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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19권, 효종 8년 8월 16일 병술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

찬선 송시열이 상소하여 사직하고 폐단들을 제거할 것을 아뢰다

찬선 송시열(宋時烈)이 상소하여 사직하였는데, 그 상소에,

"신이 생각건대,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은 천성으로 타고 났기에 마멸될 수 없는데 더구나 세상에 드문 전하의 알아줌을 받고서도 벼슬길에 몸을 던져 하찮은 노고나마 바치지 못하였고, 또 한번 어리석은 말씀을 드려 성덕(聖德)에 만분의 일이나마 도움을 드리지 못하였으니 신이 장차 무슨 면목으로 죽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은 비루한 자질에 학문은 보잘것없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사람이 죽을 무렵에는 그 말이 착하다.’고 하였으므로 이에 한두 가지의 충심을 말씀드려 조그만 정성이나마 바치려고 하니, 혹시 채택하여 받아들이신다면 재변을 만나 애써 걱정하시는 마음에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가운데에 혹 누설해서는 안 될 내용이 있기 때문에 감히 조그만 책자에다 손수 써서 종이로 세 겹을 싸고 싸는 곳마다 풀로 봉하고 수결을 한 다음 대궐을 향해 절하고 올렸으니 성상의 앞에 이르면 특별히 승지와 사관으로 하여금 뜯어서 점검하고 아뢰게 하소서. 이는 신이 처음으로 만든 일이 아니고 본래 주자(朱子)가 하였던 고사가 있습니다.

신은 고통과 신음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슬피 탄식하며 생각하기를 ‘하늘이 성상께 큰 명을 내리시고 성고(聖考)056) 께서 전하에게 왕위를 물려주신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었겠는가. 그런데도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8년이나 되었으나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어 위로는 하늘과 성고의 뜻에 보답할 수 있고 아래로는 뭇 신하와 만백성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조그마한 공효도 전혀 없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원망하고 하늘이 노하여 안에서는 소요가 일어나고 밖에서는 공갈과 협박을 하고 있어 위태로운 화가 조석 사이에 임박했다. 한가하게 그럭저럭 보내면서 오직 벼슬만을 구차하게 보전하려는 저 신하들이야 말할 것조차도 없겠지만 전하께서는 왜 조종조에서 전해 준 기업이며 위임한 사직과 신민을 생각하지 않으신단 말인가. 요즈음 전하께서 하늘이 보이는 경계로 인해 척연히 마음을 바꾸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뜻이 매번 명령하실 때나 일을 하실 적에 드러나고 있으니 이같이 마지 않고 한다면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유지하기 어렵고 지기는 쇠퇴해지기 쉬운 것이므로 날이 가고 달이 바뀌는 사이에 점차 타성에 젖어 태만해진다면 인자한 하늘도 싫증이 나 버림으로써 얼마 못가서 망하고 말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심장과 쓸개가 떨어지는 듯합니다.

아, 오늘날의 일들이 폐단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는 모두 근본이 단정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근본이 단정한데도 말류(末流)에 폐단이 생겼다는 말을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나라의 형세가 이와 같은데 근본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7년의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끝내 위태해지거나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는 근본을 단정히 하는 일을 서둘러서 하면 그래도 대궐의 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조정을 맑게 할 수 있으며, 민정(民情)을 위로할 수 있고, 천심(天心)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무엇이 이보다 더 낫겠습니까.

그러나 근본이 저절로 단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 바로 실지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공자 때부터 이미 이 말이 있었는데 2천 년이 흘러오다 보니 이미 평범한 말과 죽은 법이 되었으므로, 임금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더욱 오활할 것 같으나 주부자가 논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이 정치하는 데에는 가장 절실하여 다른 법이 없습니다. 방탕해질 수 있는 혼자 처한 곳에서부터 사람을 등용하고 일을 조처하는 즈음에 이르기까지 그 정일(精一)하게 하여 극복(克服)하기를 마치 신명(神明)을 대하듯이 하고 깊은 연못이나 골짜기 위에 있는 것처럼 하여 감히 잠시라도 태만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서 은미한 사이에 혹시 잘못이 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태사(太師)와 태보(太保)를 두어 밝게 계도하게 하고 간쟁하는 신하들을 두어 바르게 규정하게 하는가 하면 모든 음식·술·의복·거처·기용(器用)·재물과 환관·궁첩(宮妾)에 있어서도 모두 다 총재가 관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전후 좌우며 일동 일정을 모두 유사의 법으로써 제재하여 실오라기처럼 조그만 틈이나 잠깐 사이에 털끝만한 사욕도 숨어듦이 없게 하여 항상 종묘나 조정에 임해 있는 것처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속으로부터 밖에까지, 은미한 곳으로부터 현저한 데까지 정백 순수(精白純粹)하여 조그만 흠이나 가리움이 없는 것이고, 그 유풍 여열(遺風餘烈)이 족히 후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자가 말한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일로서 정치의 방도를 논할 때 반드시 이를 더없이 절실하게 더없이 급선무로 여기었지 오활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남강(南康)을 관장하고 형호(荊湖)를 총괄할 때 관리하는 바가 재부(財賦)였고 다스리는 바는 군오(軍伍)였으나, 당시 임금에게 아뢰기를 ‘향(鄕)은 현(縣)에 총괄시키고, 현은 주(州)에 총괄시키고, 주는 제로(諸路)에 총괄시키고 제로는 대성(臺省)에 총괄시키고 대성은 재상에게 총괄시켜야 하며 재상은 뭇 직책을 총괄하여 천자와 더불어 가부를 살펴 정령(政令)을 펴야 하는데 이것이 천하의 기강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임금의 마음이 공평 정대하여 치우친다거나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사로움이 없어야만 기강이 매인 데가 있어서 확립되고 국토를 지키는 신하도 위령(威靈)을 의지하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고 하였으니, 대개 주자 같은 도덕으로서 하나의 조그만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반드시 임금의 마음이 바르게 되어야만 재부를 관리하고 군오를 다스릴 수 있었고 보면 그 관계되는 바가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대개 마음이 바르게 되면 자신으로부터 조정과 조정으로부터 주현(州縣)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르게 되어서 인심이 믿어 복종하고 국가의 형세가 저절로 강성해질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일신에 주장이 없어 만사가 기강이 없게 되고 맑고 밝은 마음에 욕심이 꽉 들어차 사람을 등용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도 옳게 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가 말하기를 ‘상이 범람해지고, 돈이나 뇌물이 유행하고, 고임받은 것들이 권세를 부리고, 장수가 사졸에게 각박하게 구는 것들이 모두 임금의 마음이 올바르지 못한 데에 관계된 것이다.’고 하였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잠시 근일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로 변경의 장수나 수령들이 반드시 다 의리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명성과 공적을 드러내서 벼슬이 올라가기를 도모하려고 하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직 조정 신하들의 요구에 못이겨 장오의 죄에 빠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돌아볼 여가가 없습니다. 자기 한 몸도 돌아볼 여가가 없는데 하물며 군사나 백성이겠습니까. 비록 귀감거리가 눈앞에 보이고 준엄한 법률이 뒤에 있으나 또한 밖으로는 잔약한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안으로는 처자를 먹여 살릴 녹봉을 깎아내 조정 신하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서북 지방이 더욱 심합니다. 이는 신이 장수와 수령들에게 직접 들은 바입니다. 이 한 가지 일만 가지고서도 전하께서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지 못하였다는 효험을 볼 수 있고 주자가 우리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더욱 믿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유추해 본다면 나머지 것들도 모두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전하께서 마음을 참으로 바르게 하고 몸을 참으로 닦아 안과 밖이 통철(洞徹)해져서 조금도 의심받을 만한 것이 없다면 조정의 신하 중 누가 감히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태도와 순일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덕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제왕의 도리가 단연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주자가 비록 당세 임금이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드시 이것으로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신은 또 들으니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먼저 격물 치지(格物致知)를 하여야 되는데 그 힘쓰는 방법은 또한 글귀에만 매달리는 선비보다 훨씬 쉽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대개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 시비를 따지고, 사람을 등용할 때에는 그 현우(賢愚)를 분별하고 말을 듣는 순간에는 그 득실을 분변하되 또 그것을 몸과 마음에서 증험해 보고 역사에서 상고해 보면 그 용공(用功)의 다과에 따라 바로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곧 한다면 천만 명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용맹이 있게 될 것이고 안 해야 할 일을 곧 하지 않는다면 무고한 사람 하나를 죽여 천하를 얻는다 해도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마음이 어찌 바루어지지 않겠으며 사욕을 어찌 이겨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임금이 정치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 몇 마디 말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며, 이 몇 마디 말이 임금에게 절실함은 대개 보통 사람들보다 만배나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나라의 형세가 이와 같은데 어느 겨를에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지 말고 당장 공부에 착수하여 조석으로 태만하지 마소서. 그러면 오늘날 축적한 것이 3년의 쑥이 안되리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미천한 신의 충성하고 싶은 정성이 실로 마음에 간절하지만 자신을 돌아볼 때 이 외에 다른 것이라곤 없기 때문에 감히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이 말씀을 드리오니, 혹 전하께서 유념하여 채용하셔서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있다면 미천한 신의 지극한 소원에 매우 만족스러워 영광스런 마음을 품고 땅에 들어가게 되어 다시금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찬선의 병환이 아직 쾌히 낫지 않아 올라오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상소하여 말해 주니 내 매우 놀라고 탄복하였다. 설사 병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신명(神明)이 도와줄 것인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부족하고 어두운 나의 성의가 얕아서 신명을 감동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연연한 회포를 참으로 견뎌내기 어렵다. 조용히 길에 나서 서울에 들어와 조리하면서 지극한 바람에 부응해 줄 수 없겠는가? 상소 가운데 한 말들은 모두가 충심에서 우러나왔다. 과인이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감히 띠에 써 두고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그만 책 속의 말들은 정말 나를 아끼는 충심에서 나온 것인데 어찌 마음에 감동되지 않겠는가. 한 통의 상소는 늠름하고 정대하여 옛날 성인의 말과 서로 표리(表裏)를 이룰 만하다. 이것이 내가 정성을 쏟아가며 잊지 못하고 낮이나 밤이나 조정으로 나오게 하려는 뜻이다. 모름지기 나의 지극한 정성을 체득하여 조용히 올라오도록 하라."

하였다.

그가 올린 조그만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은 삼가 듣건대, 맹자가 말하기를 ‘만일 약이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독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주자는 당시를 개탄하며 말하기를 ‘대승기탕(大承氣湯)을 써야 할 증세에 사군자탕(四君子湯)을 쓰고 있으니 어떻게 치료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전하께서 큰 뜻을 세워 분발하고 계시는데도 시행하는 일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면 여느 때나 매한가지란 점입니다. 이와 같으면 또한 어떻게 신하들을 격려하고 사업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우임금은 촌각을 아꼈고 탕임금은 새벽같이 일어나 자신의 덕을 크게 밝혔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을 우임금탕임금의 시대와 비교해 볼 때 어떠합니까. 그런데 구중궁궐에 깊이 계시면서 여러 신료들과 더불어 날마다 정치의 방도를 강론하지 않으시니 신은 민망하고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금부터라도 제왕의 학문에 뜻을 기울이고 당면한 일들을 서둘러 하여 한결같이 우임금탕임금을 본보기로 삼으소서.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0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註 056]
    성고(聖考) : 임금의 아버지.

○贊善宋時烈上疏辭職。 其疏曰:

臣竊惟愛君之心, 根於天性, 消鑠不得, 況蒙殿下不世知遇, 旣不能致身周行, 以效犬馬之勞, 又不能一進愚言, 以補聖德之萬一, 則臣不知將何以死哉。 臣陋質末學, 無所知識。 然曾子有言曰, "人之將死, 其言也善。" 玆陳一二忠赤, 以效芹曝之誠, 倘垂採納, 或不能無助於遇災勤恤之心也。 第其中或有不宜宣洩者, 故敢以小冊子, 手自繕寫, 三襲以紙, 各行膠署, 謹望闕拜上, 乞至上前, 特令承旨史官, 開檢以啓也。 此非臣所創俑, 自有朱子故事也。 臣吟呻痛楚, 夜不能寐, 惄然傷嘆, 以爲皇天之誕命聖躬, 聖考之付畀殿下, 是豈偶然。 而臨御八年, 因循荏苒, 了無尺寸之效, 可以仰酬皇天聖考之意, 俯答群臣萬姓之望者, 至於今日, 則人怨天怒, 內鬨外喝, 危亡之禍, 迫在朝夕。 彼臣僚之泄泄沓沓, 唯祿位苟保者, 固不足言矣, 殿下獨不念祖宗基業之傳, 社稷生民之托耶? 比來殿下因天示警, 惕然改圖, 戒懼之意, 每發於號令事爲之間, 若此不已, 殆庶幾矣。 而然心體難持, 志氣易衰, 日往月來, 浸淫解惰, 則仁愛之天, 亦將怠棄, 而亡不旋日矣。 一念至此, 心膽若墜。 嗚呼! 今日之事, 無一不弊, 而皆由於其本之不端。 本端而末流之弊者, 臣未之聞也。 今國勢如此, 而乃爲端本之說者, 誠如七年之病, 三年之艾也。 然與其卒於危辱, 孰如汲汲於此, 而宮闈猶可及正, 朝廷猶可及淸, 民情猶可及慰, 而天心猶可及豫也。 然本不能自端, 所謂 ‘正心’ 云者, 是其實也。 然自孔聖已有此說, 二千年來, 已成常談死法, 自人君言之, 尤似迂遠, 然以朱夫子所論觀之, 則其切於人君之爲政者, 爲尤甚, 而更無餘法也。 其曰幽獨得肆之地, 以至於用人處事之際, 其所以精一克復, 如對神明, 如臨淵谷, 未敢有須臾之怠, 猶恐其隱微之間, 或有差失, 而不自知也。 是以建師保以開明, 列諫爭以規正, 而凡其飮食酒醬、衣服次舍、器用財賄與夫宦官、宮妾之政, 無不領於冡宰之官。 使其左右前後、一動一靜, 無不制以有司之法, 而無纖芥之隙, 瞬息之頃, 得以隱其毫髮之私, 常若立乎宗廟之中, 朝廷之上, 此所以由內及外, 自微至著, 精白純粹, 無少瑕翳, 而其遺風餘烈, 猶足以爲後世法程也。 此則朱子所謂正心之事, 而其論治道, 必以爲至切至急, 而不以爲迂遠者也。 故其提轄南康, 總管荊湖也, 其所理者財賦也, 所治者軍伍也, 而其告於時君者, 乃曰: ‘鄕總於縣, 縣總於州, 州總於諸路, 諸路總於臺省, 臺省總於宰相, 而宰相, 兼統衆職, 與天子相可否, 而出政令, 此天下之紀綱也。 然必人主之心術, 公平正大, 無偏黨反側之私, 然後紀綱有所係而立, 守土之臣, 尙可憑藉威靈, 以稱任使。’ 蓋雖以朱子之道德, 一邑之偏小, 必待君心旣正, 然後可以理財賦、治軍伍, 則其所係, 豈不大哉? 蓋一心旣正, 則自身而至於朝廷, 自朝廷而至於州縣, 莫不一於正, 而人心信服, 國勢自强矣。 苟惟不然,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淸明之地, 物欲塡塞, 用人處事, 無一得其當。 故朱子以爲: "爵賞之濫, 貨賄之流, 便嬖之招權勢, 將帥之刻士卒, 皆係於人君一心之不正," 可不懼哉? 臣姑以近日一事言之。 夫爲邊帥守令者, 雖未必盡知義理, 孰不欲効其聲績, 以圖進用哉? 惟其迫於朝臣之求責, 決知其陷於贓汚, 而不暇顧, 一身且不暇顧, 況於軍民乎? 雖覆轍在前, 峻法在後, 亦不免外剝疲癃之膚, 內削妻孥之俸, 以應求責, 而西北爲尤甚。 此則臣之親聞於帥守者也。 只此一事, 亦可見殿下不能正心以正朝廷之驗, 而益信朱子之誠不我欺也。 以類而推, 餘皆可見矣。 若殿下一心誠正, 一己誠修, 表裏洞徹, 無少可疑, 則廷臣孰敢不祗栗精白, 以承休德哉? 帝王之道, 斷不外此, 此朱子所以雖知世主之所厭聞, 而必以此爲獻也。 臣又聞 ‘心不能徒正, 必先有格致之事, 而其用力之方, 又有甚易於章句之士者。’ 蓋制事之際, 求其是非; 用人之時, 別其賢愚; 聽言之間, 辨其得失, 又驗之於身心, 考之於史冊, 隨其用力之多寡, 卽見得力之淺深。 當爲卽爲, 則有千萬人吾往之勇, 當止卽止, 則有殺一不辜, 得天下不爲之志矣。 如是則心安有不正, 己安有不克哉? 然則人君爲政之道, 無切於此數言, 而此數言之爲切於人君者, 蓋萬萬於凡人矣。 伏乞殿下, 勿以爲 ‘國勢如此, 何暇及此,’ 而當日下功, 早夜無怠, 則安知今日之蓄, 不遽爲三年之艾哉? 微臣願忠之誠, 實出於心, 而回顧其中, 他無所有, 故敢冒萬死, 以此爲獻, 倘蒙殿下留神採納, 而或有補於萬一, 則微臣至願, 千萬滿足, 含榮就木, 無復遺恨矣。

答曰: "贊善之所患, 尙未快愈, 不能登途, 有此投疏進言之擧, 予甚驚歎。 設使有病, 必有神明之扶相, 而何至若此? 無乃寡昧之誠意淺薄, 不能動神明而然耶? 戀戀之懷, 良不可堪。 未可從容登途, 入京調治, 以副至望乎? 疏中所陳之語, 無非肝腑中流出, 寡昧雖不敏, 敢不書紳而服膺焉? 小冊中所言, 眞是愛我之血忱, 寧不感動於心乎? 一本疏辭, 澟澟正大, 與古聖之語, 可謂相表裏矣。 此予之所以惓惓不能忘, 而日夜思欲致之之意也。 須體予至誠, 從容上來。" 其所進小冊曰: "臣竊聞孟子曰: ‘若藥不瞑眩, 厥疾不瘳。’ 朱子慨歎當時以爲 ‘大承氣症, 却下四君子湯, 如何得相當。’ 臣却怪殿下奮發大志, 而見諸行事者, 與尋常時一般。 如此則亦何以激厲臣工, 興作事功也? 大禹愛惜寸陰, 成湯昧爽丕顯。 今日視之世如何, 而顧乃深居九重, 不與群臣日講治道, 臣不勝悶鬱焉。 伏乞殿下, 繼自今孜孜於帝學, 汲汲於時務, 一以爲法焉。"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0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