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등과 초복을 거행하여 사형수 20명을 논죄하고, 역법 등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대신과 삼사·금부·형조의 당상 2품 이상과 더불어 초복(初覆)을 거행하여 경외의 사형수 20명을 논죄하였다. 상이 여러 신하에게 명하여 각각 소견을 진달하도록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사형시켜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면시켜야 한다고 하자, 상이 뒷날 다시 의논하여 처치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좌상 홍명하가 아뢰기를,
"무신(武臣)이 변읍(邊邑)에 제수되었을 경우 비록 늙은 부모가 있더라도 감히 체직을 청하지 않는 것이 국법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한두 변방 관리가 어버이가 늙었다는 것으로 체직되자 이후부터 늙은 부모가 있는 무신들은 변읍에 제수되면 문득 벗어나려고 도모하곤 합니다. 이번에 부령 부사(富寧府使) 신한주(申翰周)와 경흥 부사(慶興府使) 정후량(鄭后亮)이 어버이에게 병환이 있다는 이유로 서로 잇따라 글을 올렸으니, 이런 습성을 막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정에서 그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체직시켜 주는 것은 몰라도 그들이 어찌 감히 직접 글을 올린단 말인가."
하였다. 홍명하가 아뢰기를,
"지난날 갑산 부사(甲山府使) 양식(梁侙)은 늙은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우상이 진달하여 체직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한주는 노모만 있고 다른 형제가 없으며, 정후량은 영남 사람으로 노모를 모시고 서울로 왔는데, 갑자기 변읍에 제수되자 기탁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두 사람은 체차하고, 이 뒤로는 문무(文武)를 막론하고 변읍에 제수된 뒤에는 체직시켜 주기를 청하지 못하게 하여 뒤폐단을 막도록 하라."
하였다. 영상 정태화가 아뢰기를,
"변읍뿐만 아니라 내지(內地)라 하더라도 진실로 원하는 바가 아니면 사람들이 다 싫어하고 피하여 반드시 면직되고야 맙니다. 게다가 해조에서는 의망하여 제수하자마자 곧바로 또 체직시킬 것을 청하니, 이런 습성은 모두 가증스럽습니다. 모두 거듭 금지시키소서."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상이 정태화에게 이르기를,
"이번에 가져온 청나라 역서(曆書)가 그전 것과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아뢰기를,
"중국은 역법에 대한 논의가 여러 갈래입니다. 명나라 때에도 어떤 사람이 상소하여 시헌력(時憲曆)의 그릇된 점을 논하였기 때문에 탕약망(湯若望)의 역법이 간행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전 것과 다른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떤 역법을 쓰는 것이 옳겠는가?"
하니, 정태화가 아뢰기를,
"청나라 사람도 제사지낼 때에는 다 대통력(大統曆)을 쓰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시헌력은 앞으로 폐지하고 시행하지 않을 것인가?"
하니, 정태화가 아뢰기를,
"시행하지 않아야 할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대부 집에서도 이번에 들여온 새 역법을 사용할 것인가?"
하니, 정태화가 아뢰기를,
"이미 구역(舊曆)을 반포하였고 신역(新曆)은 미처 인쇄해내지 못하였으므로 서울이나 지방의 크고 작은 제사에는 마땅히 신역을 채택하겠지만 여염에서는 반드시 구역을 그대로 사용할 것입니다."
하자, 승지 김만기(金萬基)가 아뢰기를,
"한 나라에서 어찌 두 가지 역을 쓴단 말입니까. 신역을 신속하게 인쇄하여 팔도에 반포하소서."
하니, 정태화가 아뢰기를,
"말이야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형편상 실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단역(單曆) 한 장을 급히 인쇄하여 서둘러 반포하고 전에 쓰던 시헌력은 지금 비록 사용하지 않더라도 역시 해마다 인쇄해 두어서 후일 추산이 착오가 생길 때 참고하도록 하되, 그전에 대통력을 인쇄해 두었던 것처럼 하라."
하였다. 집의 이익 등이 아뢰기를,
"무신(武臣)의 집에 문관(文官)을 드나들지 못하게 한 것은, 대개 명절(名節)을 가다듬고 혐의를 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찍이 통제사 박경지(朴敬祉)가 사조(辭朝)할 때에 재신 중에 직접 그 집에 간 자도 있고 문밖에서 전송한 자도 있다고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매우 파다합니다. 지금까지 떠도는 시끄러운 말은 이와 같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들로 말미암은 것이니 어찌 사대부의 치욕 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조사하여 다스려서 사대부의 풍습을 바로잡지 않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먼저 박경지를 함문(緘問)하여 그로 하여금 사실대로 지명하여 고하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대사간 이은상(李殷相)이 아뢰기를,
"유학 권계흥(權啓興)은 위인이 용렬하고 나이도 많은데 외람되게 특별히 천거하는 속에 들어 있으므로 듣는 자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천주(薦主)인 병조 참판 유심(柳淰)을 무겁게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32면
- 【분류】인물(人物)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윤리-강상(綱常) / 과학-역법(曆法)
○丙辰/上與大臣、三司、禁府、刑曹堂上、二品以上, 行初覆, 論京外死囚二十人。 上命群臣, 各陳所見, 或曰可殺, 或曰: "可赦。" 上曰: "後日, 當更議以處。" 左相洪命夏曰: "武臣除授邊邑, 雖有老親, 不敢呈遞法也。 頃者一二邊倅, 以親老見遞, 自此武臣之有老親除邊邑者, 輒有圖免之計。 今者富寧府使申翰周、慶興府使鄭后亮, 以親病相繼呈狀, 此習不可不防。" 上曰: "朝家若體念, 而遞之則可, 渠何敢呈狀乎?" 命夏曰: "頃日甲山府使梁侙以老親之故, 右相陳達得遞。 今翰周有老母, 無他兄弟, 后亮嶺南人, 將母來京, 而遞授邊邑, 無所寄托矣。" 上曰: "此兩人遞差, 此後則毋論文武邊邑, 除授之後, 毋得啓遞, 以杜後弊。" 領相鄭太和曰: "非徒邊邑, 雖內地, 苟非所願, 人皆厭避, 必圖免而後已。 且該曹纔已擬除, 旋又啓遞, 此習俱可惡也。 亦宜一體申禁。" 上曰: "可。" 上謂鄭太和曰: "今來淸曆, 與前異者, 何故耶?" 對曰: "中原曆法, 論議多岐。 明朝時人, 亦陳疏論《時憲曆》之失, 故湯若望曆法, 不得印行。 此所以與前異者也。" 上曰: "然則用何曆爲是耶?" 太和曰: "淸人亦於祭祀時, 皆以《大統曆》用之矣。" 上曰: "《時憲曆》將廢不行乎?" 大和曰: "似當不行矣。" 上曰: "士夫家亦用今來新曆乎?" 太和曰: "旣頒舊曆, 未及印出新曆, 京外大小祭享, 則當以新曆推擇, 而閭閻, 則必仍用舊曆矣。" 承旨金萬基進曰: "一國之內, 豈有二曆乎。 新曆宜速印頒於八路。" 太和曰: "言非不是, 勢有難及。" 上曰: "單曆一張, 急先印出, 斯速頒布, 而前用《時憲曆》, 今雖不用, 亦宜年年印置, 以憑日後推步之差錯, 如前《大統曆》印出之爲也。" 執義李翊等啓: "文官之不得往來於武夫之家者, 蓋所以勵名節, 而遠嫌疑也。 曾於統制使朴敬祉之辭朝也, 宰臣中或有親往其家者, 或有送於門外者, 人皆傳說, 不勝其藉藉。 向來譊譊之談, 未必不由於此等無恥之類, 豈非搢紳之羞辱乎。 不可不査治, 以正士夫風習。 請先緘問敬祉, 使之指名現告。" 上從之。 大司諫李殷相啓曰: "幼學權啓興爲人庸下, 年且衰耗, 而濫參於別薦之中, 聞者莫不駭異。 請拔去薦主兵曹參判柳淰, 從重推考。"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532면
- 【분류】인물(人物)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윤리-강상(綱常) / 과학-역법(曆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