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찬 김수흥이 소를 올려 사직하고 또 윤선거·권시 등의 일에 대해 아뢰다
수찬 김수흥(金壽興)이 소를 올려 사직하고 또 아뢰기를,
"삼가 생각건대 일전에 윤선거가 왔을 적에 주상께서 그를 예우한 성의는 자상하고도 간절하여 가히 고금을 초월하였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의 꽉 막힌 본성을 스스로 돌이키지 못하여 끝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영 가버렸으니, 성상의 실망뿐 아니라 동료들의 애석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장의 사직소를 올린 지 이미 보름을 지났는데도 여태 비답을 내리지 않으시니, 성명께서 그의 거취 결정에는 석연치 않은 데가 있으므로 다시 이러니저러니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까. 다만 생각건대 윤선거에 대한 처사는 참으로 지나쳤다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성주(聖主)가 위에 있으면 반드시 부르지 못할 선비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는 범승(范升)의 말을 듣지 않고 주당(周黨)을 예우하여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을 계기로 동경(東京) 땅에 수백년 동안 절의의 기풍이 진작되어, 오늘날까지도 광무제의 미덕에 대한 칭송과 주당의 절의에 대한 찬양이 시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오늘날 윤선거의 일은 그가 이미 물러나 돌아간 이상 기어코 되돌아오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절의의 기풍이 땅에 떨어지고 사기가 시들어진 때를 맞아 만약 몇 줄의 유지를 내려서 성상의 성의를 보이신다면 거룩하신 성덕과 넓으신 아량에 어찌 큰 빛발이 서리지 않겠습니까.
요사이 또 삼가 듣건대 찬선 권시(權諰)가 올라온 뒤에 곧바로 그에게 곡물을 대어 주라는 하명이 있었기 때문에 상록(常祿)을 받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찬선 송준길의 간곡한 계사로 인하여 곡물은 환수하고 반찬거리만을 보내 주고 있으니, 권시의 경우 실로 1월 치의 녹봉을 받지 않았는데도 송준길과 똑 같이 곡물을 환수하여 객지의 어려운 급식에 고초가 갑절이나 심하다고들 합니다. 우리 조정 사대부의 상록이 넉넉지 못하다 해서 이제 또 구호의 곡물을 보낸 것인데, 이것을 모두 환수한다면 조정에서 현사(賢士)를 대접하는 도리가 기어코 이처럼 박해서가 아니라, 이는 반드시 성상께서 미처 살피지 못한 점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하니, 상이 사피하지 말라고만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3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辛巳/修撰金壽興上疏辭職, 又曰:
竊惟向日尹宣擧之來也, 自聖上禮遇之誠, 委曲懇至, 可謂卓越古今, 而顧其偏滯之性, 不能自廻, 畢竟長往而不顧, 非但 聖上之缺然, 同朝歎惜, 曷勝言哉? 辭歸一疏, 已經旬望, 尙不下批, 聖明有未釋然於其去就之決, 以爲不必更有所云云耶? 第念尹宣擧之事, 誠過矣。 自古聖主在上, 必有不賓之士。 故漢 光武不聽范升之言, 而禮送周黨, 以興東京數百年節義之風, 至今美光武之德, 而稱黨之節不衰, 豈不休哉? 今者宣擧業已退歸, 必無復路之望。 當此風節掃地, 士氣委靡之日, 若賜數行諭旨, 以示聖意, 則寧不大有光於盛德弘量乎? 近又伏聞贊善權諰上來之後, 卽有繼粟之命, 故不受常祿, 而頃因贊善宋浚吉之懇辭, 還收米粟, 只給饌味, 權諰則實不受正月祿俸, 而與宋浚吉一體還收, 竊聽旅寓艱食, 苦楚倍甚云。 我朝士大夫常祿, 旣不能贍足, 而今且與周急之粟而竝收, 則朝家優禮賢士之道, 必不如是之薄也, 此必聖上之未及察也。
上只以勿辭答之。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8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3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