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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16권, 현종 10년 2월 5일 무진 2번째기사 1669년 청 강희(康熙) 8년

약방 입진, 훈련 도감의 병제 변통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양심합에 나아갔다. 약방이 들어와 진맥을 하였고, 호조 판서 민정중이 청대하여 입시하였다.

그 전에 상이 훈련 도감의 병제(兵制)를 변통하고자 하였는데 여러 의논이 모두 한정(閑丁)을 얻기가 어렵다고 하므로, 상이 각도의 감영·병영·수영의 영장(營將)에 임시로 소속되어 있는 한정의 숫자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허적 등이 물러가 각도의 성책(成冊)을 상고한 결과 합계가 5만 4천여 명인데, 직책이 있거나 역무(役務)가 있는 자와 공사천(公私賤)을 제외하면 한정의 수는 1만 1백 58인이었다. 그 중에서 또 서북 양도(兩道)의 사람을 제외하면 한정의 실제 수는 6천 6백 58인이었다. 이 숫자를 가지고 어영청의 예에 의하여 13번으로 나누면 매번의 수가 5백 12명이니, 이 수를 도감으로 이송한 다음 뽑아내어 번에 오르게 할 것을 어영청의 제도처럼 하라고 하니, 상이 각도의 계본(啓本)을 성책(成冊)과 함께 도감으로 이송하여 처치하게 하였다.

이때 도감의 군병이 실용에는 보탬이 없고 한갖 국고만 소비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꼬리가 크면 휘두르기 어렵듯이 병사가 많으면 지휘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다. 이단하가 경연에서 맨 먼저 발론하였고, 그후 송시열이 상에게 말하여 어영청의 규모에 의거하여 국(局)을 설치하고 인하여 훈련 도감을 혁파하자고 하니, 상이 새로이 1군을 설치하는 것은 좋아하면서 구군(舊軍)을 혁파하는 것은 어렵게 여겨 이완에게 문의하니, 이완이 훈련군을 혁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극언하고 또 1군 신설의 어려움을 말하였으나 허적유혁연(柳赫然)이 극력 찬동하며 신군의 명칭을 훈련 별대(訓鍊別隊)라 하였다.

유혁연이 자원 모집하면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자, 상이 힘써 행하면서 훈국 군병의 도망한 자를 여전히 충정하니, 송시열이 건의한 뜻과 크게 달랐다. 군병을 모집할 때 원망과 비방이 떼로 일어나 사람마다 그 때문에 말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허적유혁연이 시종 찬성하였는데, 대체로 상이 군무에 마음을 쓰고 있는 까닭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1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중앙군(中央軍)

○上御養心閤, 藥房入診, 戶曹判書閔鼎重請對入侍。 初, 上欲變通訓鍊都監兵制, 而群議皆以爲閑丁難得, 上命査出各道監兵水營營將假屬中閑丁之數。 許積等退考各道成冊, 則都數五萬四千餘人, 而除有職有役及公私賤, 則閑丁之數, 一萬一百五十八人。 而就其中又除西北兩道之人, 則閑丁實數, 當爲六千六百六十五人。 以此數依御營廳例, 分作十三番, 則每番當爲五百十二名, 請以此數, 移送都監, 使之抄出上番, 一如御營廳之制, 上令各道啓本, 竝與成冊, 移送都監。 使之處置。 時都監軍兵, 無益於實用, 而徒費國廩, 人皆有尾大難(棹)〔掉〕 之憂。 李端夏首發於筵中, 其後宋時烈言于上, 請依御營廳規模設局, 仍罷訓鍊都監, 上樂聞新設一軍, 而持難於革罷舊軍, 問於李浣極言訓鍊軍革罷之非宜, 且言新設一軍之難便, 而柳赫然力贊之, 名新軍曰訓鍊別隊。 赫然力言自募之易得, 上銳意行之, 而訓局軍兵逃散者, 依舊充定, 大違時烈建白之意。 而募軍之際, 怨謗朋興, 人莫不爲言, 而赫然終始贊成, 蓋上留心軍務故也。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1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중앙군(中央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