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제학 이단상의 졸기
전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 죽었다. 이단상은 판서 이명한(李明漢)의 아들이다. 젊어서 과거에 올라 좋은 벼슬들을 두루 역임했으며 깨끗하다는 명성이 있어 동료들로부터 추앙받았다. 신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양주(楊州)에 물러나 살면서 여러 차례 불러도 벼슬을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으니, 사람들이 명리에 담박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대체로 운명을 말하는 자가 이단상을 두고 말하기를 ‘만일 당상관에 오르게 되면 수명이 반드시 길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가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아서이다. 송준길이 경연에서 아뢰어, 부제학에 승진 임명되었는데, 이단상이 은명(恩命)을 사은하고자 왔다가 서울에서 병을 치료하던 중 며칠 만에 죽었다. 이단상은 본시 송시열과 송준길에게 빌붙었다. 송준길이 일찍이 상 앞에서 호남 선비 정개청(鄭介淸)의 서원을 철거할 것을 청했는데 이단상도 상소하여 정개청을 헐뜯었다. 윤선도(尹善道)가 소장을 올려 개청을 신구(伸救)하고 이단상을 배척하면서 그의 아비 이명한이 이이첨(李爾瞻) 부자에게 아첨하여 ‘문성이 지금 덕성과 함께 있다.[文星今與德星俱]’라는 시를 지었음을 거론해 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단상이 또 일찍이 상소하여 말하기를
"송시열의 예에 대한 논의는 정정 당당하여 백세(百世) 이후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될 게 없을 것이다."
하였으니, 임금을 속인 그의 죄가 여기에서 극에 이르렀다. 이것이 어찌 이른바 소인의 거리낌없는 짓이 아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46면
- 【분류】인물(人物)
○前副提學李端相卒。 端相, 判書明漢之子也。 少登科, 歷敭華貫, 有淸名, 爲儕輩所推。 謝病退居楊州, 屢辭召旨不赴, 人以爲恬於名利。 而蓋談命者, 謂端相若陞堂上, 則年必不永, 故其不樂仕進者, 以此也。 宋浚吉白于筵中, 陞拜副提學, 端相來謝恩命, 因養痾城中, 未幾卒。 端相素附宋時烈、宋浚吉。 浚吉嘗於上前, 請毁撤湖南儒者鄭介淸書院, 端相亦上疏誣詆介淸。 尹善道陳章, 伸介淸斥端相, 擧其父明漢, 謟媚李爾瞻父子, ‘文星今與德星俱’ 之詩, 以貽笑一世。 端相又嘗上疏言, ‘時烈議禮之論, 堂堂正正, 雖百世以俟聖人, 而不惑。’ 其欺君罔上之罪, 於是乎極矣。 此豈非所謂小人, 而無忌憚者哉。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4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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