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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 11권, 현종 5년 6월 27일 무오 1번째기사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좌의정 원평 부원군 원두표의 졸기

좌의정 원평 부원군(原平府院君) 원두표(元斗杓)가 죽었다.

원두표는 포의(布衣)로 정사 훈록(靖社勳錄)에 참여하였다. 어릴 때부터 뜻이 크고 강직한 기풍이 있어서 스스로 웅걸임을 자부하였는데, 성질이 자못 거칠고 오만하여 사론의 추앙을 받지 못하였다. 인조 말년에 김자점과 틈이 벌어져 각각 붕당을 세워 배척을 하였는데, 얼마 뒤에 김자점이 모역으로 죽음을 당하자, 의논하는 자들은 또한 원두표를 군자의 당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두표는 정사 공신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정승에 올랐고, 지위에 오른 지가 오래지 않아 정승으로서 한 일이 드러낼 만한 것은 없었으나, 집에서는 효성과 우애가 매우 돈독하고 기백과 재주가 남보다 뛰어났다. 임종에 임해서 올린 상소에서, 간절하게 사류를 키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는데, 사류들도 이것을 훌륭하게 여겼다. 아들 원만석(元萬石)원만리(元萬里)는 지위가 감사(監司)에까지 이르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388면
  • 【분류】
    인물(人物)

○戊午/左議政原平府院君 元斗杓卒。 斗杓以布衣, 參靖社勳。 自少負氣倜儻, 以雄俊自命, 而性頗麤伉, 不得爲士論所推。 在仁祖末年, 與自點有隙, 各立朋黨, 互相排擯, 自點尋以謀逆誅, 而議者, 亦不以斗杓爲君子之黨也。 斗杓於靖社勳臣中, 拜相最後, 居位未久, 相業無可稱, 而居家孝友甚篤, 氣魄才具, 有過於人者。 及其臨歿之疏, 乃眷眷於扶植士類, 士類亦以此多之。 子萬石萬里, 官至監司。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3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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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