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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21권, 효종 10년 2월 11일 임신 3번째기사 1659년 청 순치(順治) 16년

병조 참지 유계가 상소하여 군정의 폐단과 이에 대한 대책을 아뢰다

병조 참지 유계(兪棨)가 상소하기를,

"미천한 신의 분별없는 소행으로 몸소 자신을 해쳐 목숨을 보전할 가망이 없었는데, 외람되이 천지처럼 끝없는 성은을 입어 마치 추운 계곡에 봄이 다시 돌아오고 죽은 뼈에 새살이 돋아 살아나듯 하였습니다. 두서너 달 동안에 특별한 은총을 자주 입어 병조 참지의 지위에까지 이르러서, 조정의 논의에 참여하여 임금을 가깝게 모시고 옥음(玉音)을 직접 받들게 되니, 신은 참으로 황공하고 감격해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신이 이미 하루라도 관직에 있었다면 하루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도, 돌이켜 생각하니 실속 없고 소략하여 조그마한 도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신이 이 때문에 더욱더 두렵고 떨려 먹고 자는 것조차 모두 잊었습니다. 갑자기 변변치 못한 옅은 소견으로 등대(登對)하던 날에 말머리를 꺼냈으나 언사가 졸렬하여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고 속만 답답해서 밤새껏 한잠도 못 이루었습니다.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어 감히 이렇게 지난날 못다한 말을 대략 진술하여 삼가 전하의 밝으신 판단과 선택을 기다립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오늘날 군정(軍政)의 폐단이 백성을 괴롭히는 고질이 되니, 실로 눈물 나고 마음 아프게 할 만한 일들이 있으나, 신이 감히 일일이 아뢰어 전하의 마음을 거듭 아프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군포 징수만은 너무 무거워 백성의 피땀을 이미 다 짜낸데다 노인·약자·도망자·죽은 사람의 세금까지 탕감하지 않고 분담시켜 같은 문중의 겨레붙이나 이웃 마을 사람들이 아울러 혹독한 피해를 당하고 있으니, 이런 경우는 실로 고금 천하를 통해 봐도 일찍이 없었던 큰 폐단입니다. 만일 이 상태로 두고 폐단을 변통하지 않으면 2, 3 년 못 가서 나라 안엔 양정(良丁)이 남아 있지 않을 터이니, 아무리 백만 명의 이름만 실린 쓸데없는 장부가 있더라도 단지 백성의 원망과 분노만 쌓을 뿐이므로 결코 하루도 늦출 수 없는 다급한 바람입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흉년이 몹시 들어 떠돌아다니다 굶어 죽은 사람이 길에 널려 있는 실정이어서, 정부가 가난한 사람에게 곡식을 꾸어 주고 굶주린 사람을 구제하는 바에 있어서 궁극적인 대책을 쓰고 있는데도, 유독 군포 한 가지만은 세액을 줄이라는 분부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어진 정사를 시행하시는 데에 하나의 큰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속히 묘당에 분부하여 이 일을 충분히 상의해서 팔도 전역에 행회토록 하되, 무릇 군정(軍丁) 가운데 도망자·죽은 사람·노인·약자에게 군포 걷는 일은 전액 모두 면제해 주고, 보병이 응당 바쳐야 하는 베 두 필은 특별히 한 필을 면제해 주어 큰 은혜를 베풀고 두터운 신망을 확고히 세우소서. 그리하여 끊어지려 하는 백성의 목숨을 이어 주고 이미 흩어진 백성의 마음을 단단히 묶어 흩어지지 않게 한 뒤에야, 앞으로의 가지런히 바로잡는 일이 이것에 의하여 기초 지워져 국가의 명맥(命脈)이 유지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오늘날의 가장 급한 일이어서 조금도 늦출 수 없습니다. 지금 유사(有司)로 있는 자는 필시 군포가 갑자기 줄어들면 나라의 경비가 부족해지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주장하겠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대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합니다. 옛날부터 백성 없이 그 나라가 홀로 보존된 예가 없었는데, 설령 나라의 경비가 절반으로 줄어 생각보다 훨씬 곤란한 형편에 처할지언정 오히려 피폐한 백성들의 피땀을 모질게 짜내어 끝내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게까지는 차마 못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많은 데를 덜어 적은 데에 보태서 사물에 맞추어 고르게 베푸는 도리가 있으니, 꼭 시행해 볼 만하여 의심할 바가 없는데이겠습니까.

예전 조종조 때에는 사대부의 자제 및 서얼로서 장정이 된 남자는 출신의 귀천을 막론하고 각기 위(衛)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백성의 뜻이 안정되고 민역(民役)이 균등했습니다. 그러다 두서너 대 전부터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져 사람들이 제 한 몸 편한 것만 생각해서 사대부의 후예들은 여러 위(衛)에 이름을 다시 소속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사대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무리 궁벽한 시골의 한미한 집안의 서얼이라 하더라도 위(衛)에 이름이 한 번이라도 소속된 적이 있으면 하나같이 큰 수치와 모욕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른바 유청 제위(有廳諸衛)로 있는 사람은 모두 잡인과 천인 부류뿐이니, 조종조의 이전 제도가 온통 어그러져 문란해졌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역이 좁고 인민이 적어 아무리 군사를 양성하는 일에 온 국민이 총력을 다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해서 걱정일 텐데, 더군다나 그 적은 인구마저 유별로 구분하여 놀기만 하고 게으른 자가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을 차지하고 간신히 남아 있는 선량한 백성에게만 유독 군역을 부담시키고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땅과 백성이 적음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며,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상하가 편안하지 못함을 걱정하나니, 대체로 균등하면 가난하지 않고 화합하면 부족함을 걱정하지 않으며 편안하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바로 지금 정남(丁男)의 군역이 고르지 못함이 하나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무슨 방법으로 민중의 마음을 화합시켜 나라가 뒤엎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일체로 논의된 것은 ‘군적을 속히 말끔히 정돈하고, 나라 안의 모든 관리나 양반층을 예속시켜 조정의 옛 제도와 문물을 복구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그럴듯하지만 또한 불가불 변통해야 할 것이 있으니, 대체로 선비가 눈앞의 안락을 탐하고 편하게 지내는 데 길들어 자유를 속박당하지 않은 지 백년이 다 되었으므로 잘못된 습관이 이미 굳어졌습니다. 지금 만일 하루 아침에 당장 바로잡으려 하면 놀라 근심하고 원망하는 사세에 필시 이르게 될테니, 이 점을 실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저 양반들이 군적에 이름 올리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은 그 정군(正軍)이라는 명칭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성상께서 명쾌한 성지를 친히 내려 ‘똑같이 하늘이 낸 백성인데 문벌 있는 사람만 유독 편안함을 누려야 할 이치가 없고 줄어드는 양민의 장정만 일방적인 희생을 당하게 할 수 없는 실정이다.’라고 뼈저리게 더 깨우쳐 일러주소서. 위로는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에서부터 전함(前銜)과 생원·진사·유학(幼學)·품관·과거 시험 입격자·서얼로서 허통(許通)된 자에 이르기까지 일체 군역(軍役)에 합당하지 못한 부류로서 나이 60세 이하에서 아내가 있는 사람 이상은 무명베 1필을 바치도록 윤허하소서. 앞으로 군적에 관한 거사가 있더라도 그들을 영영 다시 여러 위에 소속시키지 말라고 분부하소서.

이 밖에 허통되지 못한 서얼 및 지방의 정원 외 교생(校生)과 정군(正軍)의 자손 등의 경우는 모록(冒錄)하여 베를 바치는 행위를 일체 허락하지 마소서. 중앙과 지방 사람들이 나라에서 하는 이 일의 시행 목적이 군정의 수효를 늘리는 데 있지 않고 군역을 고르게 하는 데에 있으며, 나라를 부유케 하는 데 있지 않고 화급한 일을 구제하는 데 있으며, 사족(士族)을 억지로 착취하는 데 있지 않고 군역 면제를 길이 허락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게 하소서. 그래서 바쳐야 할 자는 다투어 바치게 하고 모록하여 바치려는 자의 희망을 끊어 버린다면, 이는 이른바 군역을 면제한다는 명목이 있으면서 군역을 고르게 하는 실제 효과를 거둘 것입니다. 이 분부가 이미 시행된 후에 현재 걷힌 세포의 수량을 헤아려 그 많고 적음을 비교해서 제색(諸色) 군졸에게서 걷힌 군포는 모두 절반 감해 주기도 하고 전액 감해 주기도 하여, 번에 오른 첨방군의 군역을 융통성 있게 시행하여 차이가 없게 하면, 군역의 고충이 전에 비하여 절반은 감소될 수 있을 것이요, 단지 노인·약자·도망자·죽은 사람에게 한때의 은혜를 베푸는 바탕이 되는 데 그칠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이 법은 본디 불가불 시행해야 하지만, 또한 당장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지금 백성들이 몹시 굶주려 위아래가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르는데, 어찌 차마 이 일을 궁핍한 사족에게 강요하겠습니까. 반드시 햇벼를 추수하고 새 무명이 생산되는 때를 기다린 후에야 징수하여 봄여름에 감해 주었던 액수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복해서 봄여름에 당장 쓸 경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곤란하다고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양남(兩南)의 감영(監營)과 평안도(平安道)·황해도(黃海道)의 감영(監營)·병영(兵營) 및 통영(統營) 등 여러 곳에 보관하고 있는 무명의 수량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신이 비록 그 무명에 대한 명목과 수량은 감히 알지 못하지만, 의논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수백 동의 무명을 걷어 모으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니, 국가에서 이와 같은 물건을 경비 이외의 쓸모없는 데다가 쌓아 두고 마냥 지키기만 한 셈입니다. 이는 마치 남의 창고지기가 된 자가 얽매어 감히 물품을 내어다 쓰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국가 경비가 바닥난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유용하게 보태주지 못하고 있으니, 천하에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습니까. 또한 묘당에게 상의하여 확정하게 하되 각도와 각영에 먼저 물어 그 실제 수량을 알아본 후에 그 절반을 갖다가 군포로 변용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할 바탕을 삼는다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 내용이 여느 것과 비교가 안 되니, 내 마음에 가상히 여기고 기쁘다. 마땅히 묘당에게 의논해 처리하라고 명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4면
  • 【분류】
    군사-군역(軍役) / 신분(身分) / 정론-정론(政論)

○兵曹參知兪棨上疏曰:

賤臣狂妄, 自分誅殛, 無望生全, 猥霑天地罔極之恩, 回春於寒谷, 生肉於枯骨。 時月之間, 洊蒙異數, 至於參佐本兵之地, 與聞廊廟之謨, 昵近淸光, 親承玉音, 臣誠惶恐感激, 震越崩迫。 臣旣一日在官, 則當盡一日之責, 而反顧空踈, 塵露莫補。 臣於此益增戰懼, 寢食俱忘。 輒以區區之淺見, 發端於登對之日, 而言辭拙訥, 不能達意, 中宵耿耿, 欲止不得, 玆敢略申前日未盡之說, 伏俟聖明之裁擇焉。 臣竊觀今日軍政之弊, 爲生民之痼疾, 實有可以隕淚傷心者, 臣不敢一一縷陳, 以重傷天意。 而惟是收布太重, 膏血已盡, 老弱逃故, 不蒙蠲恤, 族屬隣里, 竝被毒害, 則此誠古今天下所未有之大弊也。 由今之道, 無變此弊, 則不出數年, 國無良丁, 雖有百萬虛簿, 徒積怨怒, 而決無緩急一日之望也。 況今歲丁大侵, 流莩載路, 國家之所以賑貸拯救者, 靡不用其極, 而獨於軍布一事, 未有蠲減之令, 此豈非仁政之一大欠典也哉? 伏願聖明, 亟命廟堂商議, 行會八方, 凡軍丁逃故老弱之收布者, 全數蠲免, 而步兵之應納二匹者, 特除一匹, 以溥大恩。 以立大信, 使垂絶之民命, 迓績而不絶, 旣散之人心, 固結而不散然後, 前頭整頓之擧, 庶將賴此爲基本, 而國脈有所扶持矣, 此誠當世之急務, 而不容少緩者也。 今之爲有司者, 必以軍布頓減, 國計不足爲難, 而此則有不然者。 夫民爲邦本, 本固邦寧, 自古未有無民, 而其國獨存者。 設令國家用度減半, 殆不成形, 猶不忍浚刻殘民之膏血, 以至於無國而後已也。 況有裒多益寡, 稱物平施之道, 必可行而無可疑者乎? 在昔祖宗之世, 士大夫子弟曁支庶側生, 凡爲男丁者, 無貴無賤, 莫不各有屬衛, 民志以定, 民役以均。 自數世以來, 國綱解弛, 人思自便, 士夫冑裔, 不復隷名諸衛。 非徒士夫爲然也, 雖窮鄕寒族支庶側生者, 一有隷衛之名, 則莫不以爲大恥。 故今之所謂有廳諸衛者, 擧皆雜賤之類, 而祖宗舊制, 乖亂盡矣。 我國地方偏狹, 人民鮮少, 雖擧國之民力, 以養軍士, 猶患其未足也, 況就其鮮少之中, 而區分類別, 游情者十居八九, 而使孑遺良民, 獨當其役。 孔子曰: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和無寡、安無傾。" 目今丁役之不均, 一至於此, 其何以和一衆心, 而不至於傾覆哉? 今之爲一切之論者以爲: "軍籍可速釐整, 使國內衣冠之類, 皆有隷屬, 以復祖宗之舊典。" 此言誠然, 而亦有不可不變通者, 蓋士民之偸安狃逸, 不入羈束者, 垂及百年, 謬習已痼。 今若一朝而正之, 則驚駭愁怨, 勢所必至, 此誠不可不慮者也。 夫衣冠之士, 所以厭惡軍籍, 以其有定軍之名也。 今若自上親下明旨, 痛加曉諭, 以均是天民, 不可獨享安泰之理, 垂盡良丁, 不可偏被侵苦之狀。 上自朝廷百官, 曁乎前銜生進幼學品官科試入格庶孽許通, 一應不合定役之類, 年六十以下, 有室以上, 許納一匹之木。 此後雖有軍籍之擧, 永不令更屬諸衛。 自外未許通庶孽及外方額外校生正軍子枝之類, 一切勿許冒納, 使中外曉然知國家此擧, 其意不在於添丁, 而在於均役, 不在於富足, 而在於救急, 不在於侵削士族, 而在於永許免役。 使應納者爭納, 而冒納者絶望, 則此所謂有免役之名, 而得均役之實者也。 此令旣行, 然後量度見今收布之數, 而比較其多少, 凡諸色軍卒之收布者, 或以之半減, 或以之全減, 而使與上番添防之軍, 通融其役, 無令輕重, 則軍役之苦, 比舊可減其半, 不但老弱逃故, 一時施恩之資而已也。 雖然此法固不可不行, 而亦不可卽行。 方今民生飢餓, 上下遑遑, 何忍以此責之窮殘士族乎? 必待秋穡稍成新綿發産之後, 方可徵收, 以補春夏蠲除之數也。 或者復以春夏目前之乏用爲難, 而此亦有說焉。 臣竊聞兩南監營、平安黃海監兵營及統營等諸處, 留儲之木, 其數甚多。 臣雖不敢知其名般數目, 而議者皆云: ‘累百同之木, 不難於收合。’ 云, 國家積置此等於經費之外無用之地, 而守之如爲人典庫者之拘拘, 不敢發動, 不敢運用, 坐視經用之匱竭, 而莫之補益者, 天下寧有是理哉? 亦令廟堂商確, 先問於各道各營, 得其實數, 然後取用其半, 以爲變通軍布慰悅民心之地, 不勝幸甚。

答曰: "疏辭實非尋常之比, 予用嘉悅, 當令廟堂議處焉。"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74면
  • 【분류】
    군사-군역(軍役) / 신분(身分)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