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을 위해 경복궁 터에 궁을 새로 짓는 것을 논의하다
상이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전례대로 죄인들을 소결했다. 상이 여러 대신들에게 이르기를,
"근래 궁중에 귀신의 변괴가 많았는데 자전께서 계시는 곳이 더욱 불안했으므로 지난번 경덕궁(慶德宮)에 받들어 옮겼다. 그러나 자전께서 옛 궁을 계속 폐지해 둘 수 없다고 여겨 지금 다시 돌아오셨는데, 변괴가 여전하다. 변통하는 조처가 없어서는 안 되겠기에 경복궁의 옛 터에 간단하게 새로 궁을 지으려 하는데,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정태화가 아뢰기를,
"성상의 분부가 비록 절박한 데서 나왔다 하나 이 일은 가볍게 의논할 수 없습니다. 양(陽)의 덕이 성하면 음(陰)의 사특함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입니다. 이 시기에 어떻게 갑자기 토목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단 말입니까."
하고, 홍명하가 아뢰기를,
"매우 절박하셔서 이런 분부를 하셨을 터이니, 유사에게 물어 재목과 칸수와 제도를 헤아려 너무 사치한 데 이르지 않으신다면 또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우상 정치화가 안 된다고 힘껏 말하면서,
"가뭄이 이렇게 참혹하니, 비록 일심으로 하늘을 대하고 안정하면서 일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하늘의 견책에 답하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 만약 역사를 일으킨다면 백성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하께서 기어이 이번 일을 하신다면 나라는 틀림없이 망할 것입니다. 어떻게 나라가 망했는데 자전께서 홀로 안락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기까지 했는데, 상이 묵묵히 한참 있다가 이르기를,
"나도 이 점을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형세가 매우 절박하기 때문에 대신들과 더불어 상의하는 것이다. 만약 안 된다고 한다면, 어찌 억지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어기겠는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상의 분부가 애당초 지극한 심정에서 나왔는데 뭇 아랫사람의 말을 듣고 문득 받아들이시니, 이는 참으로 성덕의 일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53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왕실-종사(宗社)
○上與諸臣疏決罪人如例, 上謂諸大臣曰: "近來宮中, 多有鬼變, 慈殿所御, 尤甚不安, 頃者奉移于慶德宮。 慈殿念舊宮之不可仍廢, 今復還御, 而變怪猶前。 不可無變通之擧, 欲於(慶)〔景〕 福舊基, 略搆新宮, 未知諸卿之意如何?" 鄭太和曰: "聖敎雖出於切迫, 此事不可輕議。 陽德盛, 則陰邪自屛。 當此之時, 何可遽起土木之役乎。" 洪命夏曰: "萬分切迫, 有此聖敎, 下詢有司, 量度材木, 間架制度, 不至過侈, 則亦何妨也。" 右相鄭致和力言其不可, 至曰: "旱災此酷, 雖一心對越, 安靜無爲, 猶不足以答天譴。 當此之時, 如有興作, 則民將以爲如何也。 殿下必爲此擧, 則國必亡。 安有國亡, 而慈殿獨享其安乎。" 上默然良久曰: "予亦不非念此, 而情勢甚切, 故與大臣相議。 若以爲不可, 則何可强拂群議乎。" 太和曰: "上敎初出於至情, 而及聽群下之言, 遽爾容受, 此實聖德事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53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