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술을 구제할 계책을 의논하다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삼공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상이 허적에게 이르기를,
"칙사가 뭐라고 공갈하는 말을 하던가?"
하니, 허적이 대답하기를,
"그가 바로 경작하는 것과 관련된 한 조목을 제기하면서 말하기를 ‘이 문장을 보건대, 강 건너편에서 경작하는 일이 예로부터 있어 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파수(把守)를 한다고 하면서 거꾸로 경작을 하도록 할 리가 있겠는가. 이 점은 본국에 죄가 있다. 이시술(李時術)을 조사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이런 조사는 할 필요도 없으니, 그만두고 돌아가 본국의 죄를 황제에게 고하겠다. 그러면 사사(査使)가 다시 나오거나 본국 대신이 들어가 변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술 한 사람을 위해 주려 하다가 국가에 일이 발생하게 하면 되겠는가. 내일 다시 조사해야 하겠다.’ 하고, 또 말하기를, ‘시술이 공초(供招)한 말이 어찌 이렇게도 번다한가. 그리고 사문할 때 듣지 못했던 말도 많이 있다. 시술에게는 죄가 셋이 있다. 인문(印文)을 발급해 준 것이 첫째 죄이고, 파수하는 장수에게 금하지 말도록 분부한 것이 둘째 죄이고, 처음에 섬 이름을 구별해 주지도 않고 보낸 것이 셋째 죄이다. 시술은 반드시 이 세 가지 죄를 스스로 담당해야 할 것인데, 이를 자복(自服)한 것으로 결어(結語)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앞서 의주(義州)에 사는 박용업(朴龍業) 등이 압강(鴨江) 건너편에서 벌목(伐木)하겠다고 부윤 이시술에게 정소(呈訴)하자, 시술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벌목을 허락하였는데, 용업이 청(淸)나라 사람에게 붙잡혔다. 이 때문에 사사(査使)가 나와 협박을 많이 하였는데, 일선 역시 자복(自服)했다는 것으로 결어를 작성케 하여 칙사의 뜻을 맞춰주려 하였다. 그래서 허적과 김수항(金壽恒)이 날마다 관소(館所)를 왕래했으나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 돌아와서 사정을 아뢴 것이었다. 상이 이르기를,
"아, 이것은 내 잘못이다. 당초 사문할 때 내가 온 힘을 기울여 구제해 주었는데 필시 그가 이 때문에 간계를 부리는 것일 것이다."
하고, 또 태화에게 이르기를,
"저들이 경계(境界)를 구실로 삼아 말하는 것은 필시 ‘경작’에 관한 한 조목을 빼버리려고 하는 것인데, 장차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그것이 중요한 대목의 말이긴 합니다만, 저들이 국가에 화를 떠넘기려 할 경우 시술에게도 해가 돌아갈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럴 것이다."
하였다. 허적이 아뢰기를,
"경작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시술에게 힘이 되는 말인데, 지금 빼버릴 경우 필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질 것이니, 정말 애처롭습니다."
하자, 수항이 아뢰기를,
"허적의 말이 맞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들이 말을 잘하여 변명토록 하라. 그런데 저들의 노여움만 돋구는 결과가 된다면 도리어 해가 될 것이다."
하자, 원두표(元斗杓)가 아뢰기를,
"외부 사람들은 저들의 마음을 모르고 입으로 다투려고만 하는데, 이는 시술에게도 보탬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에도 화를 끼치는 일입니다."
하였다. 수항이 입시한 신하들에게 두루 물어보기를 청하였는데, 여러 재신(宰臣) 모두가 그 대목을 삭제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삭제하라."
하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부사(副使)를 정하는 의논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는데, 신의 생각에는, 허적이 먼저 자문(咨文)을 가지고 들어가서 전적으로 시술을 구하는 뜻을 보여주고, 신은 옛 규례대로 부사의 직함을 띠고 들어가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고, 허적이 아뢰기를,
"신은 시술이 아무 죄도 없이 죽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감히 부사에 끼어 가려고 하는 것인데,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조정에는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만약 신만 따로 먼저 떠난다면 사체가 타당치 못할 뿐만 아니라 뒷날의 폐단도 있게 될 것입니다."
하고, 두표가 아뢰기를,
"문자로 이미 드러내 밝힌 말이 없는 상태에서 허적마저 가지 않는다면 그를 살릴 길이 필시 없을 것입니다. 허적의 관질(官秩)이 높긴 하지만 부사로 충원하여 들여보내더라도 저들은 필시 혐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허적을 부사로 정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허적이 김좌명(金佐明)과 함께 주문(奏文)을 짓게 해 주기를 청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31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上御熙政堂, 引見三公及備局諸臣。 上謂許積曰: "勑使有何恐喝之言也。" 積對曰: "彼乃提起耕作一款, 而曰觀此文辭, 則越邊耕作, 稱以自古有之。 豈有把守, 而反爲耕作之理乎。 此則罪在本國。 何時術之足問。 如此査事, 不必爲之, 當委以還去, 以本國罪, 告於皇帝。 則或査使出來, 或本國大臣入往卞明。 而然爲一時術, 生事於國家可乎? 明當更査云。 且曰: ‘時術供辭, 何如是太多, 而亦多査問時所未聞之語矣。’ 時術之罪有三。 成給印文, 罪一也, 把守將處, 分付勿禁, 罪二也, 初不區別島名, 而送之, 罪三也。 時術必以三罪自當, 以遲晩爲結語可也云。" 先是, 義州人朴龍業等, 以伐木於鴨江越邊事, 呈訴於府尹李時術, 時術泛然許斫, 龍業爲淸人所捕得, 以此査使出來, 多所脅迫, 一善亦欲遲晩結語, 以中勅使之意。 許積、金壽恒日往來館所, 而不能回, 還奏事狀。 上曰: "嗟乎, 是予之過也。 當初査問時, 予救之甚力, 彼必因此, 而生奸計也。" 又謂太和曰: "彼以境界爲執言, 必欲擬去耕作一款, 將奈之何?" 太和曰: "雖是緊語, 若嫁禍於國家, 則於時術, 亦有害矣。" 上曰然。 積曰: "耕作乃時術得力之語, 今若撥去, 必陷不測之地, 誠可矜惻。" 壽恒曰: "積之言足也。" 上曰: "卿輩善辭卞之可也。 而徒增彼怒, 則反有害矣。" 斗杓曰: "外人不知彼情, 欲以口舌爭之, 非但無益於時術, 亦且貽禍於國家矣。" 壽恒請遍問入侍諸臣, 諸宰皆請刪去, 上曰, 然則刪之。 太和曰: "副使之議, 時未完定, 臣意則許積先齎咨入往, 以示專救時術之意, 臣則依前規帶副使入去何如。" 積曰: "臣愍時術無罪就死, 敢欲充副价而去, 事雖不成, 俾朝廷無所悔也。 今若別作先行, 事體不當, 且關後弊。" 斗杓曰: "文字旣無發明之語, 積又不去, 則必無生道。 積官秩雖高, 充副价入送, 彼必不以爲嫌也。" 上曰: "許積定送副使。" 積請與金佐明同撰奏文, 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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