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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4권, 현종 2년 6월 13일 경인 3번째기사 1661년 청 순치(順治) 18년

어사의 포계, 윤선도의 예에 관한 설 등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흥정당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홍명하가 아뢰기를,

"남두병(南斗柄)이 경기 수사(京畿水使)에서 총융사(摠戎使)로 이배(移拜)되었다가 대론(臺論)에 따라 본임(本任)을 체직당했는데, 수사도 함께 체차시킵니까?"

하니, 정태화(鄭太和)가 아뢰기를,

"대간의 탄핵이 그가 수사에 부적합하다고 해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영송(迎送)하는 폐단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수사는 그대로 제수하도록 하라."

하였다. 좌의정 심지원(沈之源)이 아뢰기를,

"심헌(沈櫶)이 안산 군수(安山郡守)에서 인천(仁川)으로 이배되었는데, 영송에 따른 폐단이 있으니 그대로 안산에 있게 하소서."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유계(兪棨)가 아뢰기를,

"사람을 관직에 임명하는 것은 도리상 순서를 따라야 하는 것인데, 지난번 어사의 포계(褒啓)에 따라 현감과 현령으로서 준직(準職)053) 에 제수되도록 승전(承傳)된 자가 많습니다. 아무리 격려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지나치게 외람된 일인 듯싶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죄지은 자에게 이미 나추(拿推)하는 벌까지 내렸으니, 잘 다스린 자에게 준직하는 상을 내리는 것이 뭐가 아깝겠는가."

하였다. 이어 신하들에게 하문하기를,

"지난번에 승지 조윤석(趙胤錫)이 ‘윤선도가 예설(禮說)을 지었다.’고 했는데, 경들도 들었는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송시열에게서 들었습니다."

하고, 유계가 아뢰기를,

"신은 그 전문(全文)을 얻어 보았는데, 말한 의도가 흉칙하고 험악하여 차마 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무엇을 말했던가?"

하니, 유계가 아뢰기를,

"그는 말하기를 ‘《의례(儀禮)》에서 말한 이른바 「서자승중 불위삼년(庶子承重不爲三年)」의 불자(不字)는 곧 역자(亦字)의 오자(誤字)이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의 단궁이 문(免)했다는 설과 자유(子游)가 최마(衰麻)를 입었다는 설을 내가 분명히 말하면, 송시열의 죄가 어찌 이 정도로 그치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음험하고 교묘하게 옥당의 차자를 헐뜯었는데, 차마 사람들이 정시(正視)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가(朝家)에서 이미 유배보내는 율(律)로 벌까지 주었는데, 그가 어찌 감히 그런단 말인가. 육진(六鎭) 중에서도 가장 먼곳으로 이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육진이 삼수(三水)에 비해서 멀긴 합니다만, 풍토는 삼수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저쪽 국경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청(淸)나라 차인(差人) 들이 또 왕래하곤 하니, 이런 흉악한 인간을 그곳에 옮겨 둘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위리(圍籬)는 어떤 것인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가시나무로 집을 두르고 구멍으로 밥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은상(李殷相)이 아뢰기를,

"윤선도가 죄를 받은 뒤에도 오히려 징계하고 두려워할 줄 모른 채 예를 의논한다고 핑계대면서 감히 요사스러운 말을 지어내고 있으니, 위리 안치(圍籬安置)를 명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초 사형에서 감하여 정배시킨 것만도 그에게는 그지없는 다행일텐데 아직도 뉘우쳐 깨닫지 못한 채 또 사악한 설을 지어내고 있으니, 현재의 배소에 위리 안치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은상이 또 조경을 멀리 유배보낼 것을 청하니, 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03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註 053]
    준직(準職) : 정3품 당하관.

○上御興政堂, 引見大臣及備局諸臣。 洪命夏曰: "南斗柄京畿水使, 移拜摠戎使, 因臺論見遞本任, 水使亦竝遞差乎?" 太和曰: "臺彈非以爲不合於水使也。 迎送之弊, 亦不可不念。" 上曰: "水使仍授可也。" 左議政沈之源以爲: "沈櫶安山郡守, 移拜仁川, 迎送有弊, 請仍安山。" 上可之。 兪棨曰: "官人之道, 循序可也, 而頃因御史褒啓, 縣監縣令, 得授準職承傳者多, 雖曰激勸, 事涉過濫矣。" 上曰: "罰旣至於拿推, 賞何惜於準職乎?" 仍問諸臣曰: "向者承旨趙胤錫言: ‘尹善道作禮說云,’ 卿等亦聞之乎?" 太和曰: "臣嘗聞於宋時烈矣。" 曰: "臣則得見其全文, 而語意凶險, 不忍畢見矣。" 上曰: "所言者何?" 曰: "渠以爲《儀禮》中所謂 「庶子承重不爲三年之不字」, 乃是亦字之誤, 又言《檀弓》子游衰之說, 吾若明言, 宋時烈之罪, 豈止於此云云。 且詆玉堂之箚, 極其陰巧, 令人不忍正視矣。" 上曰: "朝家旣施竄配之律, 則何敢乃爾。 移之六鎭最遠處何如。" 太和曰: "六鎭比三水雖遠, 風土則勝於三水。 且地近彼境, 淸差亦或往來, 如此凶人, 不可移置。" 上曰: "圍籬之狀如何?" 太和曰: "以棘遶屋, 而以竇傳食矣。" 李殷相曰: "善道被罪之後, 猶不懲懼, 假托議禮, 敢造妖言, 請命圍籬安置。" 上曰: "當初減死定配, 在渠爲莫大之幸, 尙不悔悟, 又造邪說, 仍其配所, 圍籬安置。" 殷相又請遠竄趙絅, 上不許。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303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