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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18권, 현종 11년 7월 11일 을축 4번째기사 1670년 청 강희(康熙) 9년

제주 목사 노정이 한인의 표류를 비밀히 치계하다

제주 목사 노정(盧錠)이 비밀히 치계하기를,

"5월 25일 표류한 한인(漢人) 심삼(沈三)·곽십(郭十)·채룡(蔡龍)·양인(楊仁) 등 머리를 깎은 자 22명과 머리를 깎지 않은 자 43명이, 중국 옷을 입거나 혹은 오랑캐 옷, 혹은 왜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의현(旌義縣) 경내에 도착하여 배가 파손되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본래명나라 광동(廣東)·복건(福建)·절강(浙江) 등지의 사람들로 청인이 남경(南京)을 차지한 뒤에 광동 등 여러 성(省)이 청나라에 항복하였으므로 바다밖 향산도(香山島)에 도망나와 장사하면서 살아왔다. 5월 1일 향산도에서 배를 출발시켜 일본의 장기(長崎)로 향해 가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되어 이곳에 도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향산도란 지금 어느 성(省)에 속하였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향옥(香澳)은 광동의 바다 밖 큰산인데 청려국(靑黎國)에 인접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관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본래 남만(南蠻)의 땅으로 남만 사람 갑필단(甲必丹)이 주관하였다. 그 뒤 점점 약해졌으므로 명나라의 유민들이 많이 들어가 살았는데, 대번국(大樊國)에서 유격(遊擊) 가귀(柯貴)를 보내어 주관하였다. 대번국은 융무(隆武) 때에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자에게 나라의 성씨를 하사하고 진국 대장군(鎭國大將軍)에 봉하여 청나라 군사와 싸우게 하였는데 청인이 여러 번 패하였다. 얼마 안 되어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정금사(鄭錦舍)가 계승하여 인덕 장군(仁德將軍)에 봉해져 대번국에 도망해 들어갔는데, 무리가 수십 만명이 있었다. 그 땅은 복건성(福建省) 바다 밖 천여 리에 있는데 영력군(永曆君) 때에는 귀주(貴州)의 옛 촉(蜀) 땅에 있다. 우리들은 여러 나라로 다니며 장사를 하고 있으므로 머리를 깍기도 하고 혹은 깍지 않기도 한다. 장기로 가기를 원한다.’라고 하였으므로, 신이 배를 차비시켜 돌려보냈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671면
  • 【분류】
    외교-야(野)

    濟州牧使盧錠秘密馳啓曰: "五月二十五日漂漢人沈三郭十蔡龍楊仁等, 剃頭者二十二人, 不剃者四十三人, 所着衣服, 或華、或胡、或制, 到旌義境敗船。 自言本以大明 廣東福建浙江等地人, 淸人旣得南京之後, 廣東等諸省, 服屬於, 故逃出海外香山島, 興販資生。 五月初一日, 自香山發船, 將向日本 長崎, 遇颶風漂到於此云。 問香島, 今屬何省, 答曰: ‘香澳廣東海外之大山, 靑黎國之隣界。’ 問何人主管, 則答曰: ‘本南蠻地, 蠻人甲必丹主之。 其後浸弱, 故之遺民, 多入居之, 大樊國, 遣遊擊柯貴主之。 大樊者, 隆武時, 有鄭成功者, 賜國姓, 封鎭國大將軍, 與兵戰, 淸人累敗。 未幾死, 其子錦舍繼封仁德將軍, 逃入大樊, 有衆數十萬。 其地在福建海外, 方千餘里, 永曆君,時在貴州蜀地。 俺等以行商諸國, 故或剃頭、或不剃, 而願往長崎’, 臣裝船還送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671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