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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5권, 현종 3년 5월 23일 을미 1번째기사 1662년 청 강희(康熙) 1년

어제 관소에 가서 정해진 의논이 어떠한가를 허적에게 하문하다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희정당(熙政堂)에서 인견하였다. 상이 허적에게 이르기를,

"어제 관소(館所)에 가서 어떻게 의논해 정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이일선은 수면 중이기에 만나보지 못하고, 단지 김대헌(金大獻)만 불러 그에게 말하기를 ‘「금지 구역인데, 알고서도 건너 보냈다.[禁地知而越送]」는 여섯 글자를 문장에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이시술(李時術)의 아들 이세장(李世長)이 그 글자를 고치려고 애걸해 마지 않는데, 그대가 주선해 준다면 반드시 후히 보답하겠다.’ 하니, 대헌이 말하기를 ‘한번 시도해 보겠는데, 초피(貂皮) 2백 령(令)을 준비해 오도록 하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와 수작하다 보니 날이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는데, 일선이 신들에게 말을 전해 오기를 ‘반드시 입이 닳도록 쟁집(爭執)해 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들어가 칙사를 만났더니, 칙사가 말하기를 ‘중강(中江) 파수에 관한 일은 예로부터 그러했다는 등의 말을 속히 삭제해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그것이야말로 시술이 공초(供招)한 말인데, 어떻게 삭제할 수 있는가.’ 하자, 부사(副使)가 힐책하면서 말하기를, ‘이런 것은 병판의 독자적인 견해로 될 일이 아니니, 급히 조정에 품하여 회보하도록 하라.’ 하였으므로 신이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몇 군데나 고쳤는가?"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어제 김대헌에게 1백 금(金)을 주겠다고 했더니, 비로소 주선해 준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정태화(鄭太和)가 아뢰기를,

"‘금지 구역인데, 알고서도 건너 보냈다.[禁地知而越送]’는 말을 ‘금지 구역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국경을 범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知其禁地而致此越犯]’고 고쳤는데, 이렇게 되면 글 뜻이 조금 달라집니다. 이것은 대헌의 공이라 할 것입니다."

하고, 허적이 아뢰기를,

"칙사가 신에게 묻기를 ‘문서는 완료되었는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말한 대로 모두 고쳤다. 다만 시술을 논한 죄는 곧 교죄(絞罪)이고 국경을 범한 자들의 죄는 곧 참죄(斬罪)인데, 시술의 이름을 맨 처음에 올려 놓으려 하는 것은 무슨 의도에서인가?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죄명(罪名)의 경중에 따라 순서를 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진다.’ 하였더니, 칙사가 말하기를 ‘참죄와 교죄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고칠 필요가 없다.’ 하였는데, 신이 돌아오는 것이 급해서 미처 굳이 쟁론하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신임 의주 부윤(義州府尹)으로 하여금 역시 중강(中江)에 파수를 본래 설치했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자, 허적이 아뢰기를,

"안 됩니다. 만약 의주에 물어볼 경우 필시 겁을 먹어 뇌물을 많이 쓸 것이니 보탬이 되는 일은 없이 재물만 허비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그가 일단 ‘조정에 가서 품(稟)하고 회보하라.’고 하였는데 어찌 모르겠다고 답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정의 체면으로 보아서도 시술에게 죄를 떠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고, 원두표(元斗杓)가 아뢰기를,

"조정의 뜻이 이와 같다면 속히 회보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태화가 아뢰기를,

"금지(禁地)에 관한 한 대목에 대해 이미 문장을 바꿔서 작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파수(把守)를 설치한 대목에 대해서 또한 ‘예로부터 그러하였다.’는 문자로 완결짓게 된다면, 시술의 죄가 전에 비해 헐해질 듯합니다."

하고, 허적이 아뢰기를,

"당초 사문(査問)할 때 조정에서도 ‘예로부터 그러하였다.’는 뜻을 말하였으니, 지금 어떻게 중간에 말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혹 들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전에 했던 대로 그 말을 반드시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였다. 허적김수항(金壽恒)이 먼저 하직하고 물러나가 관소(館所)로 향하려 할 때, 상이 허적에게 이르기를,

"경은 속히 관소에 가서 이일선(李一善)에게 말하기를 ‘그런 정상을 알았다.[知情]’는 지자(知字)를 꼭 고치고 싶은데 칙사가 어렵게 여기고 있다. 네가 주선해 준다면 그런 다행이 어디 있겠는가.’ 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지금 다시 쟁집(爭執)해도 끝내 들어주지 않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하니, 허적이 대답하기를,

"신이 어찌 감히 힘을 다해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정유성(鄭維城)이 나아가 아뢰기를,

"신이 동도(東道)의 제릉(諸陵)을 봉심(奉審)했는데 무너진 곳이 상당히 넓어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장마가 아직 그치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개축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태화가 아뢰기를,

"그렇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찌 장마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는가."

하였다. 두표가 아뢰기를,

"신들의 생각에는 8월도 너무 가까울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8월까지 기다려 봤다가 공사를 시작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3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외교-야(野)

    ○乙未/引見大臣及備局諸臣于熙政堂。 上謂許積曰: "昨往館所, 何以議定。" 對曰: "一善着睡, 不得相見, 只招金大獻謂曰: ‘「禁地知而越送」 六字, 措語甚重。 時術之子世長, 必欲改之, 哀乞不已, 汝若周旋, 必當厚報。’ 大獻曰: ‘且試圖之, 可備二百令貂皮來。’ 酬酢之際, 日已向暮, 俄而一善送言于臣等曰: ‘必須苦口爭之。’ 臣入見勑使, 則曰: ‘中江把守, 自古而然等語, 宜速刪去可也。’ 臣答曰: ‘此乃時術之供辭, 何可刪也。’ 副使詰責之, 仍曰: ‘如此則非兵判之獨見, 急稟朝廷, 而回報’ 云。 臣故回來。" 上曰: "幾處改之乎?" 曰: "昨許大獻一百金, 始得周旋之語矣。" 鄭太和曰: "禁地知而越送, 改以知其禁地, 而致此越犯, 文意稍異。 此則大獻之功也。" 曰: "勑使問臣以 ‘文書完了與否。’ 臣答以: ‘盡依所言改之。 但時術所論之罪, 乃絞罪也, 犯越諸漢之罪, 乃斬罪也, 而欲使時術名, 着於上頭者, 何意耶? 吾等之意, 不可不以罪名輕重, 定其次第也。’ 勑使曰: ‘斬與絞何以異哉, 不須改之。’ 臣急於回來, 未及固爭矣。" 太和曰: "使新義州府尹, 亦言把守之本設於中江何如?" 曰: "不可。 若問於義州, 則必生驚刼, 多用賂物, 無益徒費財耳。" 上曰: "卿言是也。" 太和曰: "渠旣曰往稟朝廷, 而回報云, 豈可以不知答之。 朝廷體面, 亦不當歸罪於時術也。" 元斗杓曰: "廷意如此, 必須速爲回報。" 太和曰: "禁地一款, 旣得變文, 把守之設, 亦以自古而然, 完定則時術之罪, 比前似歇矣。" 曰: "當初査問時, 朝廷亦言自古而然之意, 今豈中變。 雖或不聽, 亦當必守前語。" 上曰然。 壽恒先辭退出, 將詣館所, 上謂曰: "卿速往館所, 言於一善曰: ‘知情之知字, 必欲改之, 勑使持難。 汝若周旋, 何幸如之。’" 又曰: "今更爭執, 終不回聽, 則奈何?" 對曰: "臣敢不竭力圖之。" 鄭維城進曰: "臣奉審東道諸陵, 崩頹處頗闊, 極可驚駭。 然水潦未霽, 今難改築。" 太和曰然。 上曰: "何可等待潦霽也。" 斗杓曰: "臣等之意, 八月亦似太近。" 上曰: "然則待八月始役。"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32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