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9권, 현종 5년 11월 19일 병오 3번째기사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행 판중추부사 정유성의 졸기
행 판중추부사 정유성(鄭維城)이 졸하였다. 유성은 인조조에 등제하여 청요직을 역임하고 효종 때에 여러번 승진하여 육경에 이르렀다. 금상 초기에 우상에 임명되었고 이때 와서 졸하니, 나이가 69세였다.
그의 손자 정제현(鄭齊賢)이 효종의 세째 딸 숙휘 공주(淑徽公主)에게 장가들었다. 당시 여러 공주의 저택이 극히 사치하여, 효종이 제현을 위해 저택을 지어주는 데 제도가 매우 크고 화려하였다. 이에 유성이 청대하여 아뢰기를,
"신의 손자는 한미한 가문에서 생장하여 일평생 들어가 살 집이 그저 몸을 들여놓을 정도면 족합니다. 15칸을 한도로 해주소서."
하였으나, 효종이 들어주지 않았다. 그뒤 공주를 보면 항상 크고 사치한 것을 경계하였으므로 공주가 궁중에 품하여 70칸을 줄이었다. 그러나 사람됨이 속되고 옹졸하여 정승으로서의 공업은 일컬을 만한 게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440면
- 【분류】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