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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21권, 효종 10년 5월 4일 갑자 1번째기사 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상이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약방 도제조 원두표(元斗杓), 제조 홍명하(洪命夏), 도승지 조형(趙珩) 등이 대조전의 영외(楹外)에 입시하고 의관 유후성(柳後聖)·신가귀(申可貴) 등은 【이때 신가귀는 병으로 집에 있었는데 이날 병을 무릅쓰고 궐문(闕門) 밖에 나아가니, 드디어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먼저 탑전에 나아가 있었다. 상이 침을 맞는 것의 여부를 신가귀에게 하문하니 가귀가 대답하기를,

"종기의 독이 얼굴로 흘러내리면서 또한 농증(膿症)을 이루려 하고 있으니 반드시 침을 놓아 나쁜 피를 뽑아낸 연후에야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고, 유후성은 경솔하게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왕세자가 수라를 들고 난 뒤에 다시 침을 맞을 것을 의논하자고 극력 청하였으나 상이 물리쳤다. 신가귀에게 침을 잡으라고 명하고 이어 제조 한 사람을 입시하게 하라고 하니, 도제조 원두표가 먼저 전내(殿內)로 들어가고 제조 홍명하, 도승지 조형이 뒤따라 곧바로 들어갔다. 상이 침을 맞고 나서 침구멍으로 피가 나오니 상이 이르기를,

"가귀가 아니었더라면 병이 위태로울 뻔하였다."

하였다. 피가 계속 그치지 않고 솟아 나왔는데 이는 침이 혈락(血絡)을 범했기 때문이었다. 제조 이하에게 물러나가라고 명하고 나서 빨리 피를 멈추게 하는 약을 바르게 하였는데도 피가 그치지 않으니, 제조와 의관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의 증후가 점점 위급한 상황으로 치달으니, 약방에서 청심원(淸心元)과 독삼탕(獨參湯)을 올렸다. 백관들은 놀라서 황급하게 모두 합문(閤門) 밖에 모였는데, 이윽고 상이 삼공(三公)과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약방 제조를 부르라고 명하였다. 승지·사관(史官)과 제신(諸臣)들도 뒤따라 들어가 어상(御床) 아래 부복하였는데, 상은 이미 승하하였고 왕세자가 영외(楹外)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승하한 시간은 사시(巳時)에서 오시(午時) 사이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9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甲子/上昇遐于大造殿。 藥房都提調元斗杓、提調洪命夏、都承旨趙珩等入侍于大造殿楹外, 醫官柳後聖申可貴等, 【時可貴病在家, 是日力疾詣閤門外, 遂命入侍。】 先進於榻前。 上問受鍼當否於申可貴, 可貴對曰: "腫毒流注於面部, 亦將成膿, 必須受鍼出惡血, 然後可以收效矣", 柳後聖以爲: "不可輕試。" 王世子力請進水剌後, 更議受鍼, 上却之。 命可貴執鍼, 仍令提調一人入侍, 都提調元斗杓先入殿內, 提調洪命夏、都承旨趙珩追後直入。 上已受鍼, 血出鍼穴, 上曰: "微可貴, 病幾危矣。" 血湧不止, 蓋鍼犯血絡。 命提調以下退出, 促進血竭等藥以塗之, 猶不止, 提調及醫官等, 罔知所爲。 上候漸向危急, 藥房進淸心元獨參湯。 百官驚遑咸會于閤門外, 俄而上命召三公及宋時烈宋浚吉藥房提調、承旨、史官及諸臣, 卽趨入, 伏于御床下, 上已大漸, 王世子號擗於楹外。 時已午矣。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9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