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해 온 중국인과 문답하다
표류해 온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천주(泉州) 사람으로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동녕(東寧)으로 피해 들어갔다."
고 하였는데, 동녕은 바로 남해에 있는 섬으로 복건성(福建省)에 속한 곳이다. 역관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가지고 온 관화(官貨)는 어느 관원의 물건인지 모르겠다."
하니, 대답하기를,
"번왕(藩王)이 정경(鄭徑)에게 준 물건이다."
하였는데, 이른바 번왕은 바로 영력 황제(永曆皇帝)의 동생으로 서북 방면의 군무(君務)를 관할하는 임무를 받고 복건성 등의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있는 자이며, 정경이란 자는 정성공(鄭成功)의 아들로, 정성공이 죽자 영력 황제가 습봉(襲封)하여 왕으로 삼았는데, 전공(戰功)이 없다는 이유로 사양하고 스스로 ‘사봉 세자(嗣封世子)’라고 칭하고 동남쪽의 섬으로 들어가 있으면서 영력 황제를 섬기는 자였다. 또 묻기를,
"영력 황제는 지금 어느 곳에 도읍해 있으며, 차지하고 있는 군현은 얼마나 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뇌주(雷州)에 도읍해 있으며, 복건·광동(廣東)·광서(廣西)·사천(泗川) 등 네 성을 차지하고 있다."
하였다. 이에 묻기를,
"복건·광동·광서 세 성은 지역이 서로 잇닿아 있으나 사천성은 동서간에 만리도 더 떨어져 있는데 어찌 명나라가 차지하였겠는가?"
하니, 임인관 등이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였다. 역관이 또 묻기를,
"뇌주에 황제가 도읍하였다고 하였는데, 너희들은 항상 그곳에 왕래하는가?"
하니, 답하기를,
"동녕에서 뇌주까지는 수로(水路)로 만 리 가까이 되므로 왕래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또 묻기를,
"너희들은 정경의 관하(管下)가 아닌가?"
하니, 인관 등이 답하지 않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66면
- 【분류】외교-야(野)
○漂人等自言: ‘泉州人, 爲淸所侵, 避入東寧。’ 東寧乃南海中島嶼, 而屬於福建也。 譯曰: "汝所持官貨, 未知何官之物乎。" 對曰: "藩王與鄭徑之物也。" 所謂藩王, 卽永曆皇帝之弟, 授以西北面軍務之任, 方鎭于福建等沿海之地, 鄭徑者, 成功之子也, 成功死, 永曆襲封爲王, 辭以無汗馬之勞, 自稱嗣封世子, 入據東南海島中, 服事永曆。 又問曰: "永曆今都何地, 而所有郡縣幾何?" 對曰: "福建、廣東、廣西三省, 則地界相連, 而泗川, 則東西不啻萬里, 何能爲明朝之有乎?" 寅觀亦不能明言。 譯又問曰: "雷州旣是帝京, 則汝常往來否?" 對曰: "東寧去雷州, 水路幾至萬里, 故未嘗往來矣。" 又問曰: "汝等無乃鄭徑之管下乎?" 寅觀等不答, 但流涕而已。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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