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실록 6권, 현종 4년 3월 21일 기축 1번째기사
1663년 청 강희(康熙) 2년
집의 김만기가 임의백 문제로 박세당을 비판하며 인피하다
집의 김만기(金萬基)가 아뢰기를,
"동료가 모두 시소(試所)에 들어갔기 때문에 신이 성상소(城上所)의 일을 대행하고 있었는데, 임의백의 체차를 청한 전계(前啓)를 가져다 보건대, 그의 잘못된 악습을 차례로 지적하면서 비부(鄙夫)로 지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이 설대로라면 그의 죄명으로 볼 때 체직만 시키고 그만두어서는 안 되고 아예 조정의 반열에 끼이지 못하도록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렇듯 사실을 넘어서서 참혹하고 각박하게 논하는 것은 신이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신이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이 어떻게 그 뜻을 굽신거리며 따라 계속 전계의 문자를 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박세당(朴世堂)이 장황하게 말을 늘어 놓으며 모욕을 가한 것이야말로 뜻밖의 일로서 신은 나름대로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단 모욕을 받은 이상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 수가 없으니, 체차시켜 주소서."
하고,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5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