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석에게 내린 은전을 송시열이 기롱하다
교리 이규령(李奎齡)이 이경석을 위하여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을 거행하도록 청하였다. 상이 옛 사례를 물으니, 규령이 이원익(李元翼)에게 궤장을 하사하고 김상헌(金尙憲)에게 견여(肩輿)를 하사한 일로써 대답하였다. 상이 또 대신에게 물으니, 송시열이 대답하기를,
"자기 나름대로 옛날 일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곤란하나, 성인도 때에 따라 변통하여 바꾸었습니다. 옥당의 관원이 선조(先祖)의 고사를 이미 아뢰었습니다만, 경석에 대한 전하의 관계가 원익에 대한 인조의 관계나 상헌에 대한 효종의 관계와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낫겠습니까? 오직 성명께서 헤아려서 처리하시는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자, 상이 이에 궤장을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이·김 양공(兩公)은 모두 원로 숙덕(宿德)으로서 조야가 중히 여겼고 양 조정에서 예우함이 특별하여 이같이 남다른 은전이 있었다. 그러므로 시열은 경석이 이같은 예에 해당될 수 없다고 여겨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다. 경석이 대궐에 나아가 사은하는 전(箋)을 올리고, 또 그 일을 그림으로 그려 시열에게 글을 구하자, 시열이 송나라 손적(孫覿)이 오래 살며 강건했던 일을 인용하여 기롱하니, 식자들은 그르게 여겼다.
삼가 살피건대, 이경석이 여러 해 동안 정승의 자리에 있었으나 볼 만한 사업이 없는데다 일컬을 만한 건의도 없어 단지 대신의 숫자만 채웠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조정에서 남다른 예로서 대우하고 궤장을 하사하는 것은 진실로 지나치다. 시열이 임금 앞에서 대답한 말을 보면 경석에 대해 부족하게 여기는 뜻이 있는 듯하다. 그의 뜻이 이와 같다면 상의 물음에 곧이곧대로 대답했어야 할 것인데 단지 이원익과 김상헌의 일로 말 뜻을 모호하게 하여 대답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곧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는 의리이겠는가. 더구나 경석은 세상에서 드문 은전을 입고 시열의 말 한 마디를 얻고자 하여 글을 구하였으니, 시열은 참으로 경석을 적합지 않다고 여겼다면 그 구함에 응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 기록한 글 가운데다 심지어 손적의 일을 인용하면서 그 성명은 쓰지 않고, 단지 ‘오래살며 강건했다.[壽而康]’는 서너 자를 써서 기롱 폄하함으로써 경석이 깨닫지 못하게 하였으니, 또한 어찌 정인 길사(正人吉士)의 마음씀이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0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校理李奎齡爲李景奭請擧優老之典。 上問古例, 奎齡以李元翼賜几杖、金尙憲賜肩輿事, 爲對。 上又問大臣, 時烈對曰: "自我作古爲難, 而聖人亦有隨時而變易。 玉堂之官, 旣以先朝故事仰達, 未知殿下之於景奭, 孰與仁祖之於元翼、孝宗之於尙憲, 惟在聖明裁度而處之。" 上乃命賜凡杖。 李、金兩公, 皆以元老宿德, 朝野倚重, 兩朝禮遇殊絶, 有此異數。 故時烈以景奭不能當此禮, 其對如此。 景奭詣闕, 進箋謝恩, 又繪其事, 求文於時烈, 時烈引孫覿壽而康事以譏之, 識者非之。
【謹按景奭, 作相屢年, 旣無事業之可觀, 又無建白之可稱, 只備大臣之數而已。 則年雖老, 朝家之待以異禮, 錫之几杖者, 誠過矣。 以時烈前席之對見之, 則於景奭, 似有不足之意矣。 其意如此, 則以直對上問可也, 只以李元翼、金尙憲事, 糢糊語意而對之, 是豈直道事君之義哉。 況景奭以被不世之恩, 欲得時烈一言以求文, 而時烈果以景奭爲不合, 則不應其求, 亦可也, 其記文中, 至引孫覿事, 而沒其名姓, 只用壽而康數三字, 以譏貶之, 使景奭莫之覺, 亦豈正人吉士之用心哉。】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00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