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술의 일과 변방의 경계를 정할 것에 대한 수찬 민유중의 상소문
수찬 민유중(閔維重)이 밀소(密疏)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이시술(李時術)이 죄도 없이 죽게 된 것이야말로 상하 모두가 가슴 아파하고 애달프게 여기는 일입니다. 성상께서 지성을 다하며 애처롭게 여기신 마음은 타인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신하들이 왕복하며 쟁론하였고 보면 저들이 들어줄 만도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잗달한 일이 의외에 생겨 갖가지로 공갈을 치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형세에 눌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교외(郊外)에 직접 임하시어 전송할 때에 이 일을 언급하며 은근하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신다면, 자기 나라에 돌아가 보고할 때 우리에게 보탬이 되는 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파수(把守) 지역 외에는 우리 경내(境內)라 할 것인데, 의주부(義州府)의 백성들이 오직 도중(島中)에서만 꼴과 나무를 해 오는 실정이고 보면, 아무리 금령(禁令)을 다시 밝혀도 그 일을 막아 근절시키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중강(中江)에 파수를 옮겨 설치하고 피차 한계선을 분명히 하여 간악한 백성들이 넘나들지 못하게 한다면, 훗날 또한 저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따로 글 하나를 작성해 사신의 행차 편에 부쳐서 곡절을 낱낱이 개진하게 하는 동시에 개설(改設)할 것을 청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경작하는 것과 관련된 한 조목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숨긴들 저들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니, 이번에 실상 그대로 개진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하였다. 소를 들인 뒤 오래도록 내리지 않다가 어느날 대신을 인견하면서 꺼내 보여주었는데, 대신이 읽고 나서 비밀로 할 것을 청했기 때문에 안에 놔두고 내리지 않았다.
삼가 살피건대, 변방을 지키는 임무야말로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조금이라도 살피지 못할 경우 환란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부(灣府)의 신장(訊杖)이 어찌 꼭 변경의 버드나무가지 역할을 한다고야 하겠는가마는,089) 이시술(李時術)이 경솔하게 제사(題辭)090) 를 발급해 주었다가 끝내 죄망(罪網)에 걸려들어 이 때문에 죽게까지 되었으니, 참으로 원통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죄의 경중(輕重)이 어떻든 간에 일단 잘못을 저질렀고 보면 설령 불행하게 된다 하더라도 권대덕(權大德)의 사건 때와 무슨 큰 차이가 있다 하겠는가.
그런데 백성이 초목을 꺾은 죄 정도를 가지고 변방 수령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은 저네들도 필시 하지 않을 것인데, 공경(公卿) 이하가 너무도 지나치게 애석해 하고 너무도 심하게 놀란 나머지 황급하게 굴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군상(君上)이 친림(親臨)하여 능욕을 당하게 되는 점은 생각할 겨를도 갖지 못한 채 오직 시술을 구제하는 것만을 일대 능사(能事)로 여기고는 1품직의 중신(重臣)을 강등시켜 부사(副使)로 충원하기까지 하였으니, 어쩌면 이렇게도 사리가 뒤바뀌었단 말인가.
정치화(鄭致和)가 ‘정말 다행이다.’고 한 말이 매우 촌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그런 행동은 시의(時議)를 염려한 나머지 비용을 아낄 엄두는 아예 내지 못했던 데에서 발로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붓을 잡은 신하는 ‘어째서 구준(寇準)이 조이용(曹利用)을 책망했던 것091) 처럼 하지 못했단 말인가.’라고까지 하며 치화를 심각하게 꾸짖었다. 과연 우리와 저들의 관계가 송(宋)과 요(遼)의 관계에 서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것은 아동의 견해와 다름이 없으니, 더욱 가소롭기만 하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3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야(野)
- [註 089]만부(灣府)의 신장(訊杖)이 어찌 꼭 변경의 버드나무가지 역할을 한다고야 하겠는가마는, : 아무리 엄하게 다스려도 국경을 넘지 못하게 백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으리라는 의미임. 만부는 의주부(義州府)의 별칭. 버드나무가지란 국경의 울타리란 뜻으로 쓰인 것인데, 《시경(詩經)》 제풍(齊風) 동방미명장(東方未明章)의 "버드나무가지 꺾어 채마밭 울타리를 삼으니 못된 사람도 절로 두려워하네.[折柳樊圃 狂夫罌罌]"에서 나온 말임.
- [註 090]
제사(題辭) : 관공서의 지령문.- [註 091]
구준(寇準)이 조이용(曹利用)을 책망했던 것 : 비용을 아껴야 한다는 뜻임. 당시 정치화는 호조 판서였음. 송 진종(宋眞宗) 때 거란이 침입하자 황제가 사신으로 가게 된 조이용에게 말하기를 "요구량이 백만 냥 이하면 모두 들어주어라" 하였는데, 구준이 그를 장막 안으로 불러 말하기를 "아무리 황제께서 그렇게 말씀했다 하더라도 그대는 30만 냥 이상은 허락치 말라. 30만 냥을 초과하면 내가 목을 베겠다."고 한 고사. 그뒤 과연 조이용은 30만 냥으로 화친을 맺고 돌아왔다.《송사(宋史)》 권281 구준열전(寇準列傳).○修撰閔維重上密疏略曰:
李時術之無罪就死, 上下之所共傷憐也。 聖上至誠惻怛, 有足感物, 諸臣往復論說, 庶幾見聽。 而枝節橫生, 恐喝多端, 形屈勢壓, 不得自由。 然郊外親臨送行之時, 語及此事, 托以懃懇, 則歸報其國, 必有所益。
又曰:
把守之外, 係是我境, 而灣民刈草折薪, 惟島中是賴, 雖申禁令, 恐難防絶。 必須因此期會, 移設把守於中江, 使彼此界限分明, 奸民不得踰閑, 他日亦可有辭於彼矣。 臣意宜別搆一文, 付諸使行, 備陳曲折, 仍請改設。 至於耕作一款, 攷之故實, 其來已久, 似不必固諱。 雖諱之, 彼無不知之理, 今者直陳實狀, 恐無所妨。
疏入久未下, 一日引見出示大臣, 大臣讀訖, 請秘之, 故留中不下。
【謹按守邊之任, 難矣哉。 毫釐不察, 或至召患, 可不愼歟。 灣府訊杖, 豈必資於越邊之柳, 而時術輕易許題, 終罹罪罟, 因此至死, 固甚冤矣。 然輕重間, 旣有所失, 設或不幸, 與權大德事, 何至大異。 且以折草木之罪, 至於僇殺邊守, 彼亦必不爲也, 而公卿以下, 愛惜太過, 驚動太甚, 遑遑汲汲不暇念君上之親臨見陵, 唯以救濟時術, 爲一大能事, 至以一品重臣, 降充副使, 一何事理之顚倒也。 鄭致和誠爲多幸之言, 雖甚鄙野, 亦出於顧念時議, 不遑惜費。 而伊時秉筆之臣, 至以何不如寇準之責曺利用, 致深責於致和。 我之於彼, 果以宋之待遼者相待耶? 此無異兒童之見, 尤可哂也。】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3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외교-야(野)
- [註 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