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들과 이징·이숙의 관직을 회복시켜 주는 일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변사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영돈녕부사 이경석이 아뢰기를,
"지금 새해 벽두에 주상께서 홀아비·홀어미·고아·자식 없는 노인을 걱정해서 음식물을 보내 주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니, 무릇 보고 듣는 사람이면 누가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청백리(淸白吏)와 전투 중에 사망한 사람의 자손에게 일찍이 관직을 제수했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는 실로 성조에 흠이 되는 일입니다. 해조로 하여금 음식물 혜택의 특전을 아울러 베푸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생각해 둔 바가 있어서 여러 대신과 상의하려고 한다. 이징(李澂)과 이숙(李潚)의 관직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 당초에는 모두가 다 너무 시기 상조라고 하므로 부득이 잠시 그 의견을 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도 이미 오래되었으니, 예전에 분부했던 대로 그 관직을 회복시켜 주고 싶은데 여러 대신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이경석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은 고 상신 이경여(李敬輿)와 서로 부합하여, 일찍이 옛날 주공(周公)이 채숙(蔡叔)을 대우하고 순(舜)임금이 상(象)을 대우했던 예를 들어 헌의하였습니다."
하고 영중추부사 정태화가 아뢰기를,
"신의 어리석은 소견은 이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을 서울로 방환한 일 자체가 이미 법을 굽혀 은혜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상의 분부가 간곡하고 측은하니 누가 감동하여 따르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들을 결코 종친의 반열에다 두어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들은 직접 저지른 죄가 없으니 마땅히 용서해 줄 만한 도리가 있음직하다."
하였다. 영의정 심지원이 아뢰기를,
"서울로 방환하여 궁궐에 드나들고 있으니 이것도 곧 융성한 덕인데 누가 감탄하고 우러러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관작을 회복하는 것까지는 불가합니다."
하고 좌의정 원두표가 아뢰기를,
"신은 당초부터 정태화와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국법과 사정을 마땅히 아울러 참작하여 시행해도 의리상 어그러지지 않습니다. 방환한 것으로도 충분하니 작위를 회복하는 것까지는 지나칩니다. 종척의 신하가 어찌 죄 지은 사람과 반열을 같이 하려고 하겠으며, 외조(外朝)의 여러 신하들 처지로도 어찌 죄인과 조정에 나란히 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형제는 다만 마땅히 친근하게 사랑할 따름입니다. 이미 그들을 자기들 편한 대로 두었다가 때에 따라 불러 보는 것이 바로 친애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꼭 그 관작을 회복해 주어야만 친애하는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람마다 각기 의견이 있을 테니 경들은 모두 그 생각을 말하라."
하니 호조 판서 정유성(鄭維城)이 아뢰기를,
"세 대신이 사정과 국법을 참작해서 이미 다 자세히 아뢰었는데, 신이 이 밖에 또 무엇을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까."
하고 예조 판서 홍명하(洪命夏)가 아뢰기를,
"신이 매번 길에서 징과 숙을 만나면 일찍이 속으로 말하기를 ‘나라에서 이처럼 변통하여 잘 처리하였으니, 이는 실로 종묘 사직 영장(靈長)의 복이다.’고 하면서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여러 대신의 말도 의견이 없지 않습니다."
하였다. 지중추 이완(李浣), 병조 판서 정치화(鄭致和), 공조 참의 오정일(吳挺一), 행 상호군(行上護軍) 이응시(李應蓍), 호조 참판 홍중보(洪重普), 형조 참판 유혁연(柳赫然), 대사간 이홍연(李弘淵) 등이 모두 아뢰기를,
"대신의 말이 옳습니다."
하고 부제학 김수항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간관으로 있을 때 이 일에 대해서 논집하였는데 지금 또 무슨 말씀을 더 드릴 게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고 그들이 법을 어긴 것이 전혀 없는데도 경들은 모두 ‘그를 일반 사람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니, 내 마음은 그 일반 사람과 같지 않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을 일반인과 동등하게 대해 주고 싶을 뿐이다."
하니 정태화가 아뢰기를,
"주상의 분부가 여기까지 이르니 감동을 금치 못하겠습니다만, 죄명은 더없이 크고 왕법은 매우 엄한 것입니다. 지금 변통하여 처리한 방도만으로도 지극하다 하겠으니, 이 밖에 무슨 더할 조치가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대궐 안을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의장(儀章)이 있는데 그들만은 그렇지 못하므로 내 마음에 안쓰러워 유쾌하지 못할 때가 많다. 김세룡(金世龍)의 아내도 이미 서울에 올라온 후로는 역시 본성을 잃는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더욱더 딱하고 가엾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예로부터 골육지친에게 변란를 당한 임금으로서 잘 처리한 이가 드물고 오직 순(舜)임금만이 그 도리를 능히 다해냈다. 성상의 도타운 우애와 변란을 잘 처리하는 수완이 실로 하·은·주 삼대 이후에는 보지 못한 바이다. 이미 세룡의 아내를 석방하였고 또다시 징·숙의 관작마저 회복해 주려는 분부의 말씀이 이와 같이 간절하니 어찌 한 시대만 감동시키겠는가. 길이 후세에까지 모범이 될 만하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17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
○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領敦寧府事李景奭曰: "今玆歲首, 軫念鰥寡孤獨, 特下食物賜給之命, 凡在瞻聆, 孰不感激。 而第聞淸白吏戰亡人子孫, 曾有除職之時, 而今不免飢寒, 是誠聖朝欠事也。 請令該曹, 竝施食物之典。" 上從之。 上曰: "予有所懷, 欲與諸大臣相議矣。 澂、潚之復其官爵, 當初皆以爲太遽, 故不得已姑從之矣。 今則歲月已久, 欲依前旨, 以復其官爵, 未知諸大臣之意如何?" 景奭曰: "臣意與故相臣李敬輿相符, 曾以周公之待蔡叔, 大舜之待象, 獻議矣。" 領中樞府事鄭太和曰: "臣之愚見, 有異於此。 放還輦下, 旣云屈法伸恩。 聖敎懇惻, 孰不感動將順, 而決不可置諸宗班, 有同恒人矣。" 上曰: "渠無身犯之罪, 宜有可恕之道矣。" 領議政沈之源曰: "放還輦下, 出入宮禁, 此是盛德事, 孰不感歎欽仰, 而至於復爵, 則不可矣。" 左議政元斗杓曰: "臣於當初, 與鄭太和同議矣。 國法私情, 固宜竝行而不悖。 放還足矣, 復爵則過矣。 宗戚之臣, 豈欲與罪人同列, 而外廷臣隣, 亦豈可與罪人同朝乎? 且兄弟, 只宜親愛而已。 旣令渠輩, 任意自便, 時賜召見, 是所以親愛之也。 何必復其官爵而後, 乃爲盡親愛之道也?" 上曰: "人各有所見, 諸卿皆言其志。" 戶曹判書鄭維城曰: "三大臣參商情法, 已盡陳達, 此外復何加哉?" 禮曹判書洪命夏曰: "臣每於路上, 逢着澂、潚, 竊嘗心語於口曰: ‘國家之處變如此, 此實宗社靈長之福也’, 感歎不已矣。 今者諸大臣之言, 亦不無意見也。" 知中樞李浣、兵曹判書鄭致和、工曹參判吳挺一、行上護軍李應蓍、戶曹參判洪重普、刑曹參判柳赫然、大司諫李弘淵等皆曰: "大臣之言是也。" 副提學金壽恒曰: "臣曾忝諫官, 論執此事, 今復何言?" 上曰: "歲月已久, 渠無所犯, 卿等皆曰 ‘不宜同於凡人。’ 而予意愍其不同凡人。 故使之欲同於凡人矣。" 太和曰: "聖敎至此, 不勝感動, 而罪名至大, 王法至嚴。 卽今處變之道, 可謂至矣, 此外有何加者乎?" 上曰: "出入禁中之人, 皆有身章, 而渠等獨不然, 予心慼慼, 有時不樂耳。 世龍妻旣來京城之後, 則亦無失性之事, 尤可矜惻矣。"
【史臣曰: "自古人君, 遭骨肉之變者, 鮮能善處, 惟大舜能盡其道。 聖上友愛之篤, 處變之善, 誠三代以後所未見也。 旣釋世龍之妻, 又復澂、潚之爵, 而辭旨懇惻乃如此, 豈但感動於一時, 可以爲法於後世也。"】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17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