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이 근자의 예송 문제로 상소하다
행 판중추부사 송시열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민씨 집안의 변례(變禮)가 비록 인륜에 관계된 일이지만 패를 지어 시비를 따지는 예송(禮訟)이라고 남들이 혹 보아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입을 열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이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게 하였다.’는 죄에 이르러서는 비록 전하께서 신의 한 몸을 불쌍히 여겨 봐주신다 하더라도 신의 죄를 완전히 용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진실로 권력을 잡고 위복(威福)을 멋대로 부려 국가를 해치는 일이므로 무릇 조정에 있는 모든 신하가 다 쫓아 내고자 하여, 마치 새매가 참새를 쫓는 것보다 더 심하게 할 터인데 지금까지 쫓아내라고 하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필시 이 사람은 권세를 잡고 위복을 자아내는 실상을 지닌 자이기에 이와 같다.’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가슴이 내려앉을 듯하여 감히 스스로 죄를 논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삼가 생각하건대, 국구가 남의 무부 무자(無父無子)를 책망하려 하였다면 어찌 예법(禮法)을 범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 못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기(私忌)에 규정된 휴가가 있는 것도 돌아보지 않고서 급급하게 면대를 청하여 급히 신의 죄를 들추면서 제일 먼저 이것으로써 말을 한 것은, 신의 행위를 진실로 위기가 번갈아 이르는 형세라고 보아 하루라도 늦출 수 없었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시사(時事)가 크게 변한 이래로 매양 고려 때의 일로 인하여 한심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려 때에는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하여 심지어 원나라에 가서 참소하고 세력을 부리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당시 임금이 앞에 참소하는 무리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뒤에 도적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때 신하들의 죄를 어찌 이루 다 헤아려 꾸짖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일전에 신하가 강하다는 설이 갑자기 만리 밖에서 나오고 권력이 임금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 잇달아 상신(相臣)의 상소 중에서 나오자 대소(大小) 신하가 벌벌 떨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신이 공격당하고 있는 말은 사실 그 말과 서로 같습니다. 비록 그 명칭이 조금 바뀌었다 하더라도, 신이 어찌 전일에 남을 위하여 대신 두렵게 여겼던 것이 신에게 있을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삼가 듣건대, 경연의 신하가 탑전(榻前)에서 아뢰기를 ‘민씨 집안의 일은 조정에서 반드시 조사하여 처리할 것이 아니다.’고 하니, 성명께서 이르기를 ‘일이 인륜에 관계되니 방치할 수 없다.’고 하셨다 합니다. 신은 성학(聖學)의 고명(高明)하심이 보통보다 만 배나 뛰어남에 감탄하였습니다. 경연의 신하에게 죄화(罪禍)가 장차 닥칠 것이므로 하늘이 넋을 빼앗아 자기도 모르게 실언(失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그렇게도 평소의 식견과 상반되는 말을 하였단 말입니까. 경연의 신하가 한 말은 또 신을 위하여 그 일을 막아 신의 죄를 덮어주려는 듯하였으니 이는 물론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이 없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만 전하께서 또 신의 죄를 벗겨 주고자 하시니, 비록 자애로운 성상께서 신을 불쌍히 여기시더라도 신은 의리를 돌아보고 법을 두려워하여 감히 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이 전후로 지은 죄를 모두 다스리시어 신을 편안하게 해 주소서.
소를 다 쓴 뒤 문득 대간이 국구를 논계하였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신이 머무른 곳은 바로 선릉(先陵)에서 매우 가까운 곳입니다. 그런데 천릉의 일을 맡은 내외의 관원들이 모두 이미 이곳에 모여 있으니 이곳도 하나의 조정입니다. 때문에 신은 이 곳에 눌러 있을 수 없어 약간 상류로 옮겨 계릉(啓陵)하는 날에 체면을 무릅쓰고 다시 와서 사정(私情)을 펴볼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이 옮기는 것을 사람들이 잘못 알고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감히 이처럼 아뢰는 바입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지난번 소의 비답에서 다 말했다. 다시 많은 말을 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경의 사양이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마땅히 나의 뜻을 체득하여 예(禮)를 마친 뒤에 속히 들어와 전에 경에게 친히 말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4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윤리-강상(綱常)
○行判中樞府事宋時烈上疏曰:
竊念閔家變禮, 雖係人倫, 而人或可以聚訟見諉。 至於使人不敢開口, 人莫敢矯其非之罪, 雖以殿下之〔哀〕 愍臣身, 而亦不能全赦。 此實秉權勢作威福, 凶于國害于家之事也。 凡在朝紳之列, 皆欲逐之, 不啻如鷹鸇之逐鳥(崔)〔雀〕 也, 迄未有所聞, 必以爲, 此眞有乘權勢作威福之實者。 故如此云爾, 則此臣所以心膽欲墜, 不敢自列者也。 且伏念國舅, 將欲責人之無父無子, 則豈不知禮法之不可犯? 而乃不顧私忌之有式暇, 而汲汲請對, 亟發臣罪, 而首以此爲言者, 豈不以臣之所爲, 實爲危機交至之勢, 而不可一日少緩者耶? 臣自時事大變以來, 每因勝國之事, 有不勝寒心者。 勝國之時, 君弱臣强, 至有行讒作勢於燕山者。 此雖時君前有讒, 而不知後有賊, 而不見, 以至於此, 而其時臣子之罪, 豈可擢髮而勝誅哉? 日者臣强之說, 忽出於萬里之外, 而權不在上之語, 繼發於相臣之疏, 大小莫不懍懍。 今臣所被之言, 實與彼相同。 雖稍換其名, 豈料臣前所以爲人代怖者, 乃在於臣也? 竊聞筵臣於榻前, 以爲: "閔家事, 自朝廷, 不必査處。" 聖明以爲: "事係人倫, 不可置之。" 臣竊歎聖學高明, 出尋常萬萬也。 豈筵臣罪禍將至, 天奪其魄, 而不覺其失言歟? 何其與平日見識相反歟? 筵臣之言, 又若爲臣寢沮其事, 以掩覆臣罪者然, 此固使人不能無疑者, 而殿下又欲脫臣於罪, 雖或聖慈極憐, 臣顧義畏法, 有不敢承當者也。 伏乞 聖明, 竝治臣前後負犯, 以安私分。 疏成, 忽聞臺諫論啓國舅云。 尤不勝驚愕, 失措也。 臣所處, 是先陵咫尺之地。 任事內外官, 皆已聚集, 則此亦一朝廷也。 臣不敢仍伏此地, 稍移上游, 擬於啓陵之日, 冒昧復來, 遙伸私情。 竊恐人因以臣爲遂歸鄕里, 故敢此仰陳。
上答曰: "予意已悉於前疏之批。 便何多誥? 卿辭無乃太過乎? 宜體予意, 禮畢〔予〕 後, 從速入來, 毋負面諭之意。"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4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