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재해, 미곡을 바치고 면천된 사비의 일, 태봉의 석물 설치, 북로의 봉수 단절 등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가뭄 끝에 비가 왔는데 그것이 도리어 물난리를 빚어 냈으니 너무도 불행한 일이다."
하니, 영상과 우상이 아뢰기를,
"양남(兩南)과 북관(北關)은 더욱 혹심하게 재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하였다. 대사간 김휘(金徽)가 아뢰기를,
"해마다 계속 흉년이 든 뒤끝에 수재(水災)가 또 혹심하니 하늘의 뜻이 두렵기만 합니다. 상께서 반성하며 조용히 살피신다면 어찌 이렇게 되도록 한 이유가 없겠습니까. 대간이 제궁가(諸宮家)에 관계된 일을 논하기만 하면 번번이 윤허를 해주려 하지 않으시는데, 이것은 성세(聖世)의 일이 못 됩니다. 옛날 당 대종(唐代宗)이 승평 공주(昇平公主)의 수애(水磑)를 혁파했었는데 승평은 곧 대종의 딸이었습니다. 공주가 혁파시키지 말 것을 눈물로 호소했지만 대종은 꼭 혁파시켜야 된다는 뜻으로 타이르면서 결국 혁파시켰었습니다. 대종 같은 보통 자질의 임금도 이런 일을 제대로 해 내었는데, 어찌 성명(聖明)한 전하께서 도리어 이보다 못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성명하신 전하께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답하지 않고 좌우를 돌아보며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정유성(鄭維城)이 아뢰기를,
"아름다운 말을 살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재해를 당했을 때 수성(修省)하는 방법입니다. 김휘가 진달드린 말이 매우 옳은데도 끝내 응수조차 해 주려 하지 않으시니, 언로(言路)에 방해될까 염려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또 답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언로를 넓히고 임금의 덕을 보완하는 것은 대신의 책임이다. 상이 제궁가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 간언(諫言)을 따르지 않았던 만큼, 김휘가 말한 것이야말로 직분을 다했다고 할 만한데 묵묵히 답하지 않았다. 대신이 된 자가 일단 말머리를 꺼내놓고는 임금의 잘못을 인하여 바로잡아주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마음 금할 수 있겠는가.
정태화(鄭太和)가 아뢰기를,
"호남에서 미곡을 바치고 면천(免賤)된 사비(寺婢)의 일에 관하여, 일찍이 등대(登對)했을 때 품정(稟定)하라는 분부가 계셨기 때문에 감히 품달드립니다."
하고, 조복양(趙復陽)은 아뢰기를,
"근래 밖의 의논을 들어 보건대, 모두 믿음을 잃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본도(本道)로 하여금 그가 바친 미곡을 도로 내주도록 하라. 그리고 혹시라도 다 써버렸다면 다른 미곡으로 대신 지급한다 해도 무슨 지장이 있겠는가."
하였다. 복양이 아뢰기를,
"면역(免役)해 주는 것은 전에 품정(稟定)했던 대로 시행하고, 바친 미곡 중에서 약간 곡을 덜어내어 도로 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전에 품정했던 대로 처리하라."
하였다. 복양이 아뢰기를,
"당초에 이미 면천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허락하지 않는다면 믿음을 잃는 결과가 될까 염려됩니다. 미곡을 잃을지언정 믿음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그의 소원을 물어보게 한 뒤 면역을 시키거나 미곡을 내주거나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잘 알았다."
하였다. 태화가 또 아뢰기를,
"상께서 즉위하신 후에 태봉(胎封)115) 의 석물(石物)을 즉시 더 설치해야 했는데, 신들이 고사(古事)를 잘 알지 못해 아직까지 거행하지 못했으니, 정말 흠전(欠典)이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태봉에 석물을 더 설치하는 것이 옛날의 규례(規例)인가?"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명종조(明宗朝)에 관원을 보내 수리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해조로 하여금 전례를 상고하여 거행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추수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완이 아뢰기를,
"북로(北路)의 봉수(烽燧)가 단절되는 것이 늘 걱정인데, 이는 대체로 마천령(磨天嶺) 등 네 곳의 큰 영(嶺)이 높아서 구름에 덮여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고, 김좌명(金佐明)이 아뢰기를,
"신이 들은 바에 의하면 회양(淮陽)과 금성(金城) 양 고을 사이에 하늘을 찌르는 산봉우리가 첩첩이 들어서 있어 운무(雲霧)가 늘 개이지 않고 있다 하는데, 봉화(烽火)가 끊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봉수가 이런 상태라면 작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자세히 살펴 변통하라고 양도 감사에게 분부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3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농업-전제(田制) / 역사-편사(編史) / 신분-천인(賤人) / 군사-통신(通信)
- [註 115]태봉(胎封) : 왕실의 태반(胎盤)을 묻어둔 곳임.
○甲子/上御熙政堂, 引見大臣乃備局諸臣, 上曰: "旱餘之雨, 還成水災, 不幸甚矣。" 領右相曰: "兩南與北關, 被災尤酷云矣。" 大司諫金徽曰: "連年失稔之餘, 水災又酷, 天意可畏。 自上若反躬默省, 則豈無致此之由乎? 臺論涉於諸宮家, 則輒靳允兪, 此非盛世事也。 昔唐 代宗罷昇平公主水磑, 昇平, 代宗女也。 公主泣訴勿罷, 代宗喩以必罷之意, 而竟罷之。 代宗, 凡主也, 能有此擧, 豈以聖明, 而反不及歟。 宜聖明之省惕也。" 上不答, 顧左右言他。 鄭維城曰: "察納嘉言, 乃遇災修省之道。 金徽所陳之言甚是, 而竟靳酬酢, 恐有妨於言路也。" 上又不答。
【史臣曰: "恢言路輔君德, 大臣之責也。 上於諸宮家事, 尤不從諫, 金徽所言, 可謂得職, 而默然不答。 爲大臣者, 旣發其端, 未能因其闕失, 而格正之, 可勝惜哉。"】
鄭太和曰: "湖南納米免賤寺婢事, 曾有登對時稟定之敎, 故敢稟耳。" 復陽曰: "近來外議, 皆以失信爲慮矣。" 上曰: "然使本道還給渠所納之米。 如或用盡, 則代給他米, 亦何妨乎。" 復陽曰: "免役則依前稟定施行, 除出所納米若干斛, 還給何如。" 太和與鄭致和齊聲曰: "此事甚不當。" 上曰: "依前稟定處之。" 復陽曰: "初旣約以免賤, 到今不許, 恐爲失信之歸。 米可失, 信不可失。" 太和曰: "使道臣問其情願, 或免役或給其米可也。" 上曰唯唯。 太和又曰: "自上卽位後, 胎封石物, 卽當加設, 而臣等未諳古事, 尙未擧行, 誠是欠典也。" 上曰: "胎峰加設石物, 乃古規耶?" 太和曰: "明宗朝, 有遣官修理之擧, 今亦宜令該曹, 考例擧行。" 上曰: "待秋成爲之。" 李浣曰: "北路峰熢, 每患斷絶, 蓋有磨天等四大嶺, 山高雲暗而然也。" 金佐明曰: "以臣所聞, 淮陽、金城兩邑間, 有疊巚撑天, 雲霧恒不開, 烽火之絶, 實由於此也。" 上曰: "烽燧如此, 非細慮也。 詳察變通事, 分付兩道監司。"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3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농업-전제(田制) / 역사-편사(編史) / 신분-천인(賤人) / 군사-통신(通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