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현종실록5권, 현종 3년 5월 16일 무자 1번째기사 1662년 청 강희(康熙) 1년

남별궁 서연청에 친히 거둥하여 칙사와 함께 이시술 등을 사문하다

상이 남별궁(南別宮) 서연청(西宴廳)에 친히 거둥하여 칙사와 함께 사문(査問)하는 일을 행하였다. 영상 정태화(鄭太和), 좌상 원두표(元斗杓), 판의금 허적(許積), 지의금 정치화(鄭致和), 형판 조계원(趙啓遠) 및 6승지가 입시하였다. 상이 칙사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태화가 나아가 아뢰기를,

"사문하는 일을 칙사에게 물은 다음에 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자,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칙사에게 묻게 하였다. 칙사가 말하기를,

"이시술(李時術)부터 먼저 사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시술을 계단 아래로 잡아들였다. 태화가 아뢰기를,

"죄안(罪案)을 문자로 통할 수 없으니, 언어로 전달해야 하겠습니다."

하자, 상이 말하기를,

"자문(咨文) 내용대로 문목(問目)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칙사가 말하기를,

"귀국에서 묻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판의금 허적, 형조 판서 조계원시술에게 묻기를,

"너의 부(府)의 백성들이 몰래 상국(上國)의 지방으로 넘어들어가 자기들끼리 벌목(伐木)을 했는데, 네가 첩문(帖文)을 발급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니, 시술이 말하기를,

"보통 때 방금(防禁)을 무척 엄히하여, 압강(鴨江) 변에 여덟 곳이나 금소(禁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강중(江中)의 3개 도서(島嶼)는 곧 우리 나라의 지계(地界)로서 예로부터 백성들이 개간하여 경작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보통 때 늘 단속하면서 일을 내지 말도록 하였는데, 이번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함부로 대금(大禁)을 범하였습니다. 그런 일을 알고서 금하지 않는 것도 감히 못할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라고 첩문을 발급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당초 백성이 정장(呈狀)한 것과 그에 따른 제사(題辭)076) 를 자세히 조사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일선(李一善)이 칙사의 말로 묻기를,

"소위 여덟 곳 외에는 상국의 지방에 범금(犯禁)한 곳이 없는가?"

하니, 시술이 대답하기를,

"중강(中江)의 동쪽은 우리 나라의 지경(地境)이고 그 서쪽이 곧 상국의 경계인데, 도서는 상국의 경계를 범한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일선이 말하기를,

"시술이 ‘중강 건너편에는 파수하는 곳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들이 모를 일입니다. 지금 삼공과 육경이 모두 모여 있는데, 다들 압강(鴨江)이 한계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하니, 상이 허적으로 하여금 일선에게 말하게 하기를,

"상국의 지방에도 도서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냥 범범하게 ‘도중(島中)’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경솔하게 벌목을 허락했단 말입니까. 이런 내용으로 시술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자, 일선이 칙사의 말로 대답하기를,

"국왕께서 물어보고 싶으시다면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시술이 공초(供招)한 것을 보면, 상국의 지방에 섬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했고, 중강에는 파수가 없는데 아랫것들이 자기들끼리 국경을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모두가 간특하게 속이는 말이니, 사실대로 공초하라는 뜻으로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허적치화일선과 함께 그에게 가서 물었는데, 시술이 여전히 세 차례에 걸쳐 ‘그런 줄 몰라 살피지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일선이 또 말하기를,

"첩문을 발급해 줄 때 상관(上官)에게 보고하지 않았는가?"

하니, 시술이 말하기를,

"매우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상관에게는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하자, 일선이 이에 칙사의 뜻으로 단안을 내리기를,

"그런 줄 알고 벌목을 허락했는지 물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원통하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살피지 못한 한 조목에 대해서는 이미 자백하였습니다. 시술은 내보내고 월경인(越境人)들을 불러들여 물어보십시요."

하였다. 이에 국경을 넘어간 2인을 불러들여 물어보았는데, 2인의 대답도 시술이 말한 것과 같았다. 일선이 말하기를,

"일단 금처(禁處)에서 제외되는 곳이라면, 자기들끼리 사사로이 농사를 짓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이것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오만, 하여튼 그릇된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여 경작해온 일은 역시 매우 잘못된 일이었소."

하였다. 일선이 또 말하기를,

"정장(呈狀)한 내용에 나오는 이말생(李末生)이라는 자가 유독 이번 사문에 빠졌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니, 2인이 말하기를,

"말생은 정장하고나서 제사(題辭)를 받은 뒤에 갑자기 병세가 중해져 처음부터 같이 가지 못했습니다."

하였는데, 말생에게 받은 공초 내용 역시 이와 같았다. 일선이 말하기를,

"공초를 받는 일은 이제 끝났습니다."

하였다. 상이 나가 소차(小次)에 머물렀다가 조금 뒤에 다시 칙사를 만나 다례(茶禮)를 행하고 일선 이하 통관(通官)들에게도 모두 차를 주도록 명하였다. 일선이 말하기를,

"이제는 시술의 죄안(罪案)을 속히 의논해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좌우를 물리치고 삼공 및 병판 허적과 형판 조계원만 남아 있도록 한 뒤 의논해 정하였는데, 사신(史臣)도 이에 관한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30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외교-야(野) / 농업(農業)

  • [註 076]
    제사(題辭) : 관아의 판결이나 지령.

○戊子/上親幸南別宮西宴廳, 與勑使行査事。 領相鄭太和、左相元斗杓、右相鄭維城、判義禁許積、知義禁鄭致和、刑判趙啓遠及六承旨入侍。 上與勑使行茶禮。 太和進曰: "査事問於勑使後, 行之宜矣。" 遂令譯官, 問于勑使, 勑使曰: "李時術爲先査問可也。" 於是, 拿致時術於階下。 太和曰: "罪案不可以文字通之, 以言語傳之可矣。" 上曰: "以咨文辭意爲問目如何?" 勑使曰: "自貴國問之爲當。" 判義禁許積、刑曹判書趙啓遠, 問於時術曰: "汝府下人, 潛越上國地方, 私自伐木, 而汝成給帖文云。 是何故耶?" 時術曰: "常時防禁極嚴, 鴨江之邊, 有八處禁所。 而江中三島, 乃我國地界也, 自古民人, 多有耕墾處。 猶且尋常戒飭, 毋致生事, 而今者愚蠢之民, 妄觸大禁。 知而不禁, 且不敢爲, 豈有成給帖文之理乎? 若詳考當初民狀題辭, 則可知其冤枉矣。" 一善以勑使言問曰: "所謂八處外, 更無上國地方犯禁處乎?" 時術答曰: "中國之東, 乃我東地境, 其西卽上國境界, 而諸島則無上國犯境地矣。" 一善曰: "時術言中, 江越邊則無把守云, 此則俺等所未知也。 今三公六卿咸在, 皆以爲以鴨江爲限乎?" 上使許積言于一善曰。 上國地方, 亦多有島, 則奈何泛以島中二字, 輕許伐木乎? 以問時術如何?" 一善以勑使言答曰: "國王欲問, 亦或可矣。 而時術招內, 不知上國地方有島之說, 中江無把守, 下輩私自越境之說。 皆是奸詐, 以直招之意, 先問可也。" 致和一善偕往問之, 時術一向稱以不覺察, 如是者三。 一善又曰: "成給帖文之時, 不報於上官耶?" 時術曰: "事甚微細, 故不報於上官矣。" 一善乃以勑使意斷曰: "知情許伐事, 則終始稱冤, 未能致察一款, 旣已遲晩。 時術出送, 越境人等招入問之。" 於是, 犯越二人招入問之, 二人對如時術言。 一善曰: "旣是禁處之外, 則私自作農者何也?" 上曰: "此則非一朝一夕之故, 而因循耕種, 亦甚非矣。" 一善又曰: "呈狀中李末生者, 獨此漏網何也。" 二人曰: "末生則呈狀受題後, 身病猝重, 初不能偕往矣。" 捧招於末生, 所言如一。 一善曰: "捧招已畢。" 上出就小次, 有頃, 復見勑使行茶禮, 一善以下通官等, 竝命饋茶。 一善曰: "今則時術罪案, 可速議定。" 上辟左右, 只三公及兵判許積、刑判趙啓遠留待, 而議定焉, 史臣亦不得聞。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30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외교-야(野)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