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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19권, 현종 12년 1월 8일 경신 3번째기사 1671년 청 강희(康熙) 10년

예조 판서 조복양이 삼남의 구휼에 대해 상차하다

예조 판서 조복양(趙復陽)이 상차하기를,

"신이 접때 등대하였을 때에 양호(兩湖)의 전세는 혹 감면해 주거나 혹 남겨 두어 진휼하는 데 쓰게 하고 관서(關西)의 쌀을 가져와서 대신 채우자는 뜻으로 누누이 아뢰었으나 윤허받지 못하였습니다. 요즈음 외방의 말을 들으면 민간에 굶어 죽는 무리가 매우 많다고 하는데 날마다 들리는 것이 모두 놀랍고 슬픈 일들입니다. 이런 때에 굶주린 백성에게서 전세를 독촉해 받아 수송해 온다는 것이 차마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이제 전량을 남겨 두는 것을 매우 어렵게 여긴다면 양호의 연해안 고을만 상납하게 하되 쌀과 콩의 두수(斗數)를 적당히 줄여 주게 하고 산간 고을은 모두 받아서 본도에 두었다가,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구휼하는 것은 결코 그만 둘 수 없을 듯합니다."

하였다. 이에 앞서 조복양민정중(閔鼎重)·김만기(金萬基) 등과 함께 입시하였을 때에 삼남(三南)의 전세를 감면해 주자고 청하였는데, 허적(許積)·김좌명(金佐明)·권대운(權大運)이 다들 ‘경비가 염려되므로 전세는 결코 줄일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의논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자 조복양이 물러가서 또 상차하고 며칠이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상이 차자의 사연을 신하들에게 여러번 물어 보고는 마침내 전세를 받아서 남겨 두었다가 진휼하는 데 보태 쓰라는 명을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85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군사-병참(兵站) / 구휼(救恤)

    ○禮曹判書趙復陽上箚曰:

    臣頃日登對時, 以兩湖田稅, 或蠲減、或留賑, 而取來關西米,以充其代之意, 縷縷陳達, 未蒙開允。 近聞外方之言, 民間餓死之類甚多, 日日所聞, 無非驚慘。 當此之時, 督捧田稅於飢餓之民, 轉輸上來, 是可忍者乎? 今若以盡數停留爲甚難, 只令兩湖沿海之邑上納, 而量減其米太斗數, 山邑則竝令捧留本道, 分賑飢民, 竊恐決不可已也。

    先是, 復陽閔鼎重金萬基等, 因入侍請減三南田稅, 許積金佐明權大運皆以爲: "經費可慮, 田稅決不可減," 議遂不決。 復陽退又上箚, 未數日而病卒。 上以箚辭, 屢詢諸臣, 竟有捧留補賑之命。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85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군사-병참(兵站)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