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성균관 좨주 송준길이 사학의 규정을 정하여 개록하여 올리다
겸성균관 좨주(兼成均館祭酒) 송준길(宋浚吉)이 차자를 올리기를,
"지난번 예조의 계사(啓辭)로 인해서 사학(四學)의 규정을 신에게 자세히 살펴 헤아려 정하라고 분부하신 일에 대해서는, 이것이 대폭 바꾸는 작업은 아니라 하더라도 또한 신이 감히 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때 곧바로 소장을 올려 지관사(知館事)와 대사성 및 예조와 함께 회의하여 계품할 것을 요청했는데, 조정에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므로 지관사가 또 공무를 집행하지 못하다가 끝내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어 시일을 미루다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미구에 새로운 지관사의 차출은 기약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공무 집행을 기다리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신마저 사고가 생겨 이미 성명(成命)을 받들고도 오래도록 받들어 시행치 못한다면 실로 매우 황송하겠기에, 예조 판서 홍명하(洪命夏)와 동지관사 조형(趙珩), 대사성 이정기(李廷夔) 등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외방의 여러 의논들을 아울러 채택하여 네댓 조목을 정해서 뒷부분에 개록(開錄)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다시 더 참작하여 시행하시는 데 달렸을 뿐입니다."
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난해 사학 동재(四學東齋)의 원점(圓點)과 녹명(錄名) 및 1년에 24번 제술하는 규정이 우연한 뜻이 아닌데도 시행한 지 얼마 안 되어 폐단이 수없이 나왔으므로, 일찍이 경연관이 아뢴 바로 인해서 동재의 원점 찍는 일을 그만두라고 이미 분부하였다. 그리고 24번 제술하는 규정 또한 몹시 번거로워 매월 서로 경쟁시킬 뿐만 아니라 한갓 사습을 무너뜨리고 더럽힐 뿐이니, 지금 이 규정도 아울러 그만두게 하는 것이 마땅하되, 단지 정자(程子)의 ‘시험 보는 제도를 고쳐 과제를 부과하는 뜻’에 따라야 한다. 그리고 《대전(大典)》의 권장조(勸奬條)에 실린 내용을 모방하여 본학관(本學官)과 겸교수(兼敎授)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철마다 각각 한차례 학생을 모아 놓고 강송(講誦)한 사람 중 10명을 뽑고 【《소학》과 사서(四書)에서 각각 5명씩 뽑되, 혹은 《소학》과 사서 중 스스로 원하는 책을 따라서 찌를 뽑아 돌아앉아 외게 하고 문의(文義)가 관통하는 자를 위주로 한다. 그리고 사서는 네 철로 나누어 각기 한 가지 책을 외게 하는데 한꺼번에 모두 외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 준다. 그리고 강송에 뽑힌 사람이 기준 인원수에 못 미치더라도 구차히 수를 채우지 않는다.】 또 제술한 사람 5명을 【시(詩)나 부(賦), 그 밖의 문체를 때에 따라 출제하는데 네 철을 통하여 각 학에서 뽑힌 수효가 강송자 40명, 제술자 20명이 된다.】 선발한다. 연말에 관관(館官)과 학관(學官)이 태학에 합좌하여 사학에서 선발된 사람을 모아서 합강(合講)으로 16명을 【《소학》에서 8명과 사서에서 8명을 뽑는다.】 뽑고 합제(合製)로 8명을 뽑아 생원·진사과의 회시(會試)에 직부(直赴)토록 허락한다. 【외방에는 《소학》으로 강취하는 규정이 이미 일정한 방식이 있으므로, 이후에도 이 전례대로 하되 사서와 《소학》은 반반의 비율로 강취한다. 또 외방 공도회(公都會)의 제술에 있어서는 전례대로 계속 시행한다.】 그리고 《소학》을 고강하여 합격자에게 조흘첩(照訖帖)을 주는 규정을 잘 알려 주어 예전 양식을 따르지 말게 한다. 전 기간 한 달 동안 배운 글을 필수적으로 강경을 시작하되 사람마다 사서 중에서 찌를 뽑아 임강(臨講)시키고 충분히 엄하게 밝혀 반드시 글 뜻의 앞뒤를 환히 아는 자를 뽑아 비로소 녹명(錄名)을 허락하여 생원·진사과의 초시에 직부시킨다. 【일찍이 초시의 입격을 거친 사람은 물론 포함된다.】
○ 대사성과 겸좨주가 관학 유생(館學儒生)들과 자주 회강(會講)하여 그 재주와 품행이 가장 우수한 사람을 뽑아 학령(學令)에 의하여 매년 말마다 서계해서 등용한다.
○ 동몽 교관(童蒙敎官) 4원을 충분히 선택해서 더 뽑아 전에 설치했던 바와 합하면 8원이 되므로, 예조가 각각 2원씩 사부(四部)에 나누어 보내어 사대부와 서민의 자제를 물론하고 전부 교육시킨다. 전에 설치한 분교관(分敎官) 4원은 쓸모가 없을 듯하니 지금 마땅히 혁파해야 한다. 다만 삼강(三江)의 아동들은 교육받을 곳이 없으니, 그 곳의 훈장으로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분교관으로 2명을 차임해서 가르치게 한다.
○ 지난해 조정의 분부로 인하여 지방의 향촌이 각기 서당을 세우고 훈장을 두어 가르치니, 그 효과가 없지 않았는데 근래에는 도리어 허물어지니 한스럽다. 그러므로 지금 마땅히 전날의 사목을 따라 타일러 경계하고 시행하되, 그 훈장을 고을로 하여금 공론에 따라 뽑아 차임하고 관청에 고하기를 태학의 장의(掌議)의 예와 같이 하고 각 마을에 나눠 정해서 취학에 편리하게 한다. 관가에서도 편리에 따라 충분히 지원해 주고 수령은 공무 여가에 때때로 직접 찾아가 살피고 그 학도들을 고강한다. 또 감사 및 도사(都事), 교양관(敎養官)도 순행하는 때에 친히 차례로 방문하거나 향교나 서원에 학도들을 모이게 하여 고강하거나 제술을 시험하고, 만일 실제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자는 《대전》에 의해 그 스승에게는 호역(戶役)을 덜어 주고 학도에게는 헤아려 상을 베풀고, 그 성적이 미달하는 자는 회초리로 때려 경계한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참고하여 계문하되, 해당 스승은 승급하여 동몽 교관으로 삼거나 딴 직위에 제수해서 장려하는 도리를 보여야 한다.
예조가 이에 의거하여 시행하기를 청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17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丁丑/兼成均館祭酒宋浚吉上箚曰:
頃日因禮曹啓辭, 四學規制, 令臣看詳勘定者, 此雖非大段變革之擧, 而亦非臣所敢獨擅。 其時卽陳章疏, 請與知館事大司成及禮曹會議啓稟, 而緣朝家事故相仍, 知館事又不行公, 終至辭遞, 以致遷延至今。 卽者新知館差出, 雖有期, 而待其行公, 則想又未易。 日後臣亦有故, 旣承成命, 而久不奉行, 實甚惶悚, 玆與禮曹判書洪命夏同知館事趙珩大司成李廷夔通議, 兼採外間諸論, 定爲數條, 開錄于後, 唯在聖明更加參量而施行之矣。"
○頃年四學東齋圓點錄名及一年二十四巡製述之規, 意非偶然, 而行之未久, 弊端百出, 曾因筵臣所啓, 東齋圓點已令停罷。 而二十四巡製述之規, 亦甚煩屑, 不翅月使之爭, 徒令士習壞汚, 今宜竝罷此規, 只依程子 ‘改試爲課之義。’ 且倣《大典》勸奬條所載, 本學官及兼敎授, 每四時各一巡聚學生, 取講誦者十人, 【《小學》取五人, 《四書》取五人, 或《小學》、或《四書》, 從自願抽籤背誦, 以文義貫通者爲主。 而四書分四時, 各誦一書, 自願一時俱俱誦者聽。 講誦者如未准數, 不必苟充。】 又取製述者五人。 【或詩或賦或他文, 隨時出題, 通四時各學講誦者四十人, 製述者二十人。】 歲末館官與學官, 合坐於太學, 會四學所選者, 合講取十六人, 【《小學》取八人, 《四書》取八人。】 合製取八人, 許赴生進會試。 【外方《小學》講取之規, 已有定式, 今後亦依此例, 《四書》與《小學》, 參半講取。 外方公都會製述, 則依例仍存。】 且申明《小學》考講照訖之規, 勿循舊套。 必須前期一朔開講, 而每人四冊中, 抽籤臨講, 講問文義, 十分嚴明, 必取其通曉者, 始許錄名, 赴生進初試。 【曾經初試入格者勿論。】
○大司成及兼祭酒, 與館學儒生, 頻數會講, 取其才行最優者, 依學令, 每歲終, 書啓收用。
○童蒙敎官四員, 十分選擇加出, 竝前所設, 合爲八員, 禮曹分差各二員於四部, 勿論士夫凡民子弟, 一體訓誨。 前設分敎官四員, 似涉冗雜, 今宜革罷。 但三江童蒙, 無受學處, 擇其地可合訓長者, 差分敎官二人以訓之。
○頃年因朝家分付, 外方鄕村, 各建書堂, 各定訓長, 不無其效, 而近來還爲廢壞, 良可歎也。 今宜遵承前日事目, 申飭修擧, 而其訓長, 令其一鄕, 從公論擇差告官, 一如太學掌議之例, 而分定於各村, 以便就學。 官家十分隨便顧助, 守令公餘, 時時親自往審, 考講其學徒。 監司及都事敎養官, 亦於巡行時, 或親歷、或使聚會於鄕校書院, 考講或製述, 如有實效表著者, 依《大典》, 其師長量減戶役, 其學徒量施賞格, 其不能者施楚撻以警之。 其中最表著者, 則參詳啓聞, 其師長陞爲童蒙敎官, 或除他職, 以示勸奬之道。
禮曹請依此行之, 從之。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17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