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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11권, 현종 6년 9월 5일 무자 2번째기사 1665년 청 강희(康熙) 4년

좌참찬 송준길을 인견하여 원자의 교육, 자전에 대한 진연 등의 일을 의논하다

좌참찬 송준길이 소장을 올려 온천(溫泉)에 가서 목욕하게 해줄 것을 청하니, 상이 인견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신이 다행히 원자를 뵙게 되었습니다. 종사와 신민의 큰 경사가 실로 여기에 있으니 위에서 제가(齊家)하는 법을 잘 실행하여 원자로 하여금 취하여 본받게 한다면 어찌 국가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보양하는 책임이 제신들에게 있기는 합니다만 나아가 뵙는 것이 때가 있으니 십한(十寒)041) 의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항상 좌우에 두고 곳에 따라 교유하는 것은 오직 전하께 달려 있습니다. 신은 노병(老病)이 날로 깊어져 가고 있으므로 지금 서늘해져 가는 시기에 맞추어 휴가를 얻어 목욕을 하러 가고 싶어 감히 이렇게 거듭 청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 천기(天氣)가 이미 서늘하여 졌으니, 경이 내려간다고 해도 반드시 목욕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자가 이미 상견례를 행했으니 글을 배우게 해야 하는데 경이 내려간다면 누가 그를 교도(敎導)하겠는가. 그리고 원자가 전에는 수염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했는데 경을 만나고 난 뒤부터 항상 다시 만나보고 싶어했다. 오늘도 경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방금 나와서 만나보려 하고 있다."

하였다. 상이 원자를 나오게 하라고 명하니, 원자가 당수(唐首)·옥잠(玉簪)에 남색사 도포(藍色紗道袍)·홍사대(紅絲帶)·흑화(黑靴) 차림으로 나와서 북쪽을 향하여 재배하고 어좌(御座)의 왼쪽에 앉았다. 준길이 아뢰기를,

"신이 압존(壓尊)되어 답례(答禮)를 할 수 없기에 매우 황공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원자에게 이르기를,

"좌참찬을 본 적이 있느냐?"

하자, 원자가 보았다고 대답하였다. 상이 안석(案席)에 기대어 웃음을 머금은 채 원자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원자는 미목(眉目)이 청아하고 신기(神氣)가 빼어났는데 단정하게 손을 마주 잡고 정좌하여 제신들을 둘러보았다. 입시했던 신하들이 모두 은근히 기뻐하였다. 조금 있다가 상이 원자에게 대내(大內)로 들어가라고 명하니, 원자가 일어나서 재배하고 들어갔다. 준길이 아뢰기를,

"삼가 원자께서 행례(行禮)하는 것을 살펴보니 읍양하고 배궤(拜跪)하는 것이 법도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궁중(宮中)에서 예습을 했다고 하더라도 타고난 자질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힘써 학문을 강론하게 함으로써 품성을 개도하여 증익시켜야 하는데 강해야 할 글은 의당 《효경(孝經)》으로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기는 하지만 자음(字音)을 필시 알지 못할 것이니 먼저 《훈몽자회(訓蒙字會)》를 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자, 준길이 아뢰기를,

"《효경》을 강하면서 겸하여 자서(字書)도 강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인하여 강학(講學)함에 있어 날마다 할 것인가 하루씩 걸러 할 것인가에 대한 당부(當否)를 결정할 것을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하루씩 걸러 하도록 하라. 보양관은 1인으로 정할 필요가 없다. 일이 없을 경우에는 2인이 들어와도 된다."

하였다. 준길이 또 목욕하러 가게 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상이 면유하고 윤허하지 않았다. 준길이 아뢰기를,

"삼가 듣건대 진연(進宴)을 거행할 것을 이미 결정했다고 하는데 시세를 상고하여 보면 해서는 안 될 점이 있습니다. 지금 백성의 일이 참담하여 큰 흉년의 재앙이 팔로(八路)가 똑같은 실정이어서 백성의 주검이 구렁을 메울 상황입니다. 게다가 근래 천재(天災)가 마음을 놀라게 하고 태백(太白)이 낮에 나타나 지금껏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 걱정스런 때를 당하여 이렇게 성대한 행사를 거행하는 것을 외방 사람들이 듣는다면 장차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더구나 제왕(帝王)의 효도는 구체(口體)를 봉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종사를 공고하게 하여 백성들이 안락(安樂)을 누리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내년 봄에 자전을 모시고 온천으로 목욕하러 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내년에 자전의 체후가 평복되고 농사도 풍년이 든 뒤에 성례(盛禮)를 거행하여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국상(國喪)이 있은 뒤로 잇따라 흉년이 든 탓에 아직 한번도 두 자전께 진연을 올리지 못하였다. 임인년042) 에는 연사(年事)가 조금 풍년이 들었으므로 장차 설행(設行)하려 했으나 만수전(萬壽殿)의 상제(喪制)를 당하였던 탓에 또 설행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만수전의 상제가 겨울에 끝났기 때문에 이에 대신들과 상의하여 겨울 끝이나 초봄에 설행하려 했다. 만일 1년, 2년 자꾸 미루다 보면 끝내는 설행할 때가 없게 될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에는 풍정(豊呈)을 행하자고 하는 이도 있었으나 단지 간략하게 진연(進宴)을 설행하여 조금이나마 나의 마음을 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천재(天災)와 민원(民怨)이 이렇게 매우 극심한 상황인데 나라에서 한편으로 이런 거조를 행한다면 먼 외방의 백성들이 장차 반드시 국가에서 구휼(救恤)하여 주지 않으면서 도리어 성대한 행사를 거행한다고 여길 것이니, 어떻게 백성들에게 해명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임금의 거조가 조금이라도 천의(天意)와 민심(民心)에 합치되지 않는 점이 있게 된다면 이는 아마도 제왕의 효도가 아닐 듯싶습니다. 일찍이 선조(先朝) 정유년043) 에 진연을 설행하려 했었는데 마침 겨울에 우레가 치는 변이 발생했으므로 신이 탑전에서 진달하였더니 선왕께서는 즉시 물려서 설행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을 두려워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근래 천재와 경주(慶州)·강릉(江陵)의 변고는 모두 전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런 때에 이런 거조가 있는 것은 매우 미안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진달하니, 삼가 바라건대 다시 생각하여 보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자식이 되어 날짜가 가는 것을 아끼는 마음에 있어 흐르는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어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지경에 이를까 우려했기 때문에 부득이하여 거행하려는 것이다."

하자, 준길이 아뢰기를,

"신들도 부모가 있는데 이런 성교(聖敎)를 듣고 어떻게 감히 다시 진달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신의 뜻은, 제왕의 효도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먼저 큰 것을 행한다면 이런 일은 비록 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효도에 무슨 손상될 것이 있겠느냐고 여겨 아뢴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47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친(宗親)

  • [註 041]
    십한(十寒) : 공부나 수양을 오래 단절함.
  • [註 042]
    임인년 : 1662 현종 3년.
  • [註 043]
    정유년 : 1657 효종 8년.

○左參贊宋浚吉上疏, 請往浴溫泉, 上引見。 浚吉曰: "臣幸得拜元子。 宗社臣民之大慶, 實在於此, 自上若克行齊家之法, 使元子取則, 則豈非國家之福乎。 輔養之責, 雖在諸臣, 而進見有時, 不無十寒之慮。 至於恒置左右, 隨處敎誘, 則惟在殿下矣。 臣老病日深, 欲趁今向涼之時, 得暇往浴, 敢此申請。" 上曰: "卽今天氣已涼, 卿雖下去, 必不得沐浴。 元子旣已相見, 使之始學, 卿若下去, 誰與敎導。 且元子曾前惡見有髯之人, 自見卿後, 常欲更見。 今日聞卿入來, 方欲出見矣。" 上命元子出來, 元子唐首玉簪藍色紗道袍紅絲帶黑靴而出, 北向再拜, 坐於御座之左。 浚吉曰: "臣壓尊不得答禮, 極爲惶恐。" 上謂元子曰: "曾見左參贊否?" 元子對曰: "唯上, 倚案含笑, 諦視元子。 眉目淸朗, 神氣秀拔, 端拱危坐, 周視諸臣。 入侍之臣, 無不竊喜。 少頃, 上命元子入內, 元子起再拜而入。 浚吉曰: "竊觀元子行禮, 揖讓拜跪, 無不中度。 雖或預習於宮中, 若非天成, 何以如此。 自今當勉令講學, 以開益其性, 所講之書, 當講《孝經》矣。" 上曰: "然, 字音想必不解, 先講《訓蒙字會》何如?" 浚吉曰: "講《孝經》, 兼講字書, 則好矣。" 因請講學逐日間日之當否, 上曰: "間日爲之可也。 輔養官不必定以一人。 若無故則雖二人入來, 可矣。" 浚吉又請往浴, 上勉諭不許。 浚吉曰: "竊聞進宴之擧已定, 考之時勢, 有不可者。 卽今民事慘然, 大無之災, 八路同然, 民將塡壑。 加以向來, 天災驚心, 太白晝見, 至今未弭, 當此憂虞之時, 而爲此豐亨豫大之擧, 則外方聽聞, 將謂如何? 況帝王之孝, 不在於口體之養, 而實在於宗社鞏固, 百姓安樂而已。 似聞明春, 將奉慈殿往浴溫泉, 若待明年慈候平復, 年歲豐登然後, 擧行盛禮, 與民同樂, 則豈不好乎?" 上曰: "自國喪之後, 連値凶歉, 尙未得一進宴於兩慈殿。 壬寅年年事稍豐, 將欲設行, 而萬壽殿遭喪制, 又不得行。 萬壽殿喪制盡於冬間, 故玆與大臣相議, 欲行於冬末春初。 若一年二年, 漸至遷延, 則終無可爲之時。 群意則或有欲行豐呈者, 而只欲略設進宴, 少紓予情而已。" 浚吉曰: "天災民怨, 如是孔棘, 而國家一邊爲此擧措, 則遠外之民, 將必謂國家不恤, 而反爲豐大之擧, 將何以自解於民哉? 凡人君擧措, 若不少合於天意民心, 則恐非帝王之孝也。 曾在先朝丁酉年間, 將設進宴, 而適有冬雷之變, 臣陳達於榻前, 則先王卽命退行。 此乃畏天之道也。 近來天災及慶州江陵之變, 皆是前古所無。 此時此擧, 極爲未安, 故敢此陳達, 伏望更加思量。" 上曰: "人子愛日之情, 只恐流光不待, 後悔莫及, 故爲此不得已之擧也。" 浚吉曰: "臣等亦有父母, 聞此聖敎, 何敢更達? 但臣意, 則帝王之孝, 不在於此, 若先行其大者, 則如此等事, 雖或不行, 何損於孝乎。"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47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