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을 참배하고 돌곶에 이르러 활솜씨를 시험하다
상이 영릉(寧陵)을 참배하였다. 세 차례 주위를 돌며 봉심(奉審)하다가 섬돌 밑에 이르러 땅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렸다. 경기 감사 정지화(鄭知和)와 양주 목사(楊州牧使) 조귀석(趙龜錫)에게 호피(虎皮)와 궁전(弓箭)을 하사하였다. 이어 건원릉(健元陵)·현릉(顯陵)·목릉(穆陵)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돌곶[石串]에 이르러 금군(禁軍)의 활솜씨를 시험하였다. 상이 말을 달려 길 옆의 언덕으로 올라가 호상(胡床)에 걸터앉은 뒤, 금군으로 하여금 1 리(里)쯤 앞으로 말을 치달려 둔(屯)치게 하였다. 그리고 병조 판서 홍명하(洪命夏)를 불러 길 옆 좌우에 보수(步數)를 참작해서 각각 두 개의 지푸라기 인형을 세우게 한 뒤 방포(放砲)를 신호로 금군으로 하여금 말을 달리며 쏘게 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생각지도 못한 일을 갑자기 행하게 되자 시종신(侍從臣)과 위사(衛士)들까지 앞뒤로 엉겨 다시 질서를 찾아볼 수 없이 혼잡스럽게 되면서 땅에 나무를 깔고 앉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였으므로078) 모두 경악하였다. 이에 대사간 박장원(朴長遠)과 집의 이준구(李俊耉)가 아뢰기를,
"군병을 검열하는 것이 본디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만, 3년복을 이제 막 벗고 원침(園寢)에 성묘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다니,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몇 년 동안 잇따라 흉년이 들어 그야말로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고 닦아 나가야 할 때인데, 신의 생각으로는 이 일이 멋대로 즐기며 노는 것에 가까울 듯싶습니다."
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다. 대신과 옥당이 다시 진달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마침내 활을 쏘도록 명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날아 온 화살이 원두표(元斗杓)의 옷소매를 맞추면서 결국은 팔에 상처를 입히자 여러 신하들이 실색(失色)하였는데, 상이 내의(內醫)로 하여금 상처를 돌보게 하였다. 이때 금군의 사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유계가 중지할 것을 청하니, 상이 마침내 활쏘기를 중지시키도록 명하였다. 두 개의 화살을 적중시킨 문민선(文敏善) 등 7인에게는 직부전시(直赴殿試)를 내리고 한 개의 화살을 맞춘 89 인에게는 각각 면포를 하사하였다. 상을 받는 것을 보고는 미처 활을 쏘지못한 자들이 땅에 엎드려 활쏘기를 청하였으나, 상이 후일 마땅히 별도로 활솜씨를 시험하겠다고 유시하니, 마침내 물러들 나왔다. 장차 환궁하려 할 때에 우상은 뒤에 쳐져 뒤따라 오도록 명하였는데, 홍명하가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 듯하다.’고 아뢰어 우상이 이에 어가(御駕)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때 날이 이미 저물어가자 상이 이에 말을 급히 몰아 환궁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0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인사-선발(選拔) / 군사-병법(兵法) / 정론-간쟁(諫諍)
- [註 078]땅에 나무를 깔고 앉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였으므로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듯 스스럼없이 떠들어대며 즐거워하는 것을 말함. 중국 춘추 시대 때 초(楚)나라의 오거(伍擧)가 진(晋)나라로 망명하러 가다가 정(鄭)나라 교외에서 친구를 만나 나뭇 잎새를 깔고 앉아서 다시 초나라로 돌아갈 일을 의논했다는 "반형도고(班荊道故)"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친구와 길에서 만나 정답게 회포를 푸는 것을 의미함.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6년.
○甲戌/上謁寧陵, 奉審三周, 至砌下, 伏地涕泣。 賜京畿監司鄭知和、楊州牧使趙龜錫虎皮弓箭。 仍拜健元陵、顯、穆陵而還, 到石串, 試射禁軍。 上馳上路傍峻坂, 踞胡床, 令禁軍前馳一里許屯止。 召兵曹判書洪命夏, 命於道傍左右, 參酌步數, 各立二芻, 放砲爲號, 使禁軍馳射。 時事出不意, 侍從衛士, 前後雜沓, 無復倫次, 班荊而坐, 莫不驚愕。 於是, 大司諫朴長遠、執義李俊耉啓曰: "觀兵固是重事, 三年纔過, 哀省園寢, 而及其還路, 忽有此擧, 無乃不可乎? 況連歲饑荒, 正宜恐懼修省, 臣恐此事, 近於逸豫也。" 上不從。 大臣與玉堂, 更陳不應, 遂命發射。 俄而, 有飛矢中元斗杓衣袂, 遂傷其臂, 群臣失色, 上命內醫視傷處。 時禁軍射猶未已, 兪棨請止, 上遽命輟射。 二中者文敏善等七人, 賜直赴殿試, 一中者八十九人, 各賜綿布。 未及射者, 見其受賞, 伏地請射, 上諭以後當別爲試射, 遂退。 將還宮, 命右相落後追來, 洪命夏曰, 恐駭人聽, 右相乃隨駕。 時日已向暮, 上乃疾馳還宮。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0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인사-선발(選拔) / 군사-병법(兵法)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