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군 윤문거가 상소하여 부름에 사양하다
부호군 윤문거가 상소하여 부름을 사양하였다. 그 대략에,
"신은 본래 집이 서울에 있고 대중을 따라 벼슬하면서 평생의 행위를 남들과 다르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단지 죽음에 임하여 고향 언덕으로 머리를 두고 선산에 뼈를 묻기 위한 계책일 뿐이지, 감히 저만의 편리함을 생각해서 스스로 멀리 군부의 곁을 떠나고 국가의 위태로움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변통할 줄을 모른 것은 아닙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신은 본래 시무(時務)를 아는 무리들과 더불어 의논할 수 있는 학술도 없고, 죽는 날 바칠 만한 착한 말도 없으니, 살아서나 죽어서나 은덕을 저버리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소를 살펴보고서 자세히 알았다. 경은 어찌하여 이토록 나의 뜻을 저버리려 드는가. 경은 사양하지 말고 속히 올라오라."
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문거는 고 대간(大諫) 윤황(尹煌)의 아들이고 문간공(文簡公) 성혼(成渾)의 외손이다. 젊어서 급제하여 대성(臺省)을 역임하였고 사람됨이 강개하고 지조가 있었다. 정축년 이후로 이산(尼山)의 선영 아래로 물러가 벼슬길의 뜻을 끊었다. 간혹 주군(州郡)에 나가 고을살이를 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사직하고 돌아왔고 아우 윤선거(尹宣擧)와 함께 살면서 학문을 강론하였다. 조정에서도 두터운 예로 대우하고 도헌(都憲)과 이조 참판에 차례로 제수하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으니, 사론(士論)이 깨끗이 물러난 그의 절개를 훌륭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281면
- 【분류】인사(人事) / 인물(人物)
○副護軍尹文擧, 上疏辭召命, 略曰:
臣家本京洛, 隨衆仕宦, 平生作爲, 未嘗自異於人。 而不幸罹病, 歸依於桑榟者, 只爲臨死首丘, 埋骨先壠之計耳, 非敢輒懷私便, 自遠於君父之側, 恝視宗國之艱危, 不知其變者也。又曰, 臣本無學術與議於識務之倫, 又乏善言, 可效於鳴哀之日, 生前死後, 不過作孤恩負德之一枉人也。
上答曰: "省疏具悉。 卿何孤負予意若是耶? 卿其勿辭, 從速上來。" 謹按文擧, 卽故大諫煌之子, 文簡公 成渾之外孫也。 少擢第, 歷敭臺省, 爲人慷慨, 有志操。 丁丑後退去尼山墓下, 絶意仕宦。 間或栖遲州郡, 而不久解歸, 與弟宣擧, 同居講學。 朝廷亦待以優禮, 歷拜都憲、吏參, 而終不就, 士論多其恬退之節。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2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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