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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8권, 현종 5년 윤6월 13일 계유 2번째기사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희정당에서 대신들과 가뭄 대책·관리의 휴가 등에 대해 의논하다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신하를 희정당에서 인견하였다. 영의정 정태화(鄭太和)가 아뢰기를,

"큰비가 온 뒤에 가뭄이 또 이와 같으니, 금년 농사도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일에는 장맛비가 열흘 넘게 쏟아졌는데 지금은 너무 가물어 비가 올 듯하면서 오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하였다. 태화는 아뢰기를,

"기전(畿甸)은 비를 바라는 것이 절실하지만, 호서·호남의 경우 천안 이하 전주 이상 지역은 빗물이 크게 불어 수전(水田)도 재앙을 입었습니다."

하고, 우의정 홍명하(洪命夏)는 아뢰기를,

"곡식이 물에 잠겨 썩을 근심이 있을 뿐만이 아니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많으니 참으로 놀랍고 참혹스럽습니다."

하였다. 이조 판서 박장원(朴長遠)이 아뢰기를,

"본조의 좌랑 여성제(呂聖齊)는 지금 바야흐로 병으로 정사(呈辭) 중에 있고, 참판 이상진(李尙眞)은 지방에 있으며, 참의 이경휘(李慶徽) 또한 휴가 중에 있어 소신 혼자서 전석(銓席)의 중임을 감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민망스럽습니다."

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일찍이 선왕조 때에 이조 낭관의 정순(呈旬)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근래 조정이 존중받지 못하고 체통이 크게 무너져 아랫사람들이 임금의 명이 무서운지를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일이 있으면 염우(廉隅)를 핑계로 모두 직임을 살피지 않으니, 일의 체모로 헤아려보면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판서가 정순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또한 어찌 감히 이렇게 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제가 불안해 하는 것은 어떤 일인가?"

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좌랑 이민서(李敏叙)를 특별히 파직할 때에 그가 같은 직임으로 마침 지방에 있다가 홀로 파직을 면하여 이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이조의 낭관은 근시(近侍)와 다른 점이 있으니, 조정에서 그들을 대우하는 것도 또한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민서와 거취를 함께 하려고 하니, 그 습성이 밉습니다. 인조(仁祖) 말년에는 젊은 사람들이 감히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순을 하면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없는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비록 정순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만약 병가(病暇)를 내어 30일이 되면 으레 체차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 번으로 기한을 삼아 반드시 체직되기를 기약하는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지금부터는 실제로 병이 나 사람들이 다 아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록 병가를 내 30일이 되었더라도 체가(遞假)를 허락치 말라. 그리고 낭청의 단자 또한 정원에서 받아들이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김좌명(金佐明)이 아뢰기를,

"일찍이 호조 판서 정치화(鄭致和)가 아뢴 것으로 인하여 관서 지방의 쌀을 수령해 온 차사원 광량 첨사(廣梁僉使) 정섬(鄭暹)과 조선 압령관(漕船押領官) 정석달(鄭碩達) 등에 대하여 탑전에서 논상하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대전(大典)》에 50척을 실패하지 않고 운송해 온 자는 가자하고 자궁자는 준직(准職)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일 수령해 가지고 온 사람 강준(姜俊)도 만호에 제수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50척을 수령해 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하자, 태화가 아뢰기를,

"바다를 건너 수령해 오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들에게 준직의 상을 주더라도 그에 상당한 직책이 없으면 끝내 그들의 재주를 쓸 수 있을 때가 없을 것이니, 도리어 즉시 첨사에 제수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노강 첨사(老江僉使) 고엄(高嶖)도 서쪽에서 오는 쌀 1만여 석을 수령해 들인 일이 있는데, 전일 정치화가 진달할 때 빠뜨림을 면치 못했으니, 똑같이 논상해야 할 듯합니다."

하였다. 좌명이 아뢰기를,

"만호는 첨사로 올려야 하겠지만, 정섬고엄은 모두 첨사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이 두 사람 모두 무재(武才)가 있으니, 수령에 제수해도 무방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정섬고엄은 수령에 제수하고, 정석달은 품계를 올려 서용하라."

하였다.

좌명이 전일 유황을 무역해 온 사람을 논상하자고 말한 일을 가지고, 상이 소통사(小通事) 박명천(朴命天)에게는 통정첩(通政帖)을 지급하고, 부상(富商) 이응상(李應祥)에게는 가선첩(嘉善帖)을 지급하고, 그 나머지에게는 차등있게 베를 상으로 지급하라 명하였다. 박장원이 아뢰기를,

"북도 시재(試才)의 중신(重臣)을 본조에서 지금 차출하려 합니다."

하니, 명하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중신을 차출해 보내는 것은 번거로울 듯합니다. 승지를 보내더라도 불가함이 없습니다."

하고, 허적은 아뢰기를,

"당초 서필원(徐必遠)이 이 일을 진달하였을 때 대신을 보내자는 것으로 건의하였었습니다. 대신을 보내지 않는 데다가 중신마저 보내지 않는다면 변방의 백성들이 반드시 실망할 것입니다."

하고, 좌명은 아뢰기를,

"변방의 백성을 순시하는 것은 그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조치에서 비롯된 것이니, 상께서 명을 내리시면 누가 가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신이 가겠습니다."

하자, 정원이 아뢰기를,

"대사마(大司馬)가 변방으로 가면 어찌 번거로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는 결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였다. 태화가 중신을 보내되 해조로 하여금 오늘 정사에서 가려 비의하게 하자고 청하자,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조정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법전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일찍이 선왕조 때에는 나이 80세 이상인 자는 공사천(公私賤)을 막론하고 모두 당상으로 올려 주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지금 전 감사 홍헌(洪憲)은 나이 80세가 되었는데 아직 성대한 의전을 받지 못하였고, 청송(靑松)에 사는 전 주부 조준도(趙遵道)도 89세인데 그의 자제들이 소를 올리려고 하였지만 준도가 금지하여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다 가자하도록 하고, 이들처럼 누락된 사람을 해조에게 수소문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419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교통-수운(水運)

○引見大臣及備局諸臣於熙政堂。 領議政鄭太和曰: "大水之餘, 旱又如此, 今年農事, 亦極可慮。" 上曰: "頃日霖雨浹旬, 今則太旱, 欲雨不雨, 誠可悶也。" 太和曰: "畿甸則望雨雖切, 湖西南, 則天安以下全州以上, 雨水大漲, 水田亦被災矣。" 右議政洪命夏曰: "非但有禾穀沈腐之患, 人物之渰死者亦多, 誠可驚慘。" 吏曹判書朴長遠曰: "本曹佐郞呂聖齊, 今方呈病, 參判李尙眞在外, 參議李慶徽亦在告, 小臣獨當銓席重任, 誠可悶也。" 命夏曰: "曾在先朝, 有勿捧吏郞呈旬之事, 而近來朝廷不尊, 體統大壞, 群下不知君命之可畏。 少有不安, 則諉以廉隅, 皆不察任, 揆以事體, 寧不寒心。 然判書不捧呈旬, 則亦何敢乃爾。" 上曰: "聖齊不安者, 何事耶?" 命夏曰: "佐郞李敏叙特罷之時, 渠以同任, 適在外獨免, 以此不安耳。 該曹郞官與近侍有異, 朝廷之所以待之者, 亦不同。 而必欲與敏叙同其去就, 其習可惡也。 仁祖末年則年少輩, 不敢爲如此事矣。" 上曰: "呈旬不可不捧耶?" 太和曰: "雖不捧呈旬, 若病滿三十日, 則例有遞差之規。 故以此爲限, 期於必遞耳。" 上曰: "今後除實病衆所共知者外 雖病滿三十日, 勿許遞, 假郞廳單子, 亦令政院勿捧。" 兵曹判書金佐明曰: "曾因戶曹判書鄭致和所啓, 關西米領來差使員廣梁僉使鄭暹, 漕船押領官鄭碩達等, 有榻前論賞之敎, 《大典》有五十隻不敗者加資, 資窮者准職之文。 故前日領來人 姜俊, 亦除萬戶矣。" 上曰: "五十隻領來, 誠難耶?" 太和曰: "越海領來, 果不易矣。 但此輩。 雖有准職之賞, 旣無相當之職, 終無可用之時, 反不如卽除僉使矣。 且老江僉使高嶖, 亦有西來米萬餘石, 再次領納之事, 而前日鄭致和陳達時, 未免落漏, 似當一體論賞矣。" 佐明曰: "萬戶則當陞僉使, 而鄭暹高嶖, 皆僉使也, 何以爲之。" 太和曰: "兩人皆有武才, 除拜守令, 亦無妨矣。" 上曰: "然則鄭暹高嶖守令除授, 鄭碩達陞敍。" 以佐明言前日硫黃貿來人論賞事, 上命小通事朴命天, 給通政帖, 富商李應祥給嘉善帖, 其餘則給賞布有差。 朴長遠曰: "北道試才重臣, 本曹今將差出矣。" 命夏曰: "臣意則以重臣差遣, 似涉有煩。 雖遣承旨, 無不可也。" 曰: "當初徐必遠陳達此事時, 以遣大臣獻議。 旣不遣大臣, 又不遣重臣, 則邊民亦必缺望矣。" 佐明曰: "巡視邊民, 出於慰悅之擧, 自上有命, 孰不可往。 臣請自行。" 長遠曰: "大司馬之行邊, 豈不有煩。 此則決難爲也。" 太和請遣重臣, 令該曹今日政擇擬, 上曰可。 太和曰: "國家優老之典, 自是美事。 曾在先朝, 有年八十以上無論公私賤, 竝陞堂上之敎。 今者前監司洪憲, 年滿八十, 而未蒙盛典, 靑松居前主簿趙遵道, 亦八十九歲, 其子弟欲陳疏, 而遵道禁止, 使不得爲矣。" 上曰: "一體加資, 如此落漏之人, 令該曹訪問。"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419면
  • 【분류】
    외교-왜(倭) / 무역(貿易)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 교통-수운(水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