 징수할 곳이 없는 자로서 갑진년 이상은 모두 탕척시켜 주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허적이 형조 판서 오정일(吳挺一)이 탄핵을 당하여 공사를 행할 수 없으니 체차하라고 하니, 상이 따랐다. 태화가 아뢰기를,

"신이 지난날 진달한 궁인을 선택할 때 폐단을 일으킨 일은, 상이 그 범죄자를 형조에 내어보냈으니 이 일은 매우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궁중의 크고 작은 일을 상에게 품달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번 이 궁인을 선택하는 일은 성상이 미처 알지 못하였다 하니, 신은 몹시 놀랍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명령은 당초에 직접 나온 것이 아니므로 미처 알지 못하였을 뿐이다".

하였는데, 대체로 선택의 명은 대비전에서 나온 것이었다. 수어사 김좌명(金佐明)이 아뢰기를,

"충주진(忠州鎭) 및 춘천(春川) 철원(鐵原) 양진은 비록 산성(山城)에 속해 있으나 위급할 때 징발하기가 본부의 민병만 못하니 신의 뜻은 광주부(廣州府)강도(江都)의 예에 의거하여 모든 잡역을 면제하고 남정을 모두 전적으로 산성에 소속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태화가 아뢰기를,

"이 말이 옳습니다. 잡역을 비록 모두 면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신역(身役) 같은 종류는 모두 옮겨 소속시키게 한다면 합당할 것 같습니다."

하고, 좌상 홍명하는 아뢰기를,

"호위청의 각 아문 군관 이하 모든 군역 군보 같은 것은 모두 소속하기를 허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어영 대장 유혁연(柳赫然)이 아뢰기를,

"신은 일찍이 이것을 염려하여 어영군으로 광주에 있는 이는 항오(行伍)에 편입하지 않고 모두 표기(標旗) 아래 예속시켰으니 지금 비록 옮겨 보낸다고 하여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각 아문의 군관 이하로 각영의 신역이 있는 자는 모두 산성으로 전속하고 해조는 그 수를 상세히 갖추어 서계하라."

하였다. 좌명이 또 아뢰기를,

"익산 군수(益山郡守) 홍언(洪琂)은 수령으로 영장(營將)의 솔하인을 잡아가니 그 죄가 비단 파직뿐만이 아닙니다."

하니, 상이 잡아다가 추고하라고 하였다. 대사간 남구만(南九萬)이 감사 수령의 가옥 영조함을 적발하라는 명을 거두라고 청하여 연달아 계문하고, 태화도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을 진달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의 뜻은 본래 그 탐묵함을 미워하여 이러한 명령이 있었는데 전일에 거행한 조항 중에 이 1항은 내지 말라."

하였다. 구만이 또 아뢰기를,

"상께서 재이를 만나 각성하여 장차 크게 일을 하려고 하지만 삼가 근일의 거조를 살펴보니 역시 피폐된 정치를 크게 개혁하여 민생의 장구한 이익을 위함이 없으니 이른바 두려워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피폐한 정치의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공안(貢案)의 문란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일찍이 선대왕 때 공안을 개정하라는 명이 있었으나 미루다가 폐지되어 아직도 옛 폐단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공안은 원래가 조종의 옛 제도가 아니며 또한 사용하기에 절실하지도 않고 백성에게 폐단을 끼침이 매우 많으니 지금 만일 개정한다면 백성이 반드시 혜택을 입을 것인데 한 번 변통하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대신에게 이르기를,

"이 말이 어떠한가? 일을 만일 행할 만하다면 행하는 것이야 무엇이 어렵겠는가."

하니, 구만이 아뢰기를,

"철이 아니라서 얻기 어려운 물품은 각기 산지로 옮겨 그 명목을 정하고 혹 한 가지 물품이 각읍에 산재되어 있는 것은 헤아려 병합하여 많거나 적음을 적절하게 하며 귀하고 천한 것을 조절하여 버리거나 두는 것이 합당하고 증가하고 감면함이 알맞으면 실용에 손해됨이 없이 백성의 힘을 펴게 하는 것이니 그 혜택이 어찌 한 가지의 부역을 면제하는 것에 견주겠습니까. 비록 대동법을 설행하는 곳이라도 만일 제대로 잘 변경하면 공물의 가격이 스스로 감소될 것이며 그 가격이 감소된다면 대동미의 수납도 또한 적절하게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백성의 생활에 미치는 이익이 없겠습니까. 바라건대 대신과 중신에게 회의하고 자문하게 하여 속히 공안을 개정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묘당에게 품처케 하라."

하였다. 구만이 또 아뢰기를,

"선배가 후배를 이끌 때는 본래 먼저 예의와 공경을 베푸는 것인데 세속이 쇠퇴하여진 이후부터 모든 각사에 만일 새로 들어온 관원이 있으면 혹 벌예(罰禮)라고도 하며 혹 면신(免新)이라 칭하여 술과 고기를 내게 하고 더욱 풍성하고 사치스러움을 힘써 심지어 은포(銀布)를 대납하여 술과 음식의 빚에 충당하니 이 어찌 의관의 수욕이 아니겠습니까. 문관의 4 관(館)과 무관의 3청(廳)에 이 폐단이 더욱 혹독하며 미루어 올라가면 그렇지 않는 곳이 없어서 심지어 서리(胥吏)와 조례(皁隷)까지도 따라서 본받아 끝이 없으니 통렬하게 금단을 가하여 옛 오염을 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각사의 신입 관원의 면신과 벌예 등의 일을 일체 금단하여 만일 범하는 자가 있으면 뇌물 받은 것으로 논열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비록 뇌물 받은 것으로는 논할 수 없으나 지금부터 일체 통렬하게 금하라."

하였다. 구만이 또 아뢰기를,

"궁녀를 선택하는 일은 마침 진달하려고 하였는데 대신이 이미 말하였습니다. 옛 규정은 각사의 하전(下典)으로 뽑아들였는데 지금은 양가의 여자를 선택하였다 하니, 지금부터는 형조에서 법전에 의하여 하전을 선택하게 하고 별감과 궁비(宮婢)들이 사사로이 나가서 강제로 선택하는 것은 일체 금단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삼의사(三醫司) 외에는 형조에서 뽑아들이라."

하였다. 구만이 또 아뢰기를,

"황해도(黃海道)의 무오년에 요동(遼東)으로 건너간 군인 및 정묘년·병자년에 전몰한 사졸을 병조에서 지금까지 군포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무릇 국가의 일로 사망한 자는 마땅히 정표(旌表)하고 가족을 돌보아 주는 은전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막의 백골에게 군포를 징수하니 죽은 자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고, 태화가 아뢰기를,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만일 그 궐액(闕額)을 탕척하지 않으면 이 폐단을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구만은 아뢰기를,

"문서를 살펴보니 무오·병자·정묘년에 전사한 자가 3백여 명이니 모두 탕척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병조에서 충정하지 못한 궐액을 조사하여 품하게 하라."

하였다. 구만이 또 아뢰기를,

"지난번 대궐 내에 들어갔는데 후원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므로 물어보았더니 ‘원자(元子)가 나들이할 때 별감배들이 진언(眞言)을 외는데 이것이 그 진언의 소리다.’고 하였습니다. 원자는 태평 백세의 근본이니 교육하기를 마땅히 왕계(王季)문왕(文王)을 교육하는 것처럼 하여야 할 것인데 지금 좌도(左道)를 가지고 보이니, 혹시라도 눈과 귀에 배어드는 환란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것이 비록 옳지 않으나 궁중에는 예전부터 이 일이 있어 왔다."

하니, 구만이 아뢰기를,

"이미 그것이 잘못임을 알았다면 행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행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407면
  • 【분류】
    정론(政論) / 신분(身分) / 인사(人事)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사법(司法) / 재정-역(役) / 재정-공물(貢物) / 왕실-궁관(宮官) / 건설(建設) / 풍속-풍속(風俗)

    ○上御熙政堂, 引見大臣及備局諸宰, 議定金壽恒所陳北路弊瘼。 領相鄭太和, 以李尙眞疏所陳刑獄事, 啓曰: "右相許積, 今雖在大臣之位, 詳知首末, 使之仍爲句管疏決之事, 似當矣。" 上許之。 曰: "臣當與刑曹堂上一人, 同議稟處矣。" 上曰: "卿薦可與共事者。" 曰: "承旨中有可與同事之人, 而近侍故不敢請矣。" 上曰: "誰也。" 曰: "承旨金始振金壽興二人, 可合矣。" 上曰: "然則雖在承旨, 往來察任宜矣。" 太和曰: "李尙眞疏中, 請設局, 而不必設局, 備局或闕內公廨, 亦可矣。" 上許之。 太和又以尙眞疏中, 各司奴婢、內奴婢身貢蕩滌事, 仰稟曰: "逃故懸錄者, 若許蕩滌, 則多失奴婢, 此甚難便矣。" 曰: "考其案籍, 父母妻子皆逃亡者, 則實爲逃也, 不然則乃詐稱逃也。" 上曰: "已令諸道査覈, 成冊至後, 就其中指徵無處者, 甲辰以上, 幷蕩滌可也。" 以刑曹判書吳挺一, 身被彈劾, 不得行公, 請遞差, 上從之。 太和曰: "臣於頃日, 陳達宮人選擇時作弊之事矣, 自上出其犯罪者于刑曹, 此擧甚善矣。 然宮中大小事, 宜無不關稟於上, 而今此選擇宮人之事, 聖上未及知之, 臣竦然而驚。" 上曰: "此命令初不直出, 故未及知之耳。" 蓋選擇之命, 自大妃殿出也。 守禦使金佐明曰: "忠州鎭及春川鐵原兩鎭, 雖屬山城, 臨急徵發, 不如本府之民兵, 臣意則廣州一府, 依江都例, 竝除雜役, 悉以男丁, 專屬山城則似好矣。" 太和曰: "此言然矣。 雜役雖不可盡爲蠲免, 如有身役之類, 幷令移屬則似當矣。" 左相洪命夏曰: "自扈衛廳各衙門軍官以下, 諸軍役、軍保之類, 皆可許屬也。" 御營大將柳赫然曰: "臣則曾以此爲慮, 御營軍在廣州者, 不籍於行伍, 而皆分隷於標下, 今雖移送不難矣。" 上曰: "自各衙門軍官以下, 各樣有身役者, 皆專屬山城, 自該曹詳具其數, 書啓可也。" 佐明又曰: "益山郡守洪琂, 以守令捉致營將率人, 其罪不但罷職。" 上曰: "拿推。" 大司諫南九萬, 以請寢摘發監司、守令營造之命, 連啓, 太和亦陳其不可, 上曰: "予意固惡其貪墨而有是命也, 前日擧行條件中, 此一款勿出可也。" 九萬又曰: "自上遇災警動, 將大有爲, 而竊觀近日擧措, 亦未有大革弊政, 爲生民經遠之利者, 所謂恐懼修省者, 不宜止此。 方今弊政之宜先釐正者, 無過於貢案之淆亂。 曾在先朝, 有改定貢案之命, 而遷延廢閣, 猶襲舊弊。 貢案元非祖宗舊制, 且不切於用而貽弊於民者甚多, 今若改定, 則民必蒙惠, 一番變通, 有何難乎?" 上謂大臣曰: "此言何如? 事若可行, 則行之何難?" 九萬曰: "非時難得之物, 代以時物, 各就所産, 而定其名目, 或一物散在各邑者, 量加合幷, 均節多寡, 裁度貴賤, 去取得當, 增減合宜, 則無損於實用而可紓民力, 其爲惠澤, 豈是除一賦減一役之比哉? 雖大同設行之處, 若能善變, 則貢物之價, 自減矣, 其價旣減, 則其收米, 又可以量減矣, 豈無利及民生者乎? 請令大臣、重臣, 會議僉詢, 亟改貢案。" 上曰: "令廟堂稟處。" 九萬又啓曰: "先進之引後輩, 固宜先施以禮敬, 自世衰俗偸以來, 諸各司若有新入之官, 則或稱罰禮, 或稱免新, 責徵酒肉, 益務豊侈, 至有代納銀、布, 以當酒食之債, 此豈非衣冠之羞辱乎? 文官之四館, 武官之內三廳, 此弊尤酷, 推而上之, 無處不然, 至於吏胥、皂隷, 從而效尤, 罔有紀極, 不可不痛加禁斷, 以滌舊汚。 請各司新入之官, 免新、罰禮等事, 一切禁斷, 如有所犯, 以受賂論。" 上曰: "雖不可以受賂論, 自今以後, 一切痛禁。" 九萬又啓曰: "抄擇宮女事, 方欲陳達, 而大臣已言之矣。 古規以各司下典選入, 而今則以良女抄擇, 請自今以後, 使刑曹依法典, 抄入下典而別監、宮婢等, 私出勒抄之事, 一切禁斷。" 上曰: "三醫司外, 令刑曹擇入。" 九萬又啓曰: "黃海道戊午年渡軍人及丁卯、丙子戰亡士卒, 自兵曹至今徵布。 凡死於王事者, 宜有旌表恤孤之典, 而非徒不然, 乃反徵布於沙場之白骨, 死者奚罪哉?" 太和曰: "誠有此事。 若不蕩滌其闕額, 則難祛此弊。" 九萬曰: "取見文書, 則戊午、丙ㆍ丁戰死者三百餘人, 請竝蕩滌。" 上曰: "令兵曹査出未充定闕額之數, 以稟。" 九萬又啓曰: "頃入闕內, 聞後苑中有聲, 問之則曰: ‘元子出入時, 別監輩誦眞言, 此其眞言之聲也。’ 元子乃太平百世之本, 敎之當如王季之敎文王, 而今乃以左道示之, 恐或有目濡耳染之患也。" 上曰: "雖是不可而宮中自前有此事。" 九萬曰: "旣知其非, 不爲宜矣。" 上曰: "不爲何難?"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407면
    • 【분류】
      정론(政論) / 신분(身分) / 인사(人事)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 사법(司法) / 재정-역(役) / 재정-공물(貢物) / 왕실-궁관(宮官) / 건설(建設)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