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도의 신역에 대해 의논하다
각도 각읍의 재난을 당한 곳을 경중에 따라 3등으로 나누어서 백성들의 신역을 차등있게 감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팔도에 큰 흉년이 들어 각도에서 신역을 줄여 달라고 하는 청이 거의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좌상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오늘날의 급한 일은 신역을 감면하는 일만한 것이 없습니다만 제신의 의견이 각기 다릅니다. 조복양(趙復陽)은, 재해의 경중을 막론하고 일체의 역을 모두 감해야 하며 앞으로 용도를 잇댈 수 있는가의 여부는 논할 겨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한 해의 경비에는 반드시 7, 8천 동의 목면이 있어야 용도에 잇댈 수 있는데, 지금 만약 한꺼번에 이를 감한다면 나라의 계책이 또한 어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특히 심한 읍은 전부 감하고 그 다음은 반만 감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우상 홍중보가 아뢰기를,
"신도 처음에는 복양의 말이 옳다고 여겼으나 다시 의논하여 보고 비로소 좌상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고, 병조 판서 김좌명이 아뢰기를,
"호조와 본조는 재정이 거의 바닥났습니다. 신은, 특히 심한 읍은 한 필을 감하고 그 다음은 한 필만 바치게 하였다가 명년에 또 한필을 바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유혁연은 좌명의 말을, 권대운과 정지화는 허적의 의견을 옳다고 하였다. 김만기(金萬基)가 아뢰기를,
"신역을 전부 감하고도 국용을 이을 수만 있다면 전부 감하는 것이 물론 좋으나 다만 감한 뒤에 나라를 지탱할 수 없을까 염려됩니다. 신 또한 이 때문에 어렵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였다. 대사간 심재(沈梓)가 청하기를,
"경각사의 봉부동(封不動)021) 과 외방 각처의 은포(銀布)를 덜어내어 경상 비용에 보태고 신역을 전부 감하소서."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여러 신료들의 말이 모두 백성을 구제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도(江都)와 남한 산성에 저축해 둔 목면은 2천여 동에 불과하고 경각사 가운데는 태복시의 비축이 가장 많은데도 1천 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해에 올려야 하는 수량은 8천 9백여 동이나 되니 앞으로의 경상 비용은 이 액수만큼 있지 않으면 잇대기 어렵습니다. 설령 강도와 남한 산성과 태복시의 비축을 모두 취한다 해도 나머지 5천 동은 어떻게 마련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전부 감하는 것이 비록 좋긴 하나 나라의 예산은 어찌한단 말인가. 다만 팔도의 백성들이 굶주려 죽을 지경이니 구별해서 역을 면제하여 이들을 보존하지 않을 수 없다. 재난 피해가 특히 심한 읍은 전부 감하고 그 다음은 반을 감하여 조정의 진휼하는 뜻을 보임이 좋겠다."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노비 신공을 한 필만 바치는 자도 있는데 이 또한 반을 감해줘야 합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 또한 재난 피해의 경중에 따라 전부 감하든지 반만 감하든지 하여 제반 신역과 똑같이 하는 것이 옳다."
하였다. 후에 김만기의 말에 따라, 다소 곡식이 여문 읍 가운데 세 필을 납부해야 할 읍의 경우에도 한 필을 감하도록 명하였다. 팔도 전체에서 특히 심한 곳이 1백 3읍, 그 다음이 1백 56읍이었고, 나머지 읍들도 명목은 다소 여물었다고 하나 보통의 해에 비하면 역시 특히 심한 경우와 같았다. 아, 이 해의 처참한 기근을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홍수와 가뭄과 바람 서리의 재변이 팔도가 똑같아서 곡식이 여물지 않아 굶주려 죽은 사람이 길에 널렸다. 목숨을 잃는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의 목숨이 거의 모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백 년 이래에 없었던 재난이었다. 대개 쌓아서 저축하는 것이 천하의 대명이거늘 국가가 평소에 비축한 것이 없이 갑자기 홍수와 가뭄을 만나 이 백성들이 굶어 죽는데도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아, 비통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77면
- 【분류】농업-농작(農作) / 재정-역(役) / 군사-군역(軍役) / 신분-천인(賤人)
- [註 021]봉부동(封不動) : 비상용으로 저축해 둔 은과 베.
○己亥/命以諸路各邑被災輕重, 分爲三等, 減民身役有差。 時八路大無, 各道蠲役之請, 殆無虛日。 左相許積白上曰: "今日所急者, 莫如蠲減身役, 而第諸臣意見各異。 趙復陽則以爲: ‘勿論被災輕重, 所當一體全減, 前頭繼用與否, 有不暇論。’ 臣之愚意, 竊謂不然也。 一年經費, 必有七八千同木綿, 然後庶可繼用, 而今若一倂減之, 則國計亦無奈何。 若就尤甚邑全減, 其次邑半減, 則似或得當。" 上遂問諸臣, 右相洪重普曰: "臣亦初以復陽言爲是, 及其更議, 始覺左相之見, 爲得之也。" 兵曹判書金佐明曰: "度支及本曹, 幾盡罄竭。 臣謂尤甚邑減一匹, 其次則捧一匹, 待明年又捧一匹可也。" 柳赫然是佐明言, 權大運、鄭知和是許積之議。 金萬基曰: "全減身役, 而國用可繼, 則全減固好, 而但念旣減之後, 國不能支。 臣愚亦以此爲難也。" 大司諫沈梓請: "除出京各司封不動及外方各處銀布, 以補經用, 而全減身役。" 許積曰: "諸臣之言, 皆出於捄民, 可謂好矣。 第江都、南漢所儲木綿, 不過二千餘同, 京各司中太僕之儲最優, 亦不過千同。 而一年應捧, 乃八千九百餘同, 前頭經用, 非此數則難繼。 設令盡取江都、南漢太僕之所儲, 其餘五千同, 何以辦出也?" 上曰: "全減雖好, 其於國計何。 第八路生靈, 擧將塡壑, 不可不區別蠲役, 使之存保。 被災尤甚邑則全減, 其次則半減, 以示朝家軫恤之意可也。" 許積曰: "奴婢身貢, 或有只捧一匹者, 此亦減其半耶?" 上曰: "此亦以被災輕重, 而全減半減, 一如諸般身役宜矣。" 後因金萬基之言, 稍實邑中當納三匹之類, 亦命減其一匹。 通八道尤甚一百三邑, 其次一百五十六邑, 其餘諸邑, 名雖稍實, 比常年, 則亦不免爲尤甚矣。 嗚呼! 是歲饑饉之慘, 尙忍言哉。 水旱風霜之災, 八路同然, 百穀不成, 餓莩載路。 死亡之禍, 甚於兵火, 百萬生靈, 擧皆塡壑, 實數百年來所未有之災也。 夫積貯者, 天下之大命, 而國家素無積儲, 猝遇水旱, 使斯民飢而死, 而莫之捄, 吁可悲也。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77면
- 【분류】농업-농작(農作) / 재정-역(役) / 군사-군역(軍役) / 신분-천인(賤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