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관 서연청에 거둥하여 칙사와 함께 신하들의 죄를 조사하다
상이 남별관 서연청에 거둥하여 조사하였다. 영상과 좌상은 문밖에 있고 우상만 들어와 참여하였다. 상과 칙사가 서로 읍하고 다례를 행하였다. 칙사가 일선을 시켜 말을 전하기를,
"지금 신하들의 죄를 사정(査定)하여야 하겠는데, 국왕의 분부를 듣고자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는 황공하여 할말이 없으니 오직 칙사의 처분에 달려 있소."
하자, 칙사가 말하기를,
"황제 폐하의 교지에 ‘국왕과 함께 조사하라.’ 하였으니, 밝은 분부를 듣고자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묻는 대로 대답하겠소."
하였다. 칙사가 신하들을 물리칠 것을 청하였는데, 상이 운검(雲劍) 4명과 우상 허적과 3명의 승지와 한주(翰注)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명하였다. 칙사가 자리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대신이 되어 국정을 맡고 있는 자가 상국의 백성이 도망해 왔는데도 즉시 주문하지 않고 3년 동안이나 비호하고 머물려두어 끝내 달아나 돌아오게 하였으며, 상국이 사실을 알고난 다음에야 감히 ‘주문하려 하였으나 미처 하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극히 큰 죄이니, 사율(死律)로 논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즉시 일어나 자리를 피하고 북쪽을 향해 땅을 치면서 이르기를,
"이것은 나의 죄이니, 황제께 죄를 청하지 않을 수 있겠소."
하자, 부칙사도 일어나서 말하기를,
"국왕이 죄를 자신에게 돌리는 뜻은 우리들이 돌아가서 황제께 아뢰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의논해야 하는 것은 단지 대신의 죄입니다."
하였으나, 상사 뇌호(雷虎)는 목석같이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주위를 돌아볼 뿐이었다. 상이 이르기를,
"천하의 법은 엄하기가 금석과 같으므로 일시의 견해로써 가볍게 하거나 무겁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경인년077) 의 일은 이번보다 더욱 큰 것이었지만 황제께서 특별히 너그럽게 용서하여 죽이지 않았는데, 이번의 대신의 죄가 어찌 사죄에까지 해당된단 말이오."
하니, 칙사가 말하기를,
"상국의 백성을 몰래 숨겨두었으니 그 죄가 어떤 것입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단지 미처 아뢰지 못한 죄일 뿐인데, 이것은 임금된 자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오."
하니, 칙사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넓은 하늘 아래 왕토(王土)가 아닌 곳이 없는데, 도망온 한 명의 백성을 미처 아뢰지 못하였다고 어찌 죽이기까지 한단 말이오."
하니, 칙사가 말하기를,
"우리들의 생각은 이미 다 말하였습니다. 국왕은 어떤 법률로 논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칙사는 사죄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나는 사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소견이 각기 다르니 다시 잘 생각해봐야 하겠소."
하였다. 칙사가 말하기를,
"처음에 대신에게 보고하여 대신이 의논한 뒤에 국왕에게 아뢰지 않았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들이 나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고 스스로 죄를 감당하려는 것이오. 사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의주 부윤이 감사에게 보고하자 감사가 곧장 장계를 올렸으므로 내가 먼저 보고나서 비국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소."
하자, 칙사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다시 신하들을 불러 물어보겠습니다."
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정태화, 홍명하, 김좌명이 들어오자 칙사가 묻기를,
"처음에 문서를 대신이 먼저 보았소. 국왕이 먼저 보았소?"
하니, 세 신하가 일제히 대답하기를,
"신하의 의리상 군부에게 죄를 미룰 수 없기에 전날 조사받던 때에 사실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 임금께서 우리로 하여금 사실대로 고하게 하시니, 어찌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처음에 의주 부윤이 감사에게 보고하자 감사가 상에게 계문하여 비국에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서로 의논하여 아뢰었습니다."
하였다. 칙사가 말하기를,
"주상은 어떤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죄 아래에 법률이 하나 둘이 아니니, 칙사의 처분에 맡기겠소."
하였다. 칙사가 말하기를,
"국왕이 말이 이렇게 간절하니, 분부대로 한 등급 낮은 법률로 정죄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매우 감사하오."
하자, 칙사가 말하기를,
"의주 부윤은 이미 죽었고, 대신이 또 그 죄를 담당하였으니 감사에게는 달리 논죄할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인하여 칙사에게 며칠 머무를 것을 청하니, 2일간 머무르겠다고 하였다. 상이 궁으로 돌아왔다.
삼가 살펴보건대, 이 일을 조사하는 때에 상이 받은 곤욕을 어찌 차마 말하겠는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에 종일토록 예복을 차려 입은 채 이류(異類)와 상대하여 수응하였고, 대신을 감죄하는 때에는 일어나 자리를 피하여 북쪽을 향해 땅을 치며 몸소 담당하여, 마치 청나라 황제에게 죄를 청하는 듯이 하였으니, 그 처참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찌 남한 산성 아래에서의 굴욕보다 작은 것이었겠는가. 처음에 안추원이 도망왔을 때에 주문하고 돌려보내자는 의논이 있었다. 그러나 저 두 대신이 산림의 의논에 동요되어 도망온 한 백성을 엄호하였다가 끝내 지존으로 하여금 전에 없던 이런 치욕을 당하게 하였으니, 국법으로 논한다면 마땅히 어떤 죄이겠는가. 오직 우리 성명께서 두 신하의 죄가 사형에 이르게 될 것을 걱정하여, 저들이 무슨 말을 낼 때마다 모두 나서서 스스로 담당하였고, 만금의 비용을 아끼지 않고 두 신하를 헤아릴 수 없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아, 군신이 있은 이래로 신하로서 임금에게 은혜를 받은 자 중에 두 신하만한 자가 있겠는가. 오로지 목숨을 바칠 것을 기약하고 충성을 다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태화는 일에 임하면 반드시 피하고 녹을 보존하기에만 마음을 두고, 명하는 연소배의 명을 들어 자기편을 위주로 하고 나랏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이 두 신하는 불충(不忠)하고 불인(不仁)하다 할 수 있겠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23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註 077]경인년 : 1650 효종 원년.
○上詣南別館西宴廳, 行査事。 領、左相在門外, 只右相入參。 上與勑使相揖, 行茶禮訖, 勑使令一先致辭曰: "今當査定諸臣之罪, 願聞國王下敎。" 上曰: "予則惶恐無以爲言, 惟在勑使之處分耳。" 勑曰: "皇旨旣云: ‘與王同査’, 願聞明敎。" 上曰: "無已則敢不隨問以對乎。" 勑請辟左右, 上命留雲劍四人、右相許積、三承旨、翰注, 其餘竝令出去。 勑進席曰: "身爲大臣, 任其國政, 而上國之人, 逃來之後, 不卽奏聞, 掩護留置, 至於三年之久, 終致逃還, 自上國知情之後, 乃敢曰: ‘欲奏未及’, 此罪極重, 當論以死律。" 上卽起避席, 北向叩地曰: "此予之罪也, 敢不請罪於皇帝乎。" 副勑亦起立曰: "國王引罪之意, 俺等當還告于帝前。 而今日所議者, 只大臣之罪也。" 上使雷虎, 則貌如木石, 略不動色, 環視而已。 上曰: "天下之法, 嚴如金石, 不可以一時之見, 有所輕重。 庚寅年事, 比之今日, 則亦重矣, 皇帝特用寬典, 貸以不死, 今日大臣之罪, 豈至於死乎。" 勑曰: "隱置上國之民, 其罪伊何?" 上曰: "只是未及奏聞之罪, 此則爲其君者, 亦當任之。" 勑曰: "不然。" 上曰: "普天之下, 莫非王土, 一逃民未及奏聞, 豈至於死乎。" 勑曰: "俺等之意, 旣已畢陳。 國王欲以何律論之乎?" 上曰: "勑使以爲當死, 予則以爲不當死。 所見各異, 須更思量。" 勑曰: "當初報于大臣, 大臣相議, 然後達于王乎?" 上曰: "大臣之意, 欲使予免罪, 自當其罪。 而事有不然者, 義州府尹報于監司, 監司直爲狀啓, 故予先見之, 而下備局議之耳。" 勑曰: "然則更招問諸臣。" 上曰: "可。" 太和、命夏、佐明入來, 勑曰: "當初文書, 大臣先知乎, 國王先知乎?" 三臣竝聲對曰: "臣子分義, 不可以罪推諉於君父, 故頃日査問時, 不敢以實對矣。 今則吾君使吾等直告, 何敢違命。 當初灣尹報監司, 監司啓聞於上, 而下備局。 故吾等相與議啓矣。" 勑曰: "明敎當律何如?" 上曰: "死罪以下, 律非一二, 惟勑使之處分耳。" 勑曰: "國王之言, 懃懇至此, 當依敎定以次律。" 上曰: "感甚感甚。" 勑曰: "義州府尹, 旣已身死, 大臣又當其罪, 監司則別無可論之事。" 上引請留勑使, 許留二日。 上還宮。
【謹按當此行査之日, 上之受困被辱, 尙忍言哉。 時當老炎, 終日束帶, 與異類相對酬應, 大臣勘罪之時, 至於起立離席, 北向叩地, 以身自當, 有若請罪於淸主者然, 想其景色之慘, 豈下於南漢城下之辱哉。 秋元逃來之初, 有奏聞還送之議。 而彼兩大臣者, 動於山林之議, 容護一逃民, 終使至尊, 蒙此無前之恥辱, 論以王法, 罪當何如也。 惟我聖明, 以兩臣之罪抵重辟爲憂, 彼之出言也, 無不自當, 而不惜萬金之費, 以脫兩臣於不測之地。 噫! 自有君臣以來, 臣而受恩於君者, 豈有如兩臣者哉。 惟當效死爲期, 竭忠盡誠, 以報萬一。 而太和也臨事必避, 只以保祿爲心, 命夏也聽命年少, 只以黨同爲主, 置國事於度外, 若兩臣者, 可謂不忠, 且不仁者哉。】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523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