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표 등의 반대로 호남 대동미를 감하지 않기로 하다
사간 정석(鄭晳)이 탑전에서 처치하기를,
"언어의 실수를 추론(追論)할 수는 없는 만큼 바로잡을 일이 없으니 구차하게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인데 끝내 소란스러운 사태를 야기시켰으니 그 책임은 져야 할 것입니다. 집의 남구만(南九萬) 등은 출사시키고 지평 원만리(元萬里)는 체차시키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정유성(鄭維城)이 아뢰기를,
"호남 대동미를 감할 것인지 감하지 않을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홍명하(洪命夏)가 아뢰기를,
"어떤 이는 감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감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영상은 감하는 것을 불가하게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생각에는 호남에서 13두(斗)를 거두는 것이 그래도 경기 지역의 16두보다는 가볍다고 여겨진다."
하였다. 유성이 아뢰기를,
"해마다 계속 흉년이 들어 백성이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급하지도 않는 미곡을 재촉해 징수함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
하였는데, 두표와 명하가 시종 감하는 것은 불편하다고 말을 하니, 상이 이에 따랐다.
사신은 논한다. 호남에서 대동미로 거두는 13두(斗) 중에서 3두를 감해 주더라도 수요에는 충분히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신(道臣)의 계사(啓辭)와 이경석(李景奭) 등의 차자야말로 백성의 사정을 헤아리고 용도를 참작해서 진달드린 것이었다. 따라서 대신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한 목소리로 감할 것을 청하여 은혜로운 정사가 백성에게 미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두표는 감해주면 안 된다고 극력 진달하였는데, 명하가 또 이에 따라 맞장구를 쳐주었다. 중하게 세금을 매겨 마구 거두어들이는 상황하에서 백성이 고달파지지 않고 나라가 위태롭게 되지 않았던 때를 과거에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던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일명(一命)014) 에 속한 인사라도 참으로 물건을 아끼는 마음을 간직한다면 그만큼 반드시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두표가 정승 자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이 점은 생각지도 않은 채 오로지 상의 뜻에 영합하여 총애를 굳건히 다질 목적으로 백성을 괴롭게 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일조차 서슴없이 해대고 있으니, 너무도 불인(不仁)한 자라 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57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재정-공물(貢物) / 역사-편사(編史)
- [註 014]일명(一命) : 가장 낮은 관리의 품계.
○司諫鄭晳榻前處置以爲: "語言之過, 追論不可, 事無可規, 不可苟同, 終至起鬧, 責有所歸。 請出執義南九萬等, 遞持平元萬里。" 上從之。 維城曰: "湖南大同米減不減, 尙未定矣。" 命夏曰: "或以爲可減, 或以爲不可減, 領相則以減爲不可也。" 上曰: "予意則湖南十三斗, 猶輕於京圻十六斗也。" 維城曰: "連年凶荒, 民命難保, 何可催徵不急之米, 使民不能保乎?" 斗杓、命夏終始以爲減之不便, 上從之。
【史臣曰: "湖南大同收米十三斗, 雖減三斗, 足以需用矣。 道臣之啓, 李景奭等章箚, 實採民情, 參酌用度, 而陳達也。 爲大臣之道, 所當齊聲請減, 使惠政及於民可也。 今者斗杓, 力陳其不可減, 命夏又從而和之。 曷嘗見厚斂重稅, 而其民不困, 其國不危者乎? 程子曰: ‘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 斗杓身居相位, 不此之思, 惟迎合上意, 以固其寵, 而不恤其厲民而病國, 其爲不仁, 甚矣。"】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57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재정-공물(貢物)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