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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 6권, 현종 3년 2월 3일 정미 2번째기사 1662년 청 강희(康熙) 1년

상이 흥정당에서 침을 맞았고 양남 어사 등이 하직 인사를 청하다

상이 흥정당에 나아가 침을 맞았다. 양남(兩南)의 진휼 어사 남구만(南九萬)이숙(李䎘)이 뜰에서 하직 인사를 하자, 상이 인견하고 하교하기를,

"그대들이 명을 받고 내려가는데 품고 있는 생각이 있는가?"

하니, 구만이 대답하기를,

"이에 대한 사목(事目)이 있으니 삼가 준수하여 시행하되 만일 별다른 처치를 할 일이 있으면 의당 치계하여 아뢰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백성의 생명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아뢰기를 기다려서 처치하겠는가. 한편으로는 조치를 취하고 한편으로는 치계하여 혹시라도 늦추져서 일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라."

하니, 구만이 아뢰기를,

"신들이 성상의 하교를 직접 받았으니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염려되는 것은 치계한 일이 막히어 시행되지 않으면 신이 죄를 받는 것은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백성들이 필시 낙담하여 적막하게 여길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잘 처리한 것이라면 조정에서 어찌 신뢰하지 않기야 하겠는가."

하였다. 이숙이 아뢰기를,

"어사를 이미 구휼하는 것으로 이름을 정하였으니 가는 길에 먹여주기를 바라는 자가 필시 많을 터인데 빈손으로 내려가서는 곡식이 없어서 구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공천(公賤)이 쌀을 바치고 속량(贖良)하는 것을 허락하는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불가하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우상 원두표(元斗杓)에게 【약방 도제조로 입시하였다.】 묻기를,

"이 일이 어떠한가?"

하자, 두표가 아뢰기를,

"이 일은 정축년010) 이후에는 일찍이 길을 열어놓지 않았기에 신이 감히 혼자 결단하지 못하니 물러가서 동료 정승들과 상의하여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가?"

하니, 두표가 아뢰기를,

"계사011) ·갑오012) 의 병란 뒤에 이런 일이 있었으나 쌀 50, 60섬을 바친 뒤에 허락하였습니다. 지금 부득이하여 속량을 허락하더라도 당연히 이에 의거하여 바쳐야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상 은 어디 있는가?"

하니, 두표가 아뢰기를,

"현재 문안드리는 반열에 있습니다."

하니, 상이 사관(史官)에게 명하여 영상 정태화를 선소(宣召)하고 묻기를,

"공천에게 쌀을 바치게 하고 면천시키는 일을 이숙이 말하였는데, 경의 뜻에는 어떠한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신의 뜻은 본시 이 일을 타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서필원이 감사가 되었을 적에 이 일을 계청하였으나 신이 불가하다 하여 단지 한두 사람을 속량하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옛날 임진 왜란 뒤에 이 길을 처음으로 열었는데 이는 만부득이한 형편에서 나온 것이니 지금 잘못된 것을 답습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사가 내려간 뒤에 만일 자원하여 쌀을 바치는 자가 있으면 치계로 보고하여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 옳겠다."

하니, 구만이 아뢰기를,

"올해 받아들인 환자곡이 매우 부실하여 한 섬의 벼에서 겨우 두세 말의 쌀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곡식으로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날마다 한 말을 주더라도 몇 사람의 먹을 거리도 넉넉하지 못하겠으니 어떻게 처리하여야 되겠습니까?"

하였다. 태화두표가 아뢰기를,

"이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부실이 더욱 심한 고을은 벌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수령은 어사가 잡아다가 곤장을 때리거나 파면시키고 색리(色吏)는 형추하도록 하라."

하였다. 구만이 아뢰기를,

"당연히 성상의 분부와 같이 하겠습니다. 다만 수령을 곤장 친 뒤에는 필시 그 벼슬에 그대로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곤장을 맞은 뒤에 반드시 벼슬을 버리는 자가 있겠는가?"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혹은 그렇기도 할 것이지만 어찌 이를 염려하여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 마음대로 벼슬을 버리는 자는 죄의 등급을 올려서 죄를 논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37책 26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재정-잡세(雜稅) / 신분-천인(賤人) / 호구-이동(移動) / 사법-행형(行刑)

○上御興政堂, 受鍼。 兩南賑恤御史南九萬李䎘陛辭, 上引見, 下敎曰: "爾等受命下去, 其有所懷乎?" 九萬對曰: "自有事目, 謹當遵行, 如有別樣處置, 事當馳啓, 以稟矣。" 上曰: "民命近止, 何可待其稟處乎? 一邊施措, 一邊馳啓, 無或緩不及事也。" 九萬曰: "臣等親承聖敎, 何敢不盡心力? 但慮馳啓之事, 泥而不行, 則臣之獲戾, 有不暇顧, 而民情必以爲落莫矣。" 上曰: "若能善處, 則朝家亦豈至於失信乎?" 曰: "御史旣以賑救爲名, 一路望哺者必多, 而空手下去, 無粟可救。 故臣以公賤納米許贖事, 議于大臣, 則以爲不可矣。" 上問右相元斗杓 【以藥房都提調入侍。】 曰: "此事何如?" 斗杓曰: "此事, 丁丑以後, 未曾開路, 臣不敢獨斷, 退與僚相, 相議以稟矣。" 上曰: "自前亦有此事耶?" 斗杓曰: "癸、甲兵難之後, 曾有此事, 而納米五六十石然後許之。 今雖不得已許贖, 亦當依此以捧也。" 上曰: "領相安在。" 斗杓曰: "方在問安班矣。" 上命史官宣召, 領相鄭太和問曰: "公賤納米免賤事, 李䎘有言, 於卿意何如?" 太和曰: "臣意則本以此事爲未妥。 曾前徐必遠之爲監司也, 啓請此事, 而臣以爲不可, 只贖一二人而止耳。 昔在壬辰亂後, 創開此路, 蓋出於萬不獲已, 今不必襲謬也。" 上曰: "御史下去後, 如有自願納米者, 馳啓以聞, 以爲議處之地可也。" 九萬曰: "今年所捧糴糶, 甚爲不實, 一石之租, 僅出米二三斗云。 以如此之穀, 分給飢民, 則雖日給一斗, 未足爲數口之資, 當何以處之耶?" 太和斗杓曰: "此言誠是矣。" 上曰: "尤甚不實之邑, 不可不施罰。 守令則御史捉致, 決杖或罷黜, 色吏則刑推可也。" 九萬曰: "當如聖敎。 但守令決杖之後, 必不欲仍在其任, 此可慮也。" 上曰: "受杖之後, 必有棄官者耶?" 太和曰: "似或然矣, 亦何可慮此而不治其罪乎?" 上曰: "任意棄官者, 加等論罪可也。"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37책 26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재정-잡세(雜稅) / 신분-천인(賤人) / 호구-이동(移動)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