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고 군포 거두는 일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고 이르기를,
"여러 대신의 의논은 모두 유계가 건의한 상소의 내용에 대하여 시행하기 곤란하다고 했는데, 경들의 의견도 전날의 말과 같은가?"
하니 영의정 심지원이 아뢰기를,
"군포 거두는 일을 이미 시행할 수 없다면 죽은 자에게 포목 거두는 폐단을 우선 없애고, 병조가 비축해 둔 것과 비변사가 관리하는 여정포(餘丁布)를 옮겨다 보태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고 좌의정 원두표는 아뢰기를,
"죽은 자에게 포목 거두는 일은 이미 극히 원통하고 괴로운 일이고 어린 아이에게 군포 거두는 일도 몹시 불쌍하고 측은합니다. 평상시라도 변통하는 거사가 없을 수 없는데, 더구나 이런 큰 흉년에는 여러 고을의 주린 백성들이 고루 혜택을 입어야 하는데도 유독 이런 유에만 구휼해 주는 은전이 없으니, 어찌 그것을 옳은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자를 대신할 대상을 정하지 못한 경우와 어린 아이에게 군포 거두는 경우는 서둘러 변통해야 하니, 우선 모든 도로 하여금 명백히 조사해서 그 감소되는 수량을 서울 안에 비축한 것으로 옮겨다 경비에 보충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죽은 군정이라면 조사해 내기가 어렵지 않지만 어린 아이에 있어서는 나이를 거짓으로 줄이는 폐단이 더러 있을 터이니, 반드시 우선 그 충정한 해를 참고하여야 허술하고 소홀한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뜻을 각 도에 분부하되, 당초에 아무리 어린 아이로 충당시켜 정했더라도 오늘날 조사해 낸 후에 죄로 삼지 않겠다는 뜻도 아울러 분부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병조 참지 유계가 아뢰기를,
"보병의 어린 아이는 이미 조사해 내는 일이 있었으니, 기병(騎兵)의 어린 아이는 어떻게 조처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한결같이 시행하라고 하였다. 심지원이 아뢰기를,
"어제 민응형이 북도 사람의 아이 버린 변괴를 탑전에서 아뢰었습니다. 일찍이 이미 본도(本道)에 공문을 보내 물어 보았더니, 원래부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다시 한번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다시 본도에 단단히 일러 경계하는 것이 좋겠다. 민응형이 기민을 구휼하는 한 가지 일로 정성스럽게 아뢰었으니, 이런 말을 안했더라도 내 어찌 잠시라도 잊겠는가. 바로 지금 보릿고개가 시급한데도 요사이 여러 도의 장계를 접하지 못한 지 오래되어 답답함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승지는 삼남(三南)의 감사에게 하유(下諭)하여 굶어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며 기민 구제의 시행 여부를 그들로 하여금 즉시 잇따라 계문하게 하라."
하자 대사헌 송준길이 아뢰기를,
"기내(畿內)의 백성들이 모두 ‘삼남에 대해서만 치우치게 더 보호해 구제하고 기내에는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매우 원망스럽게 여긴다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서울 안의 구휼도 의당 한결같이 시행하라."
하니 승지 이상진이 아뢰기를,
"지금 민간 생활의 곤란과 고통이 극에 달했습니다. 군포 거두는 일은 이제 변통해 주었으나, 신의 생각에는 군정이 실로 급하지만 전정(田政) 또한 늦출 수 없다고 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구휼(救恤) / 군사-군역(軍役)
○庚辰/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諸大臣之議, 皆以兪棨疏辭爲難行, 諸卿之意, 亦如前日之言歟?" 領議政沈之源曰: "收布之擧, 旣不可行, 則先除物故徵布之弊, 以兵曹所儲及備邊司所管餘丁布, 推移補用似當矣。" 左議政元斗杓曰: "徵布於物故之類, 已極冤苦, 而兒弱徵布, 亦甚矜惻。 雖在平日, 不可無變通之擧, 況此大無之年, 列邑飢民, 均蒙惠澤, 而獨於此類, 未有恤典, 豈其可乎? 如物故未代定及兒弱納布之類, 當汲汲變通, 先使諸道, 明白査出, 而其所減之數, 以京中所儲, 推移充用似當矣。 物故則査出不難, 而兒弱則不無減年欺詐之弊, 必須先考其充定之年, 然後可無踈漏之患矣。" 上曰: "以此分付于諸道, 而當初雖以兒弱充定, 到今査出後, 不罪之意, 亦宜分付兵曹。" 參知兪棨曰: "步兵兒弱, 旣有査出之擧, 則騎兵兒弱, 何以處之?" 上曰: "一體施行。" 之源曰: "昨日閔應亨以北道棄兒之變, 陳達於榻前。 曾已移文問于本道, 則答以元無是事云。 今又更問乎?" 上曰: "更加申飭本道可矣。 閔應亨以賑飢一事, 懇懇陳達, 雖非此言, 予豈暫忘。 目今春窮方急, 而近日久未見諸道狀本, 尤切鬱鬱。 承旨下諭于三南監司, 餓莩多少及賑救行否, 使之連續啓聞。" 大司憲宋浚吉曰: "畿甸之民, 皆以爲: ‘三南則偏加護恤, 而不及於畿甸’, 頗以爲怨云矣。" 上曰: "京中賑救, 亦宜一體行之。" 承旨李尙眞曰: "卽今民生之困苦極矣。 徵布之擧, 今雖變通, 而臣意則以爲: "軍政誠急, 田政亦不可緩也。"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6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구휼(救恤) / 군사-군역(軍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